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출처 : artvee)
키스 (출처 : artvee)

아트레터 vol.17

클림트가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이 그림



여러분, 이 아이스크림을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지금 보니 패키지 속에 명화가 들어 있더라고요. 바로 클림트의 <키스>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죠? 이 그림은 사랑의 이미지로 가장 많이 복제가 되는 그림이에요. 머그잔, 쿠션, 핸드폰 케이스 등등… 누가 그린 건지는 몰라도 어디서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죠. 하지만 아트 레터를 통해 이 작품의 화가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가보자고요!


오늘 소개할 인물, 바로 오스트리아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입니다!



먼저 보고 들어가는

세 가지 키워드 🎨 


1. 반항아

<키스>와 같은 낭만적인 그림을 그린 클림트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죠? 그는 삶에 위기를 맞고 이전과는 다른 화풍을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는 유럽 주류 미술에 굉장히 반항적인 형태였습니다.


2. 황금

클림트가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확립한 후를 황금시대라고 합니다. 실제 금과 금색 물감을 사용해 황금빛의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3. 여성

클림트는 관능미를 순수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을 모델로 에로틱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오스트리아

반항아 클림트


(좌) 여인의 초상, (우) 죽음과 삶

(출처 : artvee,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


여러분, 두 그림이 한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시나요? 완전히 다른 화풍을 가진 두 그림 모두,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입니다. 원래 클림트는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어요. 


그런데 아버지와 예술적 동지인 동생을 잃고, 3년간 작품 활동을 쉬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온 클림트는 완전히 다른 미술을 선보입니다.


순서대로 의학, 철학, 법학 (출처 : steemit)


이 작품들은 화풍이 변한 이후, 클림트가 *빈 대학의 벽화 의뢰를 받아 그린 그림들입니다. 빈 대학에서는 의학, 철학, 법학을 주제로 학문과 이성의 위대함을 그려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물론, 관능적이며 기괴하기까지 한 위 작품들을 내놓았어요. 당연히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벽화 작업은 물거품이 되어버려요. 💸 


* 빈 (Vienna) : 오스트리아 수도


그가 미술을 떠나서 있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후 그림의 차이에서 느껴지죠? 클림트는 가족을 잃은 상실감으로 삶과 죽음,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러한 철학과 상징을 그림에 담았죠. 🌠





대상을 사실적,낭만적으로 표현하다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상징주의 미술


왼쪽에서 두 번째, 의자에 앉아있는 클림트 (출처 : secession)


이러한 변화에는 당시 일고 있던 인상주의, 아르누보 운동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굉장히 보수적이었어요. 미술도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고수했죠. 


* 인상주의 (Impressionism) :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미술 사조

* 아르누보 (Art Nouveau) :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상징주의의 한 갈래. 넝쿨식물처럼 구불구불한 선과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문양이 특징인 장식 예술.

* 신고전주의 : 신화와 성경, 역사적 사건과 같은 고전적 주제를 다루고, 균형 잡힌 구성과 매끄러운 표면 묘사 등을 중시함. 


이에 클림트는 진보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빈 분리파’라는 단체를 결성합니다. 그리고 전통예술을 추구하는 오스트리아 미술계에, 반항적이고 새로운 예술 활동을 전개해 나가요.


(출처 : secession)


먼저 자유롭게 자신들의 예술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 ‘제체시온’을 세웁니다. 돔 아래의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은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의 자유를”을 뜻해요.🗽 


팔라스 아테나 (출처 : artvee)


활동 당시 클림트의 반항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팔라스 아테나>입니다. 이는 빈 분리파의 두 번째 전시회의 포스터로 사용되었어요.


클림트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분리파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림을 잘 보면, 아테나의 갑옷에 메두사가 혀를 내밀고 있죠? 이를 미술사학자들은 클림트가 기존의 미술계에 전하는 조롱의 메시지라고 해석합니다. 👅 



⏳ Key point


1. 클림트는 원래 대상을 사실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고전 예술에 가까웠어요.

2. 그러다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맞고, 그림에 여러 상징을 넣기 시작합니다. 이는 주류 미술에 반항적인 형태였어요.

3. 더 나아가 클림트는 “각 시대의 예술, 예술의 자유”를 외치며 빈 분리파를 결성했어요. 이곳에서 그는 전통 예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황금빛의 화가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초상 (출처 : artvee)


클림트가 변화를 겪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립한 후를 황금시대라고 합니다. 실제로 금박과 금색 물감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던 시기죠. 


여기에는 귀금속 세공업자인 아버지의 영향도 있습니다. 클림트는 어려서부터 금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과 세세한 디테일이 가능했어요. ✨


키스 (출처 : artvee)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이 바로 <키스>입니다.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  


남성의 의상에는 무채색의 네모난 장식들이 있죠? 반면 여성의 의상에는 화려한 색상의 원형 장식들이 있어요. 이러한 장식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의미하는 클림트의 상징적 요소로, 그의 다른 그림에서도 나타나요.


이처럼 남녀가 서로 구별되지만, 키스를 통해 조화되는 장면을 정말 낭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클림트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이자, 가장 복제가 많이 되는 그림입니다. 그림이 친숙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 


(출처 : 빙그레 공식 사이트)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이 제과회사는 왜<키스>를 포장지에 사용한 것일까요? 아마 쿠키와 크림의 달콤함을 키스의 달콤함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 Key point


1.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립해 나가던 클림트는 작품에 황금빛을 사용합니다. 

2. 황금시대의 절정에 다다른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키스>이에요. 낭만적인 이 그림은 사랑의 이미지로 가장 많이 복제되는 그림입니다.



클림트와 여성


유디트 (출처 : artvee)


클림트에게서 *에로티시즘을 빼고 말할 수 없어요. 클림트의 예술은 황금빛뿐만 아니라, 여성을 매우 관능적으로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클림트는 성욕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관능미야말로 순수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러한 관능적 표현 또한 퇴폐미술, 포르노그래피라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 에로티시즘 (Eroticism) : 인간의 성적 본능이나 사랑에 대한 욕구 등을 자극하는 암시적인 성질이나 경향.

* 퇴폐 미술(Degenerate art) : 비도덕적이고 타락한 사회 반항적인 미술

*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 : 인간의 성적 행위의 사실적 묘사를 주로 한 문학·영화·사진·회화.


하지만! 클림트는 여성을 그저 자유롭고 감각적으로 그렸을 뿐이었습니다. 클림트의 작품 속 여성은 자주 강력한 파워를 가진 인물로 묘사가 되었어요. 👸 


유디트Ⅱ(출처 : artvee)

자세히 보니 그림 밑에 남자의 머리가…


*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한 홀로페르네스(적군)를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어버리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클림트가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많이, 그리고 그렇게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모델들과 육체적 사랑을 즐겼어요. 그래서 수많은 여성과의 스캔들은 물론, 자식도 많았죠. 


이 때문에 <키스> 속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해요. 👀 


(왼) 에밀리 플뢰게, (우)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출처 : 위키피디아 커먼스)

그중 클림트가 죽기 직전에 찾았던 ‘에밀리 플뢰게’와, 클림트의 연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라는 의견으로 좁혀지는데요. 실제로 두 사람은 자신이 <키스> 속 여성이라 주장했어요.


재밌는 건, 여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키스>의 해석 또한 달라진다는 겁니다.


<키스>속 여성이 클림트와 정신적 사랑만을 했던 에밀리 플뢰게라고 한다면, 여성이 남자의 사랑을 약간 거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만약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라고 한다면, 그녀는 클림트와 불륜 관계였던 유부녀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진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죠.💑



⏳  Key point 

1. 클림트는 여성을 관능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에도 많은 비난이 있었죠.

2. 클림트의 <키스> 속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그에 따라 해석도 달라져요.


(출처 : 위키피디아 커먼스)


그가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 뭘까요? 질문을 바꿔서, 그의 그림이 지금까지도 많이 복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요? 


클림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비난을 받았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만의 개성을 작품에 담았죠. 이는 개인사도 있었지만, 새로움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어요! 


즉, 클림트가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Key point

1. 새로운 미술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나가게 된 클림트.

2.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확고히 함으로써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팅이가 정리해 주는 오늘의 내용!


1. 클림트는 원래 대상을 사실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고전 예술에 가까웠어요.

2. 그러다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맞고, 그림에 여러 상징을 넣기 시작합니다. 이는 주류 미술에 반항적인 형태였어요.

3. 더 나아가 클림트는 “각 시대의 예술, 예술의 자유”를 외치며 빈 분리파를 결성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전통 예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4.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립해 나가던 클림트는 작품에 황금빛을 사용합니다. 

5. 황금시대의 절정에 다다른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키스>이에요. 낭만적인 이 그림은 사랑의 이미지로 가장 많이 복제되는 그림입니다.

7. 클림트는 여성을 관능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에도 많은 비난이 있었죠.

8. 클림트의 <키스> 속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그에 따라 해석도 달라져요.

9. 새로운 미술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나가게 된 클림트.

10.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확고히 함으로써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아트아트의 ✨스페셜 인터뷰✨


피카소, 데이비드호크니 등 거장의 작품도 전시되었던, 2022 아트부산. 그곳에서 vvip오픈 5분만에 작품 완판 기록을 세웠던 이희준작가님! 아트아트에서 직접만나 스페셜 인터뷰를 인터뷰 했는데요😎 오늘의 아트레터는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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