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 Tracey Emin. My Bed (detail), 1998.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Tate, loan from the Duerckheim Collection.
ARTLETTER | artist
Editor. Park Jung-min
VOL.100 작가는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트레이시 에민
오늘의 레터, 이전에 없던 파격적인 방식으로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화하는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입니다.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in her studio in Margate, England, with a painting in progress. Credit. Charlie Gates for The New York Times
트레이시 에민은 1963년생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YBAs) 소속 영국 예술가입니다. 찰스 사치의 전시회에서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이후 첫 단독 전시회에서 ‘나의 침대 1999’로 터너상 후보에 오르며 명성을 얻었어요. 에민은 드로잉, 설치, 판화,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작품세계를 넓혀 나갔습니다.
여기서 잠깐!! 👀
아트레터 구독자님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20세기 중반 이후 나타난 예술 및 문학 사조로, 근대성에 대한 반발과 해체의 중점을 두고 크게 확산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다양한 문화 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요소가 뒤섞인 형태를 추구했죠. 작가들은 진지함보다는 재미와 아이러니를 좋아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 1편에 이어 2편으로 더욱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알아볼까요?


쉽고 빠르게 '포스트모더니즘' 2편 배워봅시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웠어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라데트족 (Ladette) 🧔♀️ 🍺 🚬
라데트란 1990~2000년대 초에 일어난 하위문화로 시끄럽고 무례하며 거칠고 술과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지칭합니다. 한마디로 반항아라고 할 수 있어요. 성별 고정관념과 불평등을 깨고 여자들도 남자만큼 혹은 그 이상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여성성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에민의 기존 관념을 벗어난 작품과 매스컴에 비치지는 무례하고 솔직한 모습은 이런 시대정신과 맞물리며 라데트족의 상징이 됩니다. (반대로 여성 혐오적이거나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래드Lad culture라고 불립니다.)
2. 셀프 브랜딩의 대가 👩🎨
에민은 문란한 성생활, 욕설, 음주, 흡연을 하며 90년대 후반 문화적 상징이 됩니다. 이런 불량소녀 이미지는 각종 TV프로그램과 커머셜을 통해 상업적으로 소비됩니다. Becks 맥주, 봄베이진 광고에서 직접 모델을 하고 토크쇼, 패션쇼 등에 출연하며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캐릭터를 굳혀갔습니다.
3. 상처를 승화하다 🎨 🏫
트레이시 에민은 십대부터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었고 이후에도 우울증, 두 번의 낙태와 유산, 자살시도 등을 겪으며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말년에는 방광암으로 인해 자궁, 림프절, 요도 등 여러 장기들을 절제해야 했어요. 하지만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인생의 고통과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해 치유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픔을 준 도시로 돌아가 도시 재생과 예술가 육성을 위해 아트 스튜디오를 설립합니다.

나를 드러내기
트레이시 에민은 영국인 어머니와 터키계 키프로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쌍둥이 형제 폴과 마게이트 Margate에서 자랐습니다. 유년 시절, 그녀는 다수의 아동학대와 성폭행을 경험하고 15세의 나이에 마게이트를 떠납니다. 에민은 켄트 디자인 연구소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런던의 왕립예술학교에서 회화로 석사를 취득합니다.


Tracey Emin,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트레이시 에민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논란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내가 같이 잔 모든 사람들 Everyone i have slept with’입니다. 작가가 직접 봉재 해 텐트에 아플리케(천 위에 덧대거나 꿰매는 방식) 방식으로 부착한 작품은 1963년부터 1995년 까지 함께 잔 102명의 사람의 이름을 보여줍니다.
‘같이 잔’ 사람은 꼭 성관계를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잠을 잔 사람도 포함되죠. 그 때문에 이름에는 가족, 친구, 술자리 파트너, 연인, (두 개의 번호로 표기된) 태아도 포함됩니다. 2004년 가디언즈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작품에 대해 ‘낙태, 강간, 십대 섹스, 학대, 빈곤’에 대한 작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이 작품을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004년,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런던 모마트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다수의 작품과 함께 소실되었어요.
어떤 사람은 침대에서나 벽에 기대어 섹스했고, 어떤 사람은 할머니처럼 그냥 잤어요. 할머니 침대에 누워서 손을 잡았어요. 라디오를 같이 듣고 졸면서 잠들곤 했어요. 사랑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과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My Bed, 1998,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Tate, © ADAGP, Paris
트레이시 에민의 가장 악명높은 작품이자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 ‘나의 침대 My Bed’입니다. 대인 관계로 인한 우울증으로 나흘 동안 누워 있던 침대를 그대로 전시장에 전시한 자전적 작품입니다. 침대 시트는 신체 분비물로 얼룩져 있고 생리혈이 묻은 속옷은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빈 술병, 속옷, 사용한 콘돔, 담뱃갑, 슬리퍼,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어 당시 그녀의 불안정했던 정신상태를 볼 수 있어요.
작가는 침대 위에서 술 외에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 침체기에 있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 상태를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 전시한 것이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활의 흔적을 그대로 가져온 작품은 관객에게서 호오가 극명히 나뉘게 됩니다.

Tracey Emin, My Bed, 1998,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Tate, © ADAGP, Paris
취약성에 대한 강렬한 묘사에 공감하는 이들은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반면, 작품에 반발하는 대중과 비평가들은 ‘예술가들이 지저분한 침실을 미화한다’, ‘끝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오마주’라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어요.

이 작품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1999년, 중국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위안 차이와 젠 준 시가 전시를 관람하던 중 맨몸으로 침대에 뛰어올랐습니다. 그들은 경비원에게 끌려 나가기 전까지 15분 동안 침대에서 배게 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침실을 바라보며 '맙소사. 내가 죽어서 여기서 발견된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이곳은 내가 죽기에 최악의 장소가 아닐 거라고, 이곳은 나를 살려준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트레이시 에민과 슈나벨의 인터뷰, Lehmann Maupin, 2006

오프라인 진출 The Shop

Tracey Emin and Sarah Lucas, The Shop, London, 1993. Courtesy- Pauline Daly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graph- Pauline Daly


Tracey Emin and Sarah Lucas, The Shop, London, 1993. Courtesy- Pauline Daly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graph- Pauline Daly
1992년 예술가로서 아직 그럴듯한 경력이 없었던 트레이시 에민은 같은 YBAs이자 예술가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사라 루카스(Sarah Lucas)와 브릭레인에 샵을 엽니다. 더샵(The Shop)은 전통적인 예술 스튜디오의 대안으로 창작의 안식처이자 사회적 공간을 표방했어요. 뿐만 아니라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이자 때때로 동시대 예술가들이 모여 파티를 여는 장소가 됐어요.
루카스와 에민은 직접 만든 배지, 티셔츠, 재떨이, 답뱃갑으로 만든 토끼 등을 판매했어요. 대개 저렴하거나 버려진 재료를 그들만의 미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었죠. 특히 인기 있던 제품은 ‘나 엿됐어’, ‘완전히 등신’, ‘그녀는 케밥’ 등의 파격적인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데미안 허스트의 얼굴이 있는 재떨이였다고 합니다. 제품에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제품은 임의적으로 50펜스에서 시작해 500파운드까지 책정됐어요.

Tracey Emin and Sarah Lucas, A group of seven works from The Shop, 1993. Courtesy- © Tracey Emin, Sarah Lucas and Phillips
가게가 문을 닫은 이후에 더샵은 쇼디치혁명이라 불렸어요. 당시 동런던의 쇼디치는 전통적 예술에서 상업적 미술로의 변환하는 지점에 있었는데 그 가운데 예술가들이 스스로 그 일부가 됐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관계’였다

Lit up … ,Tracey Emin. Photograph- David Levene_The Guardian

Tracey Emin, Terribly Wrong, 1997

Tracey Emin, Just Waiting, 2022, 3 colour lithograph on Somerset

Tracey Emin, There was blood, 2022, © Tracey-Emin. Photo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에민의 작품을 피상적으로 본다면 성적이며 도발적인 작품이라고 일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관계에서 비롯된 만성적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았던 에민에게 예술은 시절의 증언이자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한 구원이었습니다. 한때 침대 위 무기력의 심연의 빠져 시체처럼 누워있던 에민은 그 상처를 자기의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예술로 승화했습니다.
현재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이 자란 마게이트에서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열어 지역 예술가들을 육성하고 지역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어릴적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준 공간을 다른이에겐 즐거움의 장소로 만들어 준 것이죠.
그녀는 여전히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자신이 겪은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을 페인팅과 설치로 제작합니다.
예술을 만드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요.
예술은 항상 저를 돌봐줍니다. 사랑하고, 돌보고, 필요로 해요.
-AnOther 인터뷰,로라 올솝, 2023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트레이시 에민은 찰스 사치의 전시회에서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로 예술가로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2. 트레이시 에민의 자유분방함, 솔직함 등이 당시 런던의 하위 문화였던 '라데트'와 맞물려 라데트족의 상징이 됩니다.
3. '나의 침대'라는 작품으로 이전에 시도해 보지 않은 방식의 전시를 보여주며 터너상 후보에 오릅니다.
4. 예술가 사라 루카스와 함께 '더샵'이라는 오프라인 샵을 열어 작가가 직접 만든 것들을 판매했습니다.
5. 현재 그녀는 자신이 자란 마게이트에 아트 스튜디오를 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지역활성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썸네일: Tracey Emin. My Bed (detail), 1998.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Tate, loan from the Duerckheim Collection.
ARTLETTER | artist
Editor. Park Jung-min
VOL.100 작가는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트레이시 에민
오늘의 레터, 이전에 없던 파격적인 방식으로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화하는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입니다.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in her studio in Margate, England, with a painting in progress. Credit. Charlie Gates for The New York Times
트레이시 에민은 1963년생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YBAs) 소속 영국 예술가입니다. 찰스 사치의 전시회에서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이후 첫 단독 전시회에서 ‘나의 침대 1999’로 터너상 후보에 오르며 명성을 얻었어요. 에민은 드로잉, 설치, 판화,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작품세계를 넓혀 나갔습니다.
아트레터 구독자님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20세기 중반 이후 나타난 예술 및 문학 사조로, 근대성에 대한 반발과 해체의 중점을 두고 크게 확산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다양한 문화 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요소가 뒤섞인 형태를 추구했죠. 작가들은 진지함보다는 재미와 아이러니를 좋아했어요. 포스트모더니즘 1편에 이어 2편으로 더욱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알아볼까요?
쉽고 빠르게 '포스트모더니즘' 2편 배워봅시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웠어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라데트족 (Ladette) 🧔♀️ 🍺 🚬
라데트란 1990~2000년대 초에 일어난 하위문화로 시끄럽고 무례하며 거칠고 술과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지칭합니다. 한마디로 반항아라고 할 수 있어요. 성별 고정관념과 불평등을 깨고 여자들도 남자만큼 혹은 그 이상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여성성의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에민의 기존 관념을 벗어난 작품과 매스컴에 비치지는 무례하고 솔직한 모습은 이런 시대정신과 맞물리며 라데트족의 상징이 됩니다. (반대로 여성 혐오적이거나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래드Lad culture라고 불립니다.)
2. 셀프 브랜딩의 대가 👩🎨
에민은 문란한 성생활, 욕설, 음주, 흡연을 하며 90년대 후반 문화적 상징이 됩니다. 이런 불량소녀 이미지는 각종 TV프로그램과 커머셜을 통해 상업적으로 소비됩니다. Becks 맥주, 봄베이진 광고에서 직접 모델을 하고 토크쇼, 패션쇼 등에 출연하며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캐릭터를 굳혀갔습니다.
3. 상처를 승화하다 🎨 🏫
트레이시 에민은 십대부터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었고 이후에도 우울증, 두 번의 낙태와 유산, 자살시도 등을 겪으며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말년에는 방광암으로 인해 자궁, 림프절, 요도 등 여러 장기들을 절제해야 했어요. 하지만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인생의 고통과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해 치유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픔을 준 도시로 돌아가 도시 재생과 예술가 육성을 위해 아트 스튜디오를 설립합니다.
나를 드러내기
트레이시 에민은 영국인 어머니와 터키계 키프로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쌍둥이 형제 폴과 마게이트 Margate에서 자랐습니다. 유년 시절, 그녀는 다수의 아동학대와 성폭행을 경험하고 15세의 나이에 마게이트를 떠납니다. 에민은 켄트 디자인 연구소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런던의 왕립예술학교에서 회화로 석사를 취득합니다.
Tracey Emin,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
트레이시 에민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논란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내가 같이 잔 모든 사람들 Everyone i have slept with’입니다. 작가가 직접 봉재 해 텐트에 아플리케(천 위에 덧대거나 꿰매는 방식) 방식으로 부착한 작품은 1963년부터 1995년 까지 함께 잔 102명의 사람의 이름을 보여줍니다.
‘같이 잔’ 사람은 꼭 성관계를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잠을 잔 사람도 포함되죠. 그 때문에 이름에는 가족, 친구, 술자리 파트너, 연인, (두 개의 번호로 표기된) 태아도 포함됩니다. 2004년 가디언즈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작품에 대해 ‘낙태, 강간, 십대 섹스, 학대, 빈곤’에 대한 작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이 작품을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004년,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런던 모마트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다수의 작품과 함께 소실되었어요.
Tracey Emin, My Bed, 1998,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Tate, © ADAGP, Paris
트레이시 에민의 가장 악명높은 작품이자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 ‘나의 침대 My Bed’입니다. 대인 관계로 인한 우울증으로 나흘 동안 누워 있던 침대를 그대로 전시장에 전시한 자전적 작품입니다. 침대 시트는 신체 분비물로 얼룩져 있고 생리혈이 묻은 속옷은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빈 술병, 속옷, 사용한 콘돔, 담뱃갑, 슬리퍼,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어 당시 그녀의 불안정했던 정신상태를 볼 수 있어요.
작가는 침대 위에서 술 외에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 침체기에 있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 상태를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 전시한 것이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활의 흔적을 그대로 가져온 작품은 관객에게서 호오가 극명히 나뉘게 됩니다.
Tracey Emin, My Bed, 1998,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Tate, © ADAGP, Paris
취약성에 대한 강렬한 묘사에 공감하는 이들은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반면, 작품에 반발하는 대중과 비평가들은 ‘예술가들이 지저분한 침실을 미화한다’, ‘끝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오마주’라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어요.
이 작품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1999년, 중국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위안 차이와 젠 준 시가 전시를 관람하던 중 맨몸으로 침대에 뛰어올랐습니다. 그들은 경비원에게 끌려 나가기 전까지 15분 동안 침대에서 배게 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오프라인 진출 The Shop
Tracey Emin and Sarah Lucas, The Shop, London, 1993. Courtesy- Pauline Daly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graph- Pauline Daly
Tracey Emin and Sarah Lucas, The Shop, London, 1993. Courtesy- Pauline Daly and Sadie Coles HQ, London; photograph- Pauline Daly
1992년 예술가로서 아직 그럴듯한 경력이 없었던 트레이시 에민은 같은 YBAs이자 예술가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사라 루카스(Sarah Lucas)와 브릭레인에 샵을 엽니다. 더샵(The Shop)은 전통적인 예술 스튜디오의 대안으로 창작의 안식처이자 사회적 공간을 표방했어요. 뿐만 아니라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이자 때때로 동시대 예술가들이 모여 파티를 여는 장소가 됐어요.
루카스와 에민은 직접 만든 배지, 티셔츠, 재떨이, 답뱃갑으로 만든 토끼 등을 판매했어요. 대개 저렴하거나 버려진 재료를 그들만의 미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었죠. 특히 인기 있던 제품은 ‘나 엿됐어’, ‘완전히 등신’, ‘그녀는 케밥’ 등의 파격적인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데미안 허스트의 얼굴이 있는 재떨이였다고 합니다. 제품에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제품은 임의적으로 50펜스에서 시작해 500파운드까지 책정됐어요.
Tracey Emin and Sarah Lucas, A group of seven works from The Shop, 1993. Courtesy- © Tracey Emin, Sarah Lucas and Phillips
가게가 문을 닫은 이후에 더샵은 쇼디치혁명이라 불렸어요. 당시 동런던의 쇼디치는 전통적 예술에서 상업적 미술로의 변환하는 지점에 있었는데 그 가운데 예술가들이 스스로 그 일부가 됐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관계’였다
Lit up … ,Tracey Emin. Photograph- David Levene_The Guardian
Tracey Emin, Terribly Wrong, 1997
Tracey Emin, Just Waiting, 2022, 3 colour lithograph on Somerset
Tracey Emin, There was blood, 2022, © Tracey-Emin. Photo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에민의 작품을 피상적으로 본다면 성적이며 도발적인 작품이라고 일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관계에서 비롯된 만성적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았던 에민에게 예술은 시절의 증언이자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한 구원이었습니다. 한때 침대 위 무기력의 심연의 빠져 시체처럼 누워있던 에민은 그 상처를 자기의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예술로 승화했습니다.
현재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이 자란 마게이트에서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열어 지역 예술가들을 육성하고 지역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어릴적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준 공간을 다른이에겐 즐거움의 장소로 만들어 준 것이죠.
그녀는 여전히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자신이 겪은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을 페인팅과 설치로 제작합니다.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트레이시 에민은 찰스 사치의 전시회에서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로 예술가로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2. 트레이시 에민의 자유분방함, 솔직함 등이 당시 런던의 하위 문화였던 '라데트'와 맞물려 라데트족의 상징이 됩니다.
3. '나의 침대'라는 작품으로 이전에 시도해 보지 않은 방식의 전시를 보여주며 터너상 후보에 오릅니다.
4. 예술가 사라 루카스와 함께 '더샵'이라는 오프라인 샵을 열어 작가가 직접 만든 것들을 판매했습니다.
5. 현재 그녀는 자신이 자란 마게이트에 아트 스튜디오를 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지역활성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