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4. 김환기

추상회화의 거장.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김환기, 세 가지 키워드

한국적 예술

전면점화

우주

김환기는 한국적인 문화와 오브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학을 했던 동경시대부터 생을 마감한 뉴욕시대까지 그는 지속적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고, 그의 작품 세계에 녹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뉴욕 시대에 완성된 '전면점화'는 김환기를 대표하는 그의 화조입니다. 이 화조는 '점'으로 이뤄진 집합과 매우 짧은 터치로 표현하는 기법이며, 김환기의 작품 또한 끊임없는 점들을 통해 그의 애환과 예술혼을 담아냈습니다.

2019년, 크리스티 홍콩에서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는 131억이라는 고가에 낙찰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에서 낙찰받았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했지만 최근 낙찰 주인공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그 주인공은 본문에서 만나보세요!

👀  동경에서 눈을 떴어요,

추상회화의 시작.


김환기의 추상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줬던 무라이 마사나리의 화실에서 찍은 사진


청년 김환기는 1933년 일본대학 예술과 미술부에 입학하여 일본 화단 내에서 전위를 표방하는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연구생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입체주의, 구성주의, 미래파 등의 미술사조를 통해 추상회화에 대한 열의를 키워 나가게 됩니다. 미술의 본격적인 입문을 알리는 일본 유학시기는 김환기가 서구 미술사조의 새로운 경향들을 접하게 되면서 추상미술에 눈뜨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종달새 노래할 때> (1913), 환기 미술관


동경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종달새 노래할 때> (1935)는 당시의 그의 복합적인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인의 몸체나 팔의 경우 구체적인 묘사를 지양하고 머리에 올린 바구니 안은 그대로 투명하게 노출하면서 대담하고 실험성 강한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한편 작품의 제목이나 화면의 모티브들은 한국적 서정성이 담겨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향에 있는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그린 작품이라고 해요.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환기는 추상미술에 대해 교우들과 단체를 결성하고, 문화예술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루면서 전통미에 대한 개안과 문학적인 소양을 다지게 됩니다. 도서의 표지나 삽화, 수필, 전시 비평 등을 발표하고 골동과 서화 등을 수집하며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키웁니다.




<판자집> (1951), 환기 미술관


<피난열차> (1951), 환기 미술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을 간 김환기는 당시의 어수선한 상황에도 끊임없이 예술활동을 이어 갑니다. 특히 피난지의 풍경이나, 판잣집, 피난지 거리 등의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는 등 계속해서 작품을 구상하고 그림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1947년 결성한 동인단체인 ‘신사실파’를 피난시절의 막바지까지 이끌었으며 동시에 현대미술의 미래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구상에 매진하면서 전통기물에 대한 예찬과 자연주의적 내용이 짙은 조형세계를 표현하였습니다. 이후 그가 동경시대에 보여주던 비대상적인 구성은 서울·부산시대의 화풍의 흐름에 따라 점차적으로 산, 달, 구름, 백자항아리, 매화 등 한국의 자연과 조선 문인화를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자연이나 정물소재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특징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김환기 예술세계의 근저에 흐르는 한국적 풍류의 표현과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흥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의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Keypoint☝🏻

 🌸 김환기의 추상회화는 동경 유학 시절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그를 대표하는 작품은 많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종달새 노래할 때>를 빼놓아선 안됩니다!

김향안은 내 둘도 없는 아내이자

예술적 동지 💙



두 사람은 일본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환기는 전도유망한 미술학도였고, 김향안은 남편이었던 시인 '이상'의 죽음으로 실의에 차 있을 때 였습니다. 얼마 후 김환기도 오랜 기간 유학하며 멀어진 첫 부인과 이혼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연애를 하게 되어 결국 1944년 결혼을 합니다.

김향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김환기의 예술적 동지이자 아내의 삶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시인 이상과의 사별 후, 김향안은 무명의 서양화가 김환기를 소개받게 됩니다. 당시 김환기는 이미 결혼을 했던 경력이 있었고,  세명의 딸이 있었죠. 그렇기에 김환기는 주로 편지, 서신을 통해 마음을 표현했죠. 


두 사람은 이후 단지 부부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의 동반자로서 평생을 함께 합니다. 김향안은 문학적 재능이 있었고, 그림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문인들과 인연이 많아 사교계의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하듯 김향안은 김향안대로의 예술성을 확보하고, 김환기와 꾸준하게 교류해 나아가며 서로 의지의 의지대가 되어 각자의 예술 세계를 넓혀갑니다. 


김향안은 지속적으로 김환기의 예술활동에 적극적으로 원조했습니다. 그가 서구 문명에 직접적으로 가닿았던 파리 시대를 열었을 때도 김향안은 그보다 먼저 파리에 정착하여 그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김환기의 말년 시대로 평가받는 뉴욕에서의 고된 활동에서는 직접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갈 만큼 엄청난 헌신을 기울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만으로도 충분한 예술적 기질을 가졌던 인물이었으나 김환기의 예술을 신뢰했던 만큼 대단한 헌신과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습니다. 언젠간 분명 그녀만의 예술도 주목받는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입니다. <파리 시대>

파리에서 아내 김향안과. <월하의 마음> (김향안) 중,



동경에서의 유학을 마무리한 김환기는 고국에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해외로 여정을 떠났습니다. 당시 미술계의 중심으로 평가받았던 파리로 떠나며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작품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도전합니다.


파리로 건너간 그는 전통에서 영감을 구하는 성향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전통적 조형미와 색질감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해졌고, 50년대에 그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던 담백한 청색 주조 화면, 평면적인 면의 구성과 장식성 그리고 촉각적인 감각을 느끼게 하는 두터운 질감 등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양한 화법으로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로 구성된 서정적이고 시흥이 넘치는 조형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는 자연의 외형에서 출발하였지만 보편적 개념의 형태로 단색조의 무한 공간 속에 작가가 꿈구는 이상향의 단면을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항아리> (1955), 환기 미술관


가장 눈여겨 봐야 하는 건 <항아리>입니다. 그는 일찍이 한국 고미술에 대한 애착과 수집열이 대단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애정한 건 품에 넘치도록 크고 둥근 유백색과 청백색의 달항아리였습니다. 때로는 이 항아리를 가만히 감상하기도 하며 항아리를 기물 이상의 자연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체라 여겼습니다. 파리 시대에서도 지속적으로 항아리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국적인 대상에 대한 애착을 멈추지 않은 그는 서구 문명이 피부에 와닿았을 때 비로소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며 고국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외에도 사슴이나 나무, 섬 등 한국적인 사물에 대한 그림을 지속적으로 이어갔습니다.


Keypoint☝🏻

🇰🇷 파리 시대를 거치며 김환기는 서구 화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키워 갔습니다.

⚪️ 그중 김환기가 가장 애정했던 오브제는 <달항아리>였습니다.

  나를 꼭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외로움으로 물든 <뉴욕 시대>


 환기 미술관


우연치 않은 계기로 뉴욕에 닿은 김환기는 돌연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둥지를 틉니다. 그리고 10여년 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돌아오지 못했죠. 그가 뉴욕에 남은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 명성과 안정을 얻은 만큼 “세계 무대에서의 객관적 평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죠.


고국에선 명망있는 작가였지만 뉴욕에선 모든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무명 작가였던 그는 2여년 간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난생 태어나 처음으로 공장에서 일을 하며 그림을 그렸고, 부인 김향안은 백화점에서 일을 하며 생계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평소 사람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뉴욕 생활은 보다 암울하고, 외로운 사투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


그의 도전에서 비롯된 고난은 그의 예술혼을 한층 더 발전시켰습니다. 이전부터 추구해온 한국적인 추상화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전면점화’로 화조가 진화한 것입니다. 고국과 사람들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둘씩 찍어 내려간 점은 그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었고, 하루에 16시간동안 그림을 그릴 만큼 50세의 나이에도 누구보다 강렬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1974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인해 그는 뉴욕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Keypoint ☝🏻

🖌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그를 대표하는 화조임과 동시에 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녹은 예술혼입니다.


💸 13,100,000,000원이 된

<우주>


<우주> (1971), 환기 미술관


전면점화가 탄생했던 뉴욕 시대에 탄생한 작품들은 대한민국 현대 미술에 큰 획을 그은 대작들이 되었습니다. 그 중 작품 <우주>는 131억이라는 당시 국내 미술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합니다. 그 외에도 김환기의 작품은 꾸준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가 타계한 뒤에도 국내 낙찰가 순위를 따져보았을 때도 수년 간 1위를 독식할 만큼 대한민국 추상미술계에 가장 단단한 거장으로 거듭났습니다.



Keypoint ☝🏻

💰 131억이라는 최고 낙찰가를 받았던 김환기의 <우주>. 낙찰의 주인공은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회장이었습니다.

김환기의 시대별 대표작 톺아보기

 🌸 동경 시대


<종달새 노래할 때>,1913

출처 : 환기 미술관



<수림>,1940

출처 : 환기 미술관



<거리>,1948

출처 : 환기 미술관



<백자와 꽃>,1949

출처 : 환기 미술관



<섬>,1950

출처 : 환기 미술관



<항아리와 여인들>,1951

출처 : 환기 미술관




🇫🇷 파리 시대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1956

출처 : 환기 미술관



<영원한 노래>,1956

출처 : 환기 미술관



<사슴>, 1958

출처 : 환기 미술관



<섬의 달밤>, 1959

출처 : 환기 미술관



<나는 새 두 마리>, 1972

출처 : 환기 미술관




🗽 뉴욕 시대


<Sounds of Spring 4-I-1966>, 1966

출처 : 환기 미술관



<1-VIII-1967>, 1966

출처 : 환기 미술관



<10-VIII-70 #185>, 1970

출처 : 환기 미술관




<27-VIII-70 #186>, 1970

출처 : 환기 미술관



<14-XII-71 #217>, 1971

출처 : 환기 미술관



<Duet 22-IV-74 #331>, 1974

출처 : 환기 미술관


한줄 내용정리 ☝🏻

1.  김환기의 추상회화동경 유학 시절이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 그를 대표하는 작품은 많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종달새 노래할 때>를 빼놓아선 안됩니다!


3. 김향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김환기의 예술적 동지이자 아내의 삶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4. 파리 시대를 거치며 김환기는 서구 화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키워 갔습니다.


5. 그중 김환기가 가장 애정했던 오브제는 '달항아리'였습니다.


6.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그를 대표하는 화조임과 동시에 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녹은 예술혼입니다.


7. 131억이라는 최고 낙찰가를 받았던 김환기의 <우주>. 이는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회장의 낙찰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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