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Luxury London
출처 : Luxury London

아트레터 vol.15

현대 미술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피카소와 마티스가 인정한 현대 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Paul Cezanne)에 대해 알아봅니다!




오늘은 어떤 작가를 다뤄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저번에 미국의 추상주의를 다룬 만큼 이번에 현대 미술을 다뤄보는 게 좋겠다! 그러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마티스(Henry Matisse)를 이야기하면 되겠네! 아… 그럼 폴 세잔(Paul Cezanne)을 빼놓을 수가 없겠네..! 그래서 준비한 폴 세잔! 피카소와 마티스를 다루기 위해 왜 그를 설명해야 하는지 오늘 설명드릴게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세 가지 키워드 🎨



1. 56세

폴 세잔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대에 진학했지만 미술을 향한 열망을 놓지 못해 결국 미술을 시작했어요. 느지막한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음과 동시에 56세라는 나이에 인정받기 시작했죠. 



2. 다시점

그가 위대한 이유는 다시점(多視點)으로 사물을 묘사했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물체를 한쪽의 시선이 아니라 옆, 위, 뒤 등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를 했죠.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



3. 피카소와 마티스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라이벌이라 불리는 피카소마티스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화가로 폴 세잔을 꼽아요. 폴 세잔을 통해 마티스는 색채의 해방을 얻었고, 피카소는 형태의 해방을 얻었거든요.



👨🏻‍🏫 천재의 스승(?)


피카소가 9살에 그렸던 그림, 출처 : Open Culture



어렸을 적부터 ‘천재’소리를 듣고 자라는 기분은 어떨까요?👀 스페인의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언어보다 그림을 먼저 텄다고 말할 만큼 유년 시절부터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카소의 10대 시절 그림만 보더라도 웬만한 작가들의 작품과 견주어봐도 손색이 없거든요. 그 또한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했고, 그다지 겸손한 삶을 살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잘했으니깐요!



출처 : Daily Sabah



그러나 그조차 자신에게 ‘유일한 스승’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피카소의 유일한 스승이라.. 누구일까요? 피카소의 부모님? 아니면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유일한 스승으로 지칭했던 건 다름 아닌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입니다. 폴 세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조금 생소하죠? 그래서 오늘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의 업적 아닌 업적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Keypoint☝🏻


✨ 피카소는 현대 미술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재 작가입니다.

👨🏻‍🏫 거만했던 천재 피카소조차 스승으로 여기는 인물, 바로 폴 세잔입니다.




👨🏻‍⚖️ 법대 출신

늦깍이 화가


출처 : Courtesy Ny Carlsberg Glyptotek, Copenhagen and Ole Haupt



미술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폴 세잔은 아버지의 기대를 이기지 못해 법대를 진학합니다. 그의 집안은 꽤나 부유했거든요. 그러나 미술을 포기할 수 없었고 이윽고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죽마고우와 함께 파리로 향합니다. (죽마고우 기억해주세요!)



<Landscape near Paris>, 출처 : National Gallery of Art



파리에 도착한 그는 여태까지 본인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깨닫습니다. 당시 파리에는 훌륭한 화가들이 즐비해있었거든요. 수 년간 폴 세잔은 고전합니다. 그러나 함께 파리로 향했던 친구는 승승장구하죠. 폴 세잔은 여러모로 박탈감을 느낍니다.



출처 : Getty Images



여러분 혹시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기억하시나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를 중심으로 퍼졌던 화풍이죠. 폴 세잔이 파리에 머물 당시가 바로 인상주의가 시작을 알리던 시기였어요. 실제로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를 하며 지냈었죠. 그러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하나둘 주류 작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지만 폴 세잔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친구는 물론, 동료들의 성공을 지켜만 봐야 했던 그는 다시 파리에서 자신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너무나도 힘든 세월이었거든요.



Keypoint☝🏻


👨🏻‍⚖️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법대에 진학했지만, 미술을 향한 열망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 법대를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향하지만, 세잔은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됩니다.




⛰ 그가 위대한 이유


폴 세잔의 고향 엑상 프로방스 Aix-en-Provence, 출처 : Winalist



좌절했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꾸준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여전히 쉽지 않았죠. 설상가상으로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시점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맙니다.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때 그가 내세운 건 반(反)이었어요. 당시 주류를 이끌고 있던 인상주의에 반하는 사상을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출처 : MoMA



그는 인상주의에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어요. 세잔은 찰나의 순간에만 집착하는 인상주의 대신에 사물의 본질을 그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돼요. 그리고 6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내죠. 그것이 바로 <사과와 오렌지>라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시점과 시간을 모두 담아낸 폴 세잔의 명작, <사과와 오렌지>, 출처 : Wikimeida Commons



여러분, 이 그림이 위대한 이유를 혹시 아시나요? 모르셔도 괜찮아요. 그렇다면 이 그림의 특징이 느껴지시나요? 사실 저는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요. 알고 보니 정말 묘한 포인트가 많은 작품이더라고요.


왼쪽의 낮은 접시는 마치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죠? 반면 바로 옆에 있는 솟아오른 그릇과 물병은 옆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고요. 세잔은 눈에 보이는 장면 그대로를 그리지 않았어요. 실제로 인간은 원근법처럼 소실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 치 흔들림 없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지 않은 거죠. 그는 좌, 우, 위, 아래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피사체를 한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또한 사과의 형태나 색도 제각각이에요. 어떤 사과는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붉은색이지만, 또 다른 사과는 이제 시들기 시작했는지 푸르스름하기도 하고요.



출처 : The Painters Keys



그는 모든 발견을 캔버스에 담으려 했어요.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어제, 오늘, 내일, 작년, 내년의 사과를 한 캔버스 안에 그려낸거에요🍎! 세잔은 인상주의가 배척했던 고전미술에 담긴 질서와 균형의 아름다움도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서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치환해 그리기도 했죠. 찰나의 순간을 몽롱한 화풍으로 그린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세잔 그림은 단단하고 견고하며 변하지 않는 가치를 탐미하고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Keypoint☝🏻


😢 고향으로 돌아온 세잔은 꾸준히 그림을 그렸지만 별다른 수확은 얻지 못했어요.

🌅 그러나 인상주의의 반(反)하는 사상을 구축, 사물의 본질을 찾겠다는 다짐을 하게돼요.

🍎 사물의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어제, 오늘을 관찰하며 6여년의 시간동안 <사과와 오렌지>라는 *다시점의 그림을 그리게 돼요. 이게 바로 그의 명작입니다.


*다시점(多視點) : 물체를 이차원 또는 삼차원 객체로 다양한 각도에서 표현해 주는 기술




🌸 늦게 핀 만큼, 원대하게


<The Kitchen Table>, 출처 : NPR



위대한 작품을 그려낸 나이 56세. 그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고 큰 성공을 거둬요. 그때부터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기 시작하죠. 황금비율과 신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묘사하려 했던 고전미술,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고 했던 인상주의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묘사하기 위한 폴 세잔만의 화조가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그 영향을 말미암아 또 다른 위대한 화조를 만들어낸 것이 파블로 피카소였어요.



피카소의 명작으로 불리는 <아비뇽 처녀들>, 출처 : MoMA



여러 방향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던 세잔의 실험은 인간의 형태를 조각조각 낸 후 캔버스 위에서 재창조한 피카소입체주의를 탄생시킨거에요. 더불어 풍부한 색채를 활용한 세잔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마티스는 색채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는 야수파를 창시했고요. 기본적인 도형 형태로 세상을 재편한 세잔의 실험은 몬드리안,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화 화가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쯤되면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릴만 하죠?


*입체주의(Cubism) : 의는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한 화폭 안에 담아낸, 말하자면 혁신적인 화법

*야수파(Fauvism) : 강한 붓질과 과감한 원색 처리, 그리고 대상에 대한 고도의 간략화와 추상화를 지향하는 화조



Keypoint☝🏻


✋🏻 폴 세잔의 나이 56세. 그제서야 비로소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 그에게 영향 받은 피카소는 입체주의를, 풍부한 색감에 영향을 받은 마티스는 야수파를 발전시킵니다.




🌬 반항이 아닌,

환기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출처 : Goulandris



앞서 보신 내용과 같이 폴 세잔은 자신의 독특한 실험으로 현대 미술의 기반을 다졌어요. 그 출발은 기존하는 관습을 향한 도전이었고요. 신을 묘사하던 화조에서 인간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바뀌었던 르네상스도, 아름답게 묘사하기 바빴던 화조에 반항했던 인상주의도, 인상주의가 놓치고 있던 사물의 본질을 위한 세잔의 화조도 모두 관습을 뒤엎는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도전과 반항은 아니에요. 그저 관습에 매몰되지 않고 가끔씩은 스스로를 환기하며 살아가자, 이런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자 오늘의 레터는 어떠셨나요? 우리가 알듯 모르고 있던 폴 세잔에 조금 더 가까워지셨을까요?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의 실험 정신에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하며 이번 레터도 마치고자 합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만나요!





아팅이가.. 정리해주는

오늘의 내용!


1. 현대 미술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재 작가 피카소조차 스승으로 여긴 인물, 바로 폴 세잔입니다.

2. 세잔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대에 진학했지만, 미술을 향한 열망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3. 따라서 법대를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향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주류 작가로 거듭나죠. 그러나 폴 세잔은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됩니다.

4. 고향으로 돌아온 세잔은 꾸준히 그림을 그렸지만 별다른 수확은 얻지 못했습니다.

5. 그러나 인상주의의 반(反)하는 사상을 구축, 사물의 본질을 찾겠다는 다짐을 하게됩니다.

6. 사물의 오른쪽, 왼쪽, 위, 아래, 어제, 오늘을 관찰하며 6년의 시간동안 <사과와 오렌지>라는 다시점의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8. 오랜 탐구 끝에 인정받은 폴 세잔의 나이 56세. 그제야 비로소 개인전을 열고 인정받게 되죠.

9. 폴 세잔에 영향을 받은 피카소는 입체주의를, 풍부한 색감에 영향을 받은 마티스는 야수파로 발전합니다.




😎 죽마고우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폴 세잔의 죽마고우였던 이는 바로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 에밀 졸라 Émile Zola, 출처 : Britannica



폴 세잔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파리로 떠나왔던 죽마고우는 다름 아닌 프랑스의 대작가이자 언론인 에밀 졸라(Émile Zola)였어요. 파리 시절 초창기에는 폴 세잔과 함께 전전긍긍하던 에밀 졸라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작품 <올랭피아>를 옹호하는 논평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죠. 이후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에밀 졸라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으며 세잔에게 소개를 해주기도 하지만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세잔은 건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진 못했습니다.


그렇게 폴 세잔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향했고, 에밀 졸라는 파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요. 그러던 어는 날 에밀 졸라는 새로 쓴 소설을 세잔에게 보내줬고, 소설 속에는 클로드라는 화가가 등장하는데요. 클로드는 능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망상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주인공이었죠. 세잔은 클로드의 모델이 자신이라 확신했습니다. 친구가 자신을 이렇게나 비참하게 바라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세잔은 그 이후 단 한 번도 에밀 졸라를 만나지 않았어요. 30년 넘게 이어진 우정은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