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레픽 아나돌의 ‘Melting Memories’ 2018
출처 : 레픽 아나돌의 ‘Melting Memories’ 2018

아트레터 vol.16

예술이 과학에
빠지면?


예술가가 과학에 빠지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회사까지 순간이동하는 터널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 누가 내 일 좀 대신해줬으면!'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 이야기들은 이제 곧 현실이 될 수도 있고,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데요. 어떻게 보면 도로 위 평범한 일상이 된 자동차들에서 부터, 사람들의 손에 수많은 전자기기, 출근 후 여러분의 업무를 돕는 ChatGPT 까지!


예술가들이 상상하면 과학자들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학은 우리의 상상을 점점 실현시켜주고있어요.


압도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얼마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는지는 두말할 필요 없죠. 휴대폰 분리불안 <Nomophobia = No Mobile Phone Phobia> 이라는 신조어가 생길정도로 우린 매일아침 기계와 함께 눈을뜨고, 잠들때까지 함께하니까요.📱



이렇게 매시대 발전하고있는 과학기술에 예술가가 빠져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오늘 아트레터에서는 과학에 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아요!





🤔 가깝고도 먼 예술과 기술


본래 과학과 예술은 모두 'Techne'라는 그리스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한 뿌리에서 시작 된 과학과 예술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적인 정신과 실험적인 면모가 닮아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예술과 기술은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었는데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 이 두 유명인사의 대화는 당시 과학과 예술이 대중에게 비치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요.

 


👴🏻 아인슈타인 : 제가 당신의 예술에서 가장 존경하는 것은 그 보편성에요. 당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이해하고 있죠!

🎩 채플린 :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더 위대해요! 아무도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저만 서로 돌려 까는 것처럼 들리나요? 🤔




과학을 사랑했던 원조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


과학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다빈치 하면 생각나는 첫 번째 작품은 아직 인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시절, 예술가가 과학자의 시각을 가지고 인체를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입니다. 또는 <인체비례도>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다빈치가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자였던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나 건물의 설계는 세계의 축소판인 인체의 비례에 따라야 한다
- 비트루비우스

비트루비우스의 이 말은 인체의 비율 속에서 세상 비율의 비밀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다빈치는 이 비율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 몸을 기준 삼아 인체의 비율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그의 작품 속의 비율은 르네상스 미의 기준인 1:1.618의 황금비율이었고, 이 비율은 현시대 인체의 평균 비율과도 동일할 정도로 보편적인 비율이었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1487. (출처: leonardodavinci.net)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빈치는 그 후에도 적어도 30여 구의 시체를 탐구하며 인체를 탐구해요. 그만큼 예술가의 시선을 넘어 과학자의 시선으로 정교하고 정확하게 인체를 묘사했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심장과 관상동맥 1511-1513. (출처: British Journal of General Practice)


다빈치의 과학자적인 면모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어느 부분이 과학적이냐고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1503. (출처: leonardodavinci.net)


<대기원근법>과 <스푸마토>


우선 모나리자의 사실적인 인체 비율은 다빈치의 해부학적 지식 덕분이었죠. 그뿐 아니라, 카메라도 없던 시절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보면 마치 그림 밖으로 나올 것 같이 입체적으로 보여요. 다빈치는 가까운 여성의 모습은 붉은색으로, 자연 배경은 청색 조로 표현하여 가까운 물체가 강조되게 보이는 대기원근법을 사용하였어요.


거기에다 스푸마토(sfumato)라는 윤곽을 ‘안개처럼’ 흐리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자연 배경과 여성의 모습 사이의 거리감을 더욱 넓혔어요. 인간의 시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입체감을 창조한 셈이죠.


과학을 예술의 원천으로 활용한 과학적 예술의 아버지였던 다빈치. 덕분에 다빈치는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역사적인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사는 뱅크시,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와 같은 예술가들에게도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현시대로 돌아와 볼게요. 이 글을 시작할 때도 말했듯, 현시대야말로 인류가 살아온 그 어떤 때보다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죠. 그리고 이제 예술과 과학은 본래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과거에는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현시대에 과학기술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다빈치는 인체 해부?

나는 기억!🧠


인체의 장기를 탐구한 예술가 다빈치를 넘어,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의 세포를 탐구한 예술가, 이제는 인간의 기억을 탐구한 예술가도 나타났습니다. 기억이야말로 형태가 있다고 하기 어려운데요.🤔 작가는 어떻게 기억을 표현했을까요?



이 인셉션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파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작품이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Melting Memories>로 기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여기 사용된 데이터는 실제 사람들의 뇌세포 활동을 촬영한 *EEG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어요.


* EGG : electroencephalogram 뇌파도. 뇌 내의 전위변화를 기록한 파형


출처: 레픽 아나돌의 <Melting Memories> 2018.


사람이 기억을 할때, 그 기억과 관련 있는 뇌세포들이 서로 소통하며 생기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기계를 머리에 쓴 후, 그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지요.




이제는 지능까지

탐구하는 예술가!👩‍💻


2023년도에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지어 정치인들까지도 관심을 가지는 과학기술 데이터와 인공지능방대한 데이터수집이 가능해진 현대사회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I는 상상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하지만 예술가들의 목적은 과학자들과는 달라요. 예술의 목적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죠.


✋ 잠시만 쉬어가며 노래 한 곡 듣고 갈까요?


방금 들으신 노래는 한 남성이 핸드폰 속 AI 여성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지는 ‘그녀’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과 AI가 함께 부르는 듀엣입니다. 예술가들이 데이터와 AI를 활용하는 하나의 방법은 우리의 뇌와 같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에요. 마치 영화 ‘그녀’와 같이 말이죠.


2018년 백남준 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트레버 페글렌은 기계에 실제 존재하는 수만 개의 사진들을 주입하고, 그 사진들을 활용해서 기계가 그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울 수 있도록 해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계는 의사는 항상 남성, 간호사는 항상 여성으로 판정을 내린다든가 하는 실수를 해요. 더 심하게는 흑인 사람들과 고릴라를 헷갈리기도 합니다.


기계는 실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출처: 트레버 페글렌의 ‘Behold These Glorious Times!’ 2017.


페글렌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소비되고 있는 이미지들(invisible images)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기계까지 편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 Chat 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더 큰 영역을 차지하기 전, 우리 사회에서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레터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린 작품들이 여러분 주변에 항상 있었던 과학과 기술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드렸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런 기술들을 어렵게 생각지 않고 활용하여 자신을 표현하게 될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

인간이 되려는 로봇..?🤖 


기괴함과 아름다움 사이를 오가는 무시무시한 작품. 노진아 작가의 <인간이 되고픈 로봇들>을 진짜 마지막으로 보고 레터를 마무리 할게요.


출처: 노진아의 <나의 기계 엄마> 2019.


한국의 인터렉티브 설치 작가인 노진아는 데이터딥러닝을 활용해 인간의 표정과 대화방식까지 닮아있는 로봇을 만들어요. 그녀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는 자신의 엄마와 대화한 내용을 활용해 제작된 <나의 기계 엄마>나 사람과 대화를 나눌수록 몸이 자란다는 섬뜩한 작품 <진화하는 신 가이야>가 있어요.


그녀의 로봇들은 관람객들이 하는 말에 대답할 수 있고,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하며 대화를 할 수록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해요. 실제로 관람객들의 대화 내용과 표정을 인식하여 로봇의 지능이 더욱더 인간적으로 발전되기 때문이죠.


출처: 노진아의 <진화하는 신 가이야> 2017.


노진아 작가가 끊임없이 인간이 되고 싶다는 이 로봇들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요?


로봇이 인간이 되고 싶을 리는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지요. - 노진아 작가

작가는 실제로 로봇은 절대 인간이 되고픈 생각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고 해요. 하지만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인간과 닮은 로봇을 만드는 것에 집착해 왔고,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수도, 혹은 신이 되고픈 욕망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그리고 그 욕망은 로봇의 입장에서 봤을 때 탄생한 순간부터 인간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상상했다고 해요.


인간이 왜 되고 싶은데?

난 인간의 감정을 정말 배우고 싶어요.

인간이 되면 뭐 할 건데?

사실은 인간이 되는 것만을 꿈꾸며 진화해 왔어요.

그 이후에 어떻게 살지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너는 무슨 색을 좋아해?

저는 파란색을 좋아해요.

어쩌면 허무할 수도 있겠죠.

내 삶의 목표를 이룬 것이니까요.

아직까지는 난 그저 인간이 되는 것만을 꿈꿀래요.



오늘 진짜 여기까지..

정리만 하고 끝.


1. Art와 Technology는 본래 Techne: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한 실천’이라는 그리스어부터 내려온 뿌리가 같은 단어예요.

2.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건축학이나 생리학이 발전되기 전, 가장 처음으로 인체에 담긴 비율을 탐구한 누구보다 과학적인 예술가였어요.

3.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의 시각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대기원근법’과 ‘스푸마토’ 기법을 활용해 입체감을 창조했어요.

4. 레픽 아나돌은 실제 뇌세포를 촬영한 EEG를 기반으로 인간의 기억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해요. 

5. 트레버 페글렌은 기계가 바라보는 이미지의 세상을 탐구하며 현시대의 편견과 이것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관해 얘기해요.

6. 노진아 작가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을 닮은 로봇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관계를 탐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