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 출처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프라도 미술관
VOL.65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거장들의 재해석💡
: 오늘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이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패러디한 거들의 <시녀들>을 함께 살펴봐요!
여러분은 이 작품을 아시나요?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바로 서양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입니다.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연구된 서양화 작품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데요,
작품에 어떤 수수께끼가 숨어있을까요?
오늘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이 작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거장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공간의 확장 👀
<시녀들>이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입니다. 많은 화가들이 평면에 그림을 그리며 눈에 보이는 공간에만 집중했을 때, 벨라스케스는 다른 공간도 관람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2. 알라 프리마 (alla prima) 👨🎨
벨라스케스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단번에 그리는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하였는데요, 당시 화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올 한 올 새기듯이 그리는 것이 트렌드였기 문에 이는 혁신적인 방법이라 평가 받았습니다. 후대의 화가들은 벨라스케스의 기법에 알라 프리마(alla prima)라는 명칭을 붙였고, 이 기법은 200년 후 등장한 인상주의 화가에게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3. 작품의 제목 🖼️
우리에게 익숙한 시녀들이라는 작품명은 마지막에 붙여진 것인데요, 흥미로운 점은 벨라스케스 본인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시녀들과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와 난쟁이 여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의 자화상’, ‘펠리페 4세의 가족’ 등 이렇게 불려 오다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고 1834년 처음 <시녀들>이란 작품명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자화상, 1640년 경
서양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화풍은 어느 것이 실재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데요, 이는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물 사이의 관계를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복잡함으로 인해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연구된 서양화 작품들 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작품 시녀들을 살펴보면 가운데에 하얀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르가리타의 공주가 보입니다. 공주의 왼쪽에 있는 시녀는 무릎을 꿇고 붉은 병과 다과를 건네고 있고 오른쪽의 시녀는 치마를 펼쳐 보이며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옆에는 왜소증이 있는 독일 출신의 시녀와 장난스럽게 발로 개를 깨우고 있는 가장 어린 시종이 보입니다.
그 뒤에 서 있는 두사람은 왕비의 시녀, 장 도냐 마르셀라와 왕비의 수행원인 돈 디에고 루이스입니다.
좀 더 뒤쪽 계단에 있는 인물은 왕비의 시종 돈 호세 니오토인데요, 그럼 그림 뒤쪽 벽에 걸린 거울 속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바로 거울에 비친 인물들은 공주의 아버지인 펠리페 4세와 어머니인 마리아라입니다. 국왕 부부는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림 속에는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희미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이 왕과 왕비의 모습이 그림 속에서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작업 중인 그림 속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작품 속에는 벨라스케스 자신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큰 캔버스에 작업 중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이젤에 누구를 그리고 있는 걸까요? 혹은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먼저 거울 속 인물에 힌트가 있는데요, 벨라스케스가 국왕 부부를 초상화로 그리고 있다는 가정에 따라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국왕 부부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해석은 다양한데, 그 중에서는 작품 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주인공이라는 설과 캔버스의 주인인 벨라스케스가 주인공으로 간주되는 설도 있습니다.
이 모든 해석 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것은 무엇일가요?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작품은 위치에 따라서 , 구도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른데요, 내셔널 갤러리 최연소 관장이었던 케니스 클라크는 이를 ‘마법과 같은 그림이다’라고도 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의 하나로 손꼽혀 온 만큼 많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에 의해 재해석되었습니다.
그럼 많은 거장들이 재해석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MOMA
피카소는 미술학도였던 10대때 프라도 미술관에 매일 찾아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며 평생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는데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재해석하며 시리즈를 연작하기도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시녀들〉 1957, 캔버스에 유채, 194x260cm, ©피카소 미술관
당시 피카소는 꽤 과감하게 작품을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아래위로 길쭉한 그림이지만 피카소의 <시녀들>은 옆으로 깁니다. 먼저 화폭 왼쪽에 있는 화가의 크기를 늘려 그림에서는 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통해 원작자와는 다르게 그리면서 강조하였습니다. 화가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마르가리타 공주의 비중은 줄어들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창문은 외부에서 빛은 들어오지만 관람자는 창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창문입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요, 이로 인해 원작보다 밝게 그려졌습니다. 귀여운 포인트로는 벨라스케스의 졸고 있던 대형견은 발랄하게 뛰어 노는 닥스훈트로 변했습니다. 이 개의 모델은 피카소가 칸 근처의 라 칼리포르니에서 거주 할 당시 같이 살던 강아지라고 합니다.
피카소 - Las Meninas(after Velazquez), 1957, Oil on Canvas, 162 x 130 cm, Museo Picasso, Barcelona
피카소 <시녀들>연작
피카소 <시녀들>연작
피카소 <시녀들>연작
피카소는 76세가 되었던 1957년에는 5개월동안 무려 58점의 <시녀들>연작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피카소는 “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아닌 나의 시녀들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Salvador Dalí (1904~1989), ©501 위대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역시 일평생 <시녀들>로부터 테크닉과 구성, 색상 등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달리는 자기의 스타일대로 <시녀들>을 재해석 했는데요, 그는 자신만의 개성과 느낌으로 해석하여 추상화 형식의 <시녀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작품 속 인물을 숫자로 대체한 유머러스한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Salvador Dalí , The Maids in Waiting, 1961
Velazquez Painting the Infanta with the Lights and Shadows of His own glory, 1958, 92x154cm
또한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을 달리의 스타일로 재해석 했습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시녀들 작품에 등장하는 공주인데요, 달리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달리는 공주의 모습을 분해하여 작품에 사용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벨라스케스의 모습도 함께 등장시켰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의 제목에 ‘자신만의 영광스런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벨라스케스에 대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 Francisco Goya 1746~1828)
프란스시코 고야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Las Meninas, after Velázquez, 1779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동판화로 그리며 화가로서 창조성과 상상력을 배웠다고 합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 (La familia de Carlos IV), 1801, 캔버스에 유화, 336x 280cm, 프라도 미술관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또한 고야는 초상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는데요, 1799년에 궁정 화가의 자리에 오른 직후에 그린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은 전통적인 초상화 같지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유사한 구조로 화면 왼쪽에 캔버스와 화가가 자리해있습니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재해석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도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화가의 화가"로 불리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인 <시녀들>과
그에 영향을 받은 거장 화가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시녀들>을 살펴보았는데 어떠셨나요? 💭
한 작품 속에 다양한 해석을 담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정말 수수께끼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요약과 함께 오늘의 아트레터 마치겠습니다!
아팅이가 정리해보는 오늘의 레터 내용!
1.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가장 많이 연구된 서양화 작품들 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2. 작품은 위치에 따라, 구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며 여전히 다양한 인물들 중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3.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많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습니다.
4.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영감을 원천으로 삼으며 자기 방식으로 분석하고 재해석했습니다.
5. 피카소는 5개월동안 무려 58점의 <시녀들>연작을 그렸습니다.
6. 달리는 <시녀들>로부터 테크닉과 구성, 색상 등을 참고했습니다.
7. 그는 자신만의 개성과 느낌으로 해석하여 추상화 형식의 시녀드를 그렸습니다.
8. 고야는 <시녀들>을 동판화로 그리며 화가로서 창조성과 상상력을 배웠습니다.
9. 고야는 궁정 화가의 자리에 오른 후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그렸지만 이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유사한 구조로 화면 왼쪽에 캔버스와 화가를 나타냈습니다.
10.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재해석과 자신의 작품에도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썸네일 출처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프라도 미술관
VOL.65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거장들의 재해석💡
: 오늘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이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패러디한 거들의 <시녀들>을 함께 살펴봐요!
여러분은 이 작품을 아시나요?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바로 서양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입니다.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연구된 서양화 작품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데요,
작품에 어떤 수수께끼가 숨어있을까요?
오늘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이 작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거장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공간의 확장 👀
<시녀들>이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입니다. 많은 화가들이 평면에 그림을 그리며 눈에 보이는 공간에만 집중했을 때, 벨라스케스는 다른 공간도 관람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2. 알라 프리마 (alla prima) 👨🎨
벨라스케스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단번에 그리는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하였는데요, 당시 화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올 한 올 새기듯이 그리는 것이 트렌드였기 문에 이는 혁신적인 방법이라 평가 받았습니다. 후대의 화가들은 벨라스케스의 기법에 알라 프리마(alla prima)라는 명칭을 붙였고, 이 기법은 200년 후 등장한 인상주의 화가에게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3. 작품의 제목 🖼️
우리에게 익숙한 시녀들이라는 작품명은 마지막에 붙여진 것인데요, 흥미로운 점은 벨라스케스 본인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시녀들과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와 난쟁이 여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의 자화상’, ‘펠리페 4세의 가족’ 등 이렇게 불려 오다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고 1834년 처음 <시녀들>이란 작품명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자화상, 1640년 경
서양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입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화풍은 어느 것이 실재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데요, 이는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물 사이의 관계를 불확실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복잡함으로 인해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연구된 서양화 작품들 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작품 시녀들을 살펴보면 가운데에 하얀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마르가리타의 공주가 보입니다. 공주의 왼쪽에 있는 시녀는 무릎을 꿇고 붉은 병과 다과를 건네고 있고 오른쪽의 시녀는 치마를 펼쳐 보이며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옆에는 왜소증이 있는 독일 출신의 시녀와 장난스럽게 발로 개를 깨우고 있는 가장 어린 시종이 보입니다.
그 뒤에 서 있는 두사람은 왕비의 시녀, 장 도냐 마르셀라와 왕비의 수행원인 돈 디에고 루이스입니다.
좀 더 뒤쪽 계단에 있는 인물은 왕비의 시종 돈 호세 니오토인데요, 그럼 그림 뒤쪽 벽에 걸린 거울 속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바로 거울에 비친 인물들은 공주의 아버지인 펠리페 4세와 어머니인 마리아라입니다. 국왕 부부는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림 속에는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희미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이 왕과 왕비의 모습이 그림 속에서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작업 중인 그림 속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작품 속에는 벨라스케스 자신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큰 캔버스에 작업 중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이젤에 누구를 그리고 있는 걸까요? 혹은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먼저 거울 속 인물에 힌트가 있는데요, 벨라스케스가 국왕 부부를 초상화로 그리고 있다는 가정에 따라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국왕 부부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해석은 다양한데, 그 중에서는 작품 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주인공이라는 설과 캔버스의 주인인 벨라스케스가 주인공으로 간주되는 설도 있습니다.
이 모든 해석 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것은 무엇일가요?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작품은 위치에 따라서 , 구도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른데요, 내셔널 갤러리 최연소 관장이었던 케니스 클라크는 이를 ‘마법과 같은 그림이다’라고도 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의 하나로 손꼽혀 온 만큼 많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에 의해 재해석되었습니다.
그럼 많은 거장들이 재해석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MOMA
피카소는 미술학도였던 10대때 프라도 미술관에 매일 찾아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며 평생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는데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재해석하며 시리즈를 연작하기도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시녀들〉 1957, 캔버스에 유채, 194x260cm, ©피카소 미술관
당시 피카소는 꽤 과감하게 작품을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아래위로 길쭉한 그림이지만 피카소의 <시녀들>은 옆으로 깁니다. 먼저 화폭 왼쪽에 있는 화가의 크기를 늘려 그림에서는 화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통해 원작자와는 다르게 그리면서 강조하였습니다. 화가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마르가리타 공주의 비중은 줄어들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창문은 외부에서 빛은 들어오지만 관람자는 창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창문입니다. 하지만 피카소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요, 이로 인해 원작보다 밝게 그려졌습니다. 귀여운 포인트로는 벨라스케스의 졸고 있던 대형견은 발랄하게 뛰어 노는 닥스훈트로 변했습니다. 이 개의 모델은 피카소가 칸 근처의 라 칼리포르니에서 거주 할 당시 같이 살던 강아지라고 합니다.
피카소 - Las Meninas(after Velazquez), 1957, Oil on Canvas, 162 x 130 cm, Museo Picasso, Barcelona
피카소 <시녀들>연작
피카소 <시녀들>연작
피카소 <시녀들>연작
피카소는 76세가 되었던 1957년에는 5개월동안 무려 58점의 <시녀들>연작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피카소는 “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아닌 나의 시녀들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Salvador Dalí (1904~1989), ©501 위대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역시 일평생 <시녀들>로부터 테크닉과 구성, 색상 등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달리는 자기의 스타일대로 <시녀들>을 재해석 했는데요, 그는 자신만의 개성과 느낌으로 해석하여 추상화 형식의 <시녀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작품 속 인물을 숫자로 대체한 유머러스한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Salvador Dalí , The Maids in Waiting, 1961
Velazquez Painting the Infanta with the Lights and Shadows of His own glory, 1958, 92x154cm
또한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을 달리의 스타일로 재해석 했습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시녀들 작품에 등장하는 공주인데요, 달리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달리는 공주의 모습을 분해하여 작품에 사용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벨라스케스의 모습도 함께 등장시켰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의 제목에 ‘자신만의 영광스런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벨라스케스에 대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 Francisco Goya 1746~1828)
프란스시코 고야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Las Meninas, after Velázquez, 1779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동판화로 그리며 화가로서 창조성과 상상력을 배웠다고 합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 (La familia de Carlos IV), 1801, 캔버스에 유화, 336x 280cm, 프라도 미술관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또한 고야는 초상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는데요, 1799년에 궁정 화가의 자리에 오른 직후에 그린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은 전통적인 초상화 같지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유사한 구조로 화면 왼쪽에 캔버스와 화가가 자리해있습니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재해석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에도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화가의 화가"로 불리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인 <시녀들>과
그에 영향을 받은 거장 화가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시녀들>을 살펴보았는데 어떠셨나요? 💭
한 작품 속에 다양한 해석을 담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정말 수수께끼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요약과 함께 오늘의 아트레터 마치겠습니다!
아팅이가 정리해보는 오늘의 레터 내용!
1.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가장 많이 연구된 서양화 작품들 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2. 작품은 위치에 따라, 구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며 여전히 다양한 인물들 중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3.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많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습니다.
4.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영감을 원천으로 삼으며 자기 방식으로 분석하고 재해석했습니다.
5. 피카소는 5개월동안 무려 58점의 <시녀들>연작을 그렸습니다.
6. 달리는 <시녀들>로부터 테크닉과 구성, 색상 등을 참고했습니다.
7. 그는 자신만의 개성과 느낌으로 해석하여 추상화 형식의 시녀드를 그렸습니다.
8. 고야는 <시녀들>을 동판화로 그리며 화가로서 창조성과 상상력을 배웠습니다.
9. 고야는 궁정 화가의 자리에 오른 후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그렸지만 이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유사한 구조로 화면 왼쪽에 캔버스와 화가를 나타냈습니다.
10.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재해석과 자신의 작품에도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