ARTLETTER | place
Editor. Ju Soyeong
VOL.96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만난 작가의 마음
경험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글과 그림으로 기록할 수도, 음성을 녹음해 둘 수도 있을 겁니다.
간접적인 방식은 보통 직접 경험에 비해 그 강렬함이 떨어진다고도 하지만 글쎄요, 그 전달 방식이 원작자의 의도라면 또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K.Kurigami.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원제 : 상실의 시대)', '1Q84', '해변의 카프카', '일인칭 단수' 등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 작품들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며 신드롬을 일으켜 왔는데요. 이 하루키의 의도대로 그가 기증한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기억하고, 그리고 있는 공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아트레터, 도쿄에 위치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작가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여기서 잠깐!! 👀
아트레터 구독자님들! '자연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미술 운동으로, 자연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특징이죠. '자연주의' 예술가들은 과장되거나 이상화된 표현을 피하고 현실세계의 세부 사항을 충실하게 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들은 왜 자연과 인간의 상태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일까요? 신과 천사 등 이상적인 존재를 그리는 것을 반대했던 그들의 사연을 들어볼까요?
쉽고 빠르게 '자연주의' 배워봅시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웠어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공간💫
수많은 소설과 말들, 루틴화된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든 삶의 모습이 영감이 되는 예술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자료를 하루키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해당 자료들은 다양한 큐레이션 테마 아래, 각국 언어의 형태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2. 터널로서의 건축물🔗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작품 세계를 사랑하는 팬인 쿠마 겐고(Kuma Kengo)가 하루키의 소설에서 받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모티브로 도서관의 건축을 담당했습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흰색의 건물을 둘러싼 나무 조형물은 내부의 아치 터널과 이어지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세계로의 연결'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3. 이제까지의 추억, 앞으로의 준비🔄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해 해당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현재도 다양한 전시회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도서관의 안팎을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답과 응원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소설로 위로와 공감을 얻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기도, 미래의 무라카미 다카시를 키워내는 영감의 요람으로도 기능하고 있어요.
하루키의 모든 것을 담다
2018년, 무라카미는 도서관 설립을 발표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나에게 이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먼저 명확히 설명하려 합니다. 40년 가까이 글을 써왔습니다. 집이나 사무실에는 더 이상 보관하기 힘들 정도로 원고와 자료가 많이 쌓였습니다. 나중에 이 자료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분실될 수 있을 상황을 원하지 않기에 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새롭게 만들어지는 해당 공간에서는 세계 문학과 관련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담아낼 것입니다.”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의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소장하던 자료를 기증할 곳으로 7년간 학업에 열중했던 모교, 와세다 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로 시간을 보내던 연극박물관 바로 옆 건물을 활용, 새로운 공간을 위한 조형 조각을 덧붙여 디자인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설립되었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외관 전경, ⓒ에디터 촬영(Ju Soyeong).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내부 책장, ⓒ에디터 촬영(Ju Soyeong).
40여 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에서 출판된 그의 저서는 물론, 자필로 써낸 원고와 소장하던 문학서, 재즈 음반들까지. 작가의 생애 전반에 걸쳐 수집된 귀중한 자료들을 관람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세계는 물론 그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식 명칭인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보다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이름에 걸맞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료를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작가를 비롯한 세계 문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가능케 하는 교류의 장으로서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전시된 많은 자료는 하루키가 직접 소장했던 참고 서적으로, '삶과 죽음' 등 작가가 세심하게 설정한 테마에 맞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 작품을 그가 바라본 방식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 테마와 함께 큐레이션된 하루키의 기증 도서들, ⓒ에디터 촬영(Ju Soyeong).
또한 해당 공간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의 분위기를 담뿍 느낄 수 있는 오브제들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작품 ' 해변의 카프카'가 무대화되어 순회 전시를 돌았을 당시,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던 네온사인 '토성' 작품과 하루키가 학생 시절 운영했던 재즈 카페의 그랜드 피아노도 설치되어 있죠.
네온사인 설치작품 '토성', 하루키 재즈 카페의 '그랜드 피아노', ⓒ에디터 촬영(Ju Soyeong).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에서는 줄거리의 본질을 제시하는 힌트 중 하나로 늘 특정 음악이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작가는 '음악은 소설을 창작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라고 언급한 바 있죠.
클래식부터 팝, 락, 라틴 음악까지 작품의 분위기를 깊이 공감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과 함께 무라카미의 책을 읽고 있자면, 마치 이야기 속 인물이 된 양 그 속에 깊이 빠져들게 되어버리죠. 특히 재즈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던 무라카미만의 레코드 컬렉션 속 넘버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하루키의 작업공간에 있는 듯한 감상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러 순간을 조명하며, 소설 속과 작가의 삶을 오가는 공간에서 만나는 작가의 작품들은 더 깊은 공감과 생생함을 전달해 왔습니다.
현실과 소설 속 세계를 잇는 하루키의 공간
도서관 외부에 둘린 조형적 장식물을 감상하며 내부에 들어서는 즉시, 둥근 아치형의 거대한 책장과 조우하게 됩니다. 하루키의 서적 컬렉션을 품고 있는 부드러운 곡선의 나무 아치 통로는 마주하는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로 입성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죠.
ⓒ에디터 촬영(Ju Soyeong)
평소 무라카미 다카시와 가깝게 지내며 동시대 예술가로 교감해 온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는 해당 도서관의 공간 설계자를 맡아, 그의 문학 세계와 의지를 공간에서도 표현할 수 있도록 기여했습니다. '최소한의 건축'을 추구하며 언제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온 그의 철학에 걸맞게 해당 도서관의 아치 통로는 나무를 활용해 설계되었는데요. 켄고는 해당 아치 책장을 두고 '하루키의 소설은 여러 제약과 시스템에 둘러싸여 있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 며 '이러한 자유로운 느낌을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구현하고 싶었다.' 고 관련 소감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에디터 촬영(Ju Soyeong)
건축가의 의도대로 마치 터널과 같이 계단과 책장을 결합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계단 책장(Stair Bookshelf)’은 도서관의 맨 앞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을 순식간에 비일상의 세계로 빨아들입니다. 책장 전시장에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40년이 넘는 세월을 넘게 펴내온 소설책은 물론, 그와 그의 주변인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갖가지 테마에 맞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도서관 설립 소식에 설계를 맡겠다고 나선 쿠마 겐고를 포함해 하루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여러 예술가가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도서를 추천하고 있죠.
관내 한켠에 위치한 쿠마 겐고의 도서, ⓒ에디터 촬영(Ju Soyeong)
하루키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도서관 설립이 확정되었을 당시, 도서관 부지로 선정된 와세다 대학교 측은 “이 모든 자료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애호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 전시될 것”이라 밝힌 바 있는데요.
이러한 장담에 걸맞게 해당 공간은 하루키를 포함한 다양한 동 세대 작가들의 문학 세계관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2024년 프란츠 카프카 전시 전경, ⓒ에디터 촬영(Ju Soyeong)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 프로그램은 물론, 일반 방문객들을 위해 2층 공간을 통째로 할애해 전시회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올해 2024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해변의 카프카'로 경의를 표하기도 했던 문학계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었습니다. '변신', '사형선고' 등을 집필하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전한 카프카의 모습을 작가적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 특별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는 동시대 문학가, 큐레이터와의 대담 프로그램부터 문학 심포지엄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대 문학계의 활발한 교류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영감을 받았던 작가가 또다시 누군가의 전시 속 모티브가 되고, 공간을 방문하는 이들의 추억이 되듯이 말이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히 작업 활동을 이어오며
매일매일을 루틴화된 라이프스타일 아래, 작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같은 시간에 기상해 일정 거리의 달리기를 하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은 신체적 강인함이 예술적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작가의 인식과 상통합니다. 이러한 강인함은 곧 매일 글을 읽고 쓰며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는 성실함으로 이어지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속 기증 자료의 세심한 분류에 담긴 배려를 느끼면서, 어쩌면 작가의 목적은 이러한 성실한 삶의 기쁨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감상에 젖기도 했습니다. 국적을 넘어 많은 사랑을 받는 하루키의 작품을 통해 '글의 힘'을 체감한 모든 분께, 하루키의 도서관 속 담긴 이야기가 또다른 일상의 원동력이 되었기를 희망하며 오늘의 아트레터를 마칩니다.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국제적 명성을 지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해 여러 서적을 펴내며 신드롬을 일으킨 현대 문학가입니다.
2.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8년 소장하던 모든 자료를 기증해 도서관을 건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3. 작가는 미공개 자료를 포함한 작품의 초판본 등 다양한 자료를 직접 큐레이션하며 자신의 문학 세계에 대한 팬들의 관심에 화답했습니다.
4.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자 두터운 친분을 지녔던 사이인 건축가 '쿠마 겐고'가 직접 도서관의 설계를 맡았습니다.
5. 쿠마 겐고는 '자연주의 건축'을 표방한 건축가로 나무를 이용해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의 조형을 담당했습니다.
6.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세계로의 연결'이라는 시사점을 건물 내부의 통로로 구현했습니다.
7. 쿠마 겐고를 포함해 무라카미 하루키와 교류하던 동시대 예술가들에 관련된 서적 역시 도서관에서 접해볼 수 있습니다.
8. 작가 소장하던 문학 작품 외에도, 그가 소장하던 재즈 음반, 피아노, 미술 설치 작품까지 다양한 오브제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9.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작가의 의지를 존중해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도 수많은 현대 문학가와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0.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도서관이자 연구소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매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로 자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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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Ju Soyeong
VOL.96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만난 작가의 마음
경험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글과 그림으로 기록할 수도, 음성을 녹음해 둘 수도 있을 겁니다.
간접적인 방식은 보통 직접 경험에 비해 그 강렬함이 떨어진다고도 하지만 글쎄요, 그 전달 방식이 원작자의 의도라면 또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K.Kurigami.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원제 : 상실의 시대)', '1Q84', '해변의 카프카', '일인칭 단수' 등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 작품들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며 신드롬을 일으켜 왔는데요. 이 하루키의 의도대로 그가 기증한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기억하고, 그리고 있는 공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아트레터, 도쿄에 위치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작가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여기서 잠깐!! 👀
아트레터 구독자님들! '자연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미술 운동으로, 자연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특징이죠. '자연주의' 예술가들은 과장되거나 이상화된 표현을 피하고 현실세계의 세부 사항을 충실하게 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들은 왜 자연과 인간의 상태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일까요? 신과 천사 등 이상적인 존재를 그리는 것을 반대했던 그들의 사연을 들어볼까요?
쉽고 빠르게 '자연주의' 배워봅시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웠어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공간💫
수많은 소설과 말들, 루틴화된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든 삶의 모습이 영감이 되는 예술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자료를 하루키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해당 자료들은 다양한 큐레이션 테마 아래, 각국 언어의 형태로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2. 터널로서의 건축물🔗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작품 세계를 사랑하는 팬인 쿠마 겐고(Kuma Kengo)가 하루키의 소설에서 받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모티브로 도서관의 건축을 담당했습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흰색의 건물을 둘러싼 나무 조형물은 내부의 아치 터널과 이어지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세계로의 연결'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3. 이제까지의 추억, 앞으로의 준비🔄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해 해당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현재도 다양한 전시회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도서관의 안팎을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화답과 응원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소설로 위로와 공감을 얻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기도, 미래의 무라카미 다카시를 키워내는 영감의 요람으로도 기능하고 있어요.
하루키의 모든 것을 담다
2018년, 무라카미는 도서관 설립을 발표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소장하던 자료를 기증할 곳으로 7년간 학업에 열중했던 모교, 와세다 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로 시간을 보내던 연극박물관 바로 옆 건물을 활용, 새로운 공간을 위한 조형 조각을 덧붙여 디자인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설립되었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외관 전경, ⓒ에디터 촬영(Ju Soyeong).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내부 책장, ⓒ에디터 촬영(Ju Soyeong).
40여 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에서 출판된 그의 저서는 물론, 자필로 써낸 원고와 소장하던 문학서, 재즈 음반들까지. 작가의 생애 전반에 걸쳐 수집된 귀중한 자료들을 관람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세계는 물론 그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식 명칭인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보다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이름에 걸맞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료를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작가를 비롯한 세계 문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가능케 하는 교류의 장으로서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전시된 많은 자료는 하루키가 직접 소장했던 참고 서적으로, '삶과 죽음' 등 작가가 세심하게 설정한 테마에 맞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 작품을 그가 바라본 방식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 테마와 함께 큐레이션된 하루키의 기증 도서들, ⓒ에디터 촬영(Ju Soyeong).
또한 해당 공간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의 분위기를 담뿍 느낄 수 있는 오브제들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작품 ' 해변의 카프카'가 무대화되어 순회 전시를 돌았을 당시,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던 네온사인 '토성' 작품과 하루키가 학생 시절 운영했던 재즈 카페의 그랜드 피아노도 설치되어 있죠.
네온사인 설치작품 '토성', 하루키 재즈 카페의 '그랜드 피아노', ⓒ에디터 촬영(Ju Soyeong).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에서는 줄거리의 본질을 제시하는 힌트 중 하나로 늘 특정 음악이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작가는 '음악은 소설을 창작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라고 언급한 바 있죠.
클래식부터 팝, 락, 라틴 음악까지 작품의 분위기를 깊이 공감하게 만들어 주는 음악과 함께 무라카미의 책을 읽고 있자면, 마치 이야기 속 인물이 된 양 그 속에 깊이 빠져들게 되어버리죠. 특히 재즈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던 무라카미만의 레코드 컬렉션 속 넘버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하루키의 작업공간에 있는 듯한 감상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러 순간을 조명하며, 소설 속과 작가의 삶을 오가는 공간에서 만나는 작가의 작품들은 더 깊은 공감과 생생함을 전달해 왔습니다.
현실과 소설 속 세계를 잇는 하루키의 공간
도서관 외부에 둘린 조형적 장식물을 감상하며 내부에 들어서는 즉시, 둥근 아치형의 거대한 책장과 조우하게 됩니다. 하루키의 서적 컬렉션을 품고 있는 부드러운 곡선의 나무 아치 통로는 마주하는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로 입성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하죠.
ⓒ에디터 촬영(Ju Soyeong)
평소 무라카미 다카시와 가깝게 지내며 동시대 예술가로 교감해 온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는 해당 도서관의 공간 설계자를 맡아, 그의 문학 세계와 의지를 공간에서도 표현할 수 있도록 기여했습니다. '최소한의 건축'을 추구하며 언제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온 그의 철학에 걸맞게 해당 도서관의 아치 통로는 나무를 활용해 설계되었는데요. 켄고는 해당 아치 책장을 두고 '하루키의 소설은 여러 제약과 시스템에 둘러싸여 있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 며 '이러한 자유로운 느낌을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구현하고 싶었다.' 고 관련 소감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에디터 촬영(Ju Soyeong)
건축가의 의도대로 마치 터널과 같이 계단과 책장을 결합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계단 책장(Stair Bookshelf)’은 도서관의 맨 앞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을 순식간에 비일상의 세계로 빨아들입니다. 책장 전시장에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40년이 넘는 세월을 넘게 펴내온 소설책은 물론, 그와 그의 주변인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갖가지 테마에 맞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도서관 설립 소식에 설계를 맡겠다고 나선 쿠마 겐고를 포함해 하루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여러 예술가가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도서를 추천하고 있죠.
관내 한켠에 위치한 쿠마 겐고의 도서, ⓒ에디터 촬영(Ju Soyeong)
하루키를 사랑하는 모두에게
도서관 설립이 확정되었을 당시, 도서관 부지로 선정된 와세다 대학교 측은 “이 모든 자료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애호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 전시될 것”이라 밝힌 바 있는데요.
이러한 장담에 걸맞게 해당 공간은 하루키를 포함한 다양한 동 세대 작가들의 문학 세계관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2024년 프란츠 카프카 전시 전경, ⓒ에디터 촬영(Ju Soyeong)
연구자들을 위한 학술 프로그램은 물론, 일반 방문객들을 위해 2층 공간을 통째로 할애해 전시회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올해 2024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해변의 카프카'로 경의를 표하기도 했던 문학계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었습니다. '변신', '사형선고' 등을 집필하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전한 카프카의 모습을 작가적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 특별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는 동시대 문학가, 큐레이터와의 대담 프로그램부터 문학 심포지엄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대 문학계의 활발한 교류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영감을 받았던 작가가 또다시 누군가의 전시 속 모티브가 되고, 공간을 방문하는 이들의 추억이 되듯이 말이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히 작업 활동을 이어오며
매일매일을 루틴화된 라이프스타일 아래, 작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전달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같은 시간에 기상해 일정 거리의 달리기를 하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은 신체적 강인함이 예술적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작가의 인식과 상통합니다. 이러한 강인함은 곧 매일 글을 읽고 쓰며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는 성실함으로 이어지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속 기증 자료의 세심한 분류에 담긴 배려를 느끼면서, 어쩌면 작가의 목적은 이러한 성실한 삶의 기쁨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감상에 젖기도 했습니다. 국적을 넘어 많은 사랑을 받는 하루키의 작품을 통해 '글의 힘'을 체감한 모든 분께, 하루키의 도서관 속 담긴 이야기가 또다른 일상의 원동력이 되었기를 희망하며 오늘의 아트레터를 마칩니다.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국제적 명성을 지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해 여러 서적을 펴내며 신드롬을 일으킨 현대 문학가입니다.
2.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8년 소장하던 모든 자료를 기증해 도서관을 건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3. 작가는 미공개 자료를 포함한 작품의 초판본 등 다양한 자료를 직접 큐레이션하며 자신의 문학 세계에 대한 팬들의 관심에 화답했습니다.
4.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자 두터운 친분을 지녔던 사이인 건축가 '쿠마 겐고'가 직접 도서관의 설계를 맡았습니다.
5. 쿠마 겐고는 '자연주의 건축'을 표방한 건축가로 나무를 이용해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의 조형을 담당했습니다.
6.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세계로의 연결'이라는 시사점을 건물 내부의 통로로 구현했습니다.
7. 쿠마 겐고를 포함해 무라카미 하루키와 교류하던 동시대 예술가들에 관련된 서적 역시 도서관에서 접해볼 수 있습니다.
8. 작가 소장하던 문학 작품 외에도, 그가 소장하던 재즈 음반, 피아노, 미술 설치 작품까지 다양한 오브제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9.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작가의 의지를 존중해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도 수많은 현대 문학가와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0.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도서관이자 연구소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매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로 자리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