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3 삶의 고통 위에 피어난 예술,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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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3 삶의 고통 위에 피어난 예술, 프리다 칼로

: 오늘의 레터,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소개합니다!


프리다 칼로, 가시나무 목걸이와 벌새가 그려진 자화상, 1940

출처:fridakahlo.org


화려한 색채, 짙은 눈썹의 개성 넘치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한번 보면 잘 잊히지 않을만큼 아주 강렬합니다. 칼로는 강렬한 자신의 그림답게 아주 격정적이고 극적인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삶을 살며 끊임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지만, 그것에 굴복하기보다는 그러한 아픔을 예술을 통해 승화하며 극복해나갔습니다. 오늘의 레터를 통해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 세계를 이해해보아요! 💖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1. 육체적 고통 💧

프리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18살 때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에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칼로는 사고의 후유증과 부상으로 인해 평생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고,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해야했으며, 세 차례의 유산까지 경험했습니다. 칼로는 이러한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습니다.  



2. 사랑의 아픔 💘

칼로는 멕스코의 거장이었던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습니다. 디에고의 외도는 칼로에게 큰 정신적 고통을 주었고, 이후 둘은 별거와 이혼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 재결합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애증의 연인으로 남았습니다.  칼로는 디에고와의 관계에서 겪은 사랑의 아픔과 혼란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3. 자화상 ✍️

교통사고 이후 칼로는 오랜 시간동안 병원에서 꼼짝없이 누워 고통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칼로의 어머니는 평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칼로를 위해 병상 침대에 특수 이젤을 붙여주었고, 병상 천장에는 거울을 달아주었습니다. 칼로는 지루한 시간동안 그나마 자유로웠던 양손을 통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칼로의 자화상은 그녀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몸과 마음의 고통을 표출해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

아트레터 구독자님들! 미술사조 중 '상징주의'를 알고 있나요? 멘탈이 나가면 우린 항상 뭉크의 '절규'를 떠올립니다. 이 그림은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정신이 붕괴될 때 어떤 표정이 보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하지만 우리는 '절규'라는 작품만 알고, 그 뒷이야기는 잘 모릅니다. 이 그림이 왜 나왔고, 어떻게 뭉크가 '상징주의'와 사랑에 빠졌는지. '상징주의' 도대체 무엇일까요?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도 궁금하지 않나요?  

쉽고 빠르게 '상징주의' 배워봅시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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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격정, 프리다 칼로의 생애 🌊



5살의 프리다 칼로

출처: fridakahlo.org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났으며,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었습니다. 칼로는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고, 아버지는 그런 칼로를 멕시코 최고의 명문 중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


 

프리다 칼로

출처: 월간조선


그러던 칼로의 삶을 완전히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8살이 되던 1925년,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며 칼로는 큰 부상을 겪게 됩니다. 그녀는 겨우 목숨은 부지했지만, 온몸의 뼈가 골절되며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칼로는 1년 동안 병원에서 척추 교정용 코르셋을 착용한 채 꼼짝없이 누워 고통을 참아내야 했습니다. 칼로의 어머니는 평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칼로를 위해 병상 침대에 특수 이젤을 붙여주었고, 병상 천장에는 거울을 달아주었습니다. 칼로는 지루한 시간동안 그나마 자유로웠던 양손을 통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의사 대신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 때문에, 또 내가 제일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린다.”

 


칼로와 디에고의 결혼식

출처: Morton Auctions/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고 싶었던 칼로는 1928년, 멕시코의 거장이었던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갑니다. 이를 계기로 디에고와 칼로는 서로 사랑에 빠졌고, 칼로가 스물한 살이 되던 1929년 8월 결혼식을 올리죠. 👰🤵 칼로는 결혼 생활 동안 디에고와의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하고, 1932년 어머니까지 여의면서 큰 슬픔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녀가 이러한 슬픔을 겪고 있을 때, 디에고는 칼로의 여동생과 불륜을 하며 그녀의 고통을 더합니다.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남편의 외도 소식, 그리고 연이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까지 듣게 된 칼로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의 나날을 보내게 되죠. 💧 이후, 프리다와 리베라는 별거와 이혼까지 하게 되고, 프리다는 분노에 차서 다른 남성과 여성을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둘은 다시 재결합을 합니다.

 

“나는 평생에 걸쳐 두 번의 큰 사고를 겪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가다가 겪은 교통사고였고 두 번째는 디에고와의 만남이었다.”

 


프리다 칼로, Viva la vida, 1954

출처: 월간조선


칼로의 건강은 194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칼로는 거듭되는 수술 실패로 점점 더 나빠지는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캔버스 위에 자신의 아픔을 그려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칼로는 1953년 멕시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칼로는 침대에 누운 채로 구급차로 이동해 전시에 참여했죠. 그리고 칼로는 그다음 해인 1954년에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 그림은 프리다 칼로가 죽기 8일 전에 완성한 ‘Viva la Vida’라는 작품으로,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다양한 모양과 각도로 잘려있는 이 수박의 단면처럼, 프리다 칼로는 정말 강렬하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을 살다 갔습니다.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칼로

출처: fridakahlo.org


어린 나이부터 소아마비를 겪고 서른 번이 넘는 외과수술을 버텨내야 했으며, 사랑하는 디에고로부터 배신당하고 세 번이나 유산을 겪어야 했던 프리다 칼로. 그녀는 생애 내내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인생을 향해 ‘만세’를 외치며, 자신이 마주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내었습니다. 지금부터 그녀가 작품을 통해 묘사한 인생의 강렬한 고통, 그리고 삶을 향한 의지의 흔적을 들여다보러 가볼까요? 💭





육체의 아픔을 그리다 🎨


칼로의 자화상은 그녀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묘사하기보다는,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아픔을 표출해내며 고통을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떠 있는 침대(헨리 포드 병원), 1932

출처: 동아일보


이 작품은 1932년에 그려진 ‘떠 있는 침대(헨리 포드 병원)’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가 디트로이트에 있던 미국 자동차 회사인 헨리 포드사에서 벽화 작업을 하던 시절 임신을 했고, 그 회사의 부속 병원인 헨리 포드 병원에서 유산을 했습니다. 과거 교통 사고의 후유증, 그리고 골반 기형이 원인이었죠. 그림 속 칼로는 건조한 하늘과 삭막한 땅 사이에서 홀로 눈물과 피를 흘리고 누워있고, 칼로의 하반신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침대 주변에는 유산된 아기, 교통사고로 인해 부서진 자신의 척추와 골반을 표현하는 듯 흩어져 있는 척추뼈들과 골반뼈, 시든 꽃 등이 떠다닙니다. 칼로는 아이를 잃은 이후 자신이 겪었던 죽음의 고통육체적 아픔, 심리적 우울감을 그림으로 표현해내었습니다. 💧 훗날 이 그림은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뒤섞은 듯한 칼로 특유의 화풍을 세운 첫 번째 작품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1944

출처: fridakahlo.org


이 작품은 칼로가 1944년에 그린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으로, 칼로가 척추 수술을 받은 직후에 그려졌습니다. 작품을 보면, 그림 속 칼로의 몸은 정형외과용 코르셋으로 조여진 채 겨우 지탱되고 있으며, 벌거벗은 상반신에는 척추 같은 철 기둥이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칼로를 지탱하는 철 기둥이 교통사고 당시 골절된 칼로의 척추처럼 부분부분 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죠. 또한 칼로의 얼굴과 몸통에는 작은 못이 박혀있고, 눈에서는 하얀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있는 만신창이의 몸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칼로의 처지를 잘 형상화해내고 있지요.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1946

출처: fridakahlo.org


칼로의 고통과 슬픔은 1946년의 ‘상처 입은 사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1946년 칼로는 뉴욕에서 척추 수술을 받지만, 그녀의 수술은 실패로 끝납니다. 멕시코로 돌아온 후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우울을 겪었던 칼로는 자신의 모습을 화살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는 어린 사슴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 칼로는 그림의 하단에 ‘운명’을 의미하는 ‘karma’라는 단어를 적음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슬픔을 나타내었습니다.





사랑의 아픔을 그리다 💘


칼로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배우자였던 디에고에게 받은 정신적 고통까지도 그림으로 그려냈습니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출처: fridakahlo.org


이 그림은 칼로와 디에고가 이혼을 했던 1939년에 그려진 ‘두 명의 프리다’로, 이혼 직후의 상처가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 오른쪽의 칼로는 멕시코의 전통 의상을 입고, 소년 디에고의 초상이 그려진 작은 액자를 들고 있습니다. 반면, 왼쪽의 칼로는 레이스 장식이 달린 흰색 유럽풍 드레스를 입고 있고, 손에는 가위를 쥐고 있으며, 드러난 심장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두 명의 칼로는 각각 디에고를 사랑하는 자신디에고를 거부하는 자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림을 통해 칼로는 자신을 배신한 디에고에 대한 분노 및 고통디에고를 향한 사랑을 동시에 나타내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충돌하는 여러 자아를 표현해냈습니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나, 1949

출처: fridakahlo.org


디에고가 칼로의 친구와 또다시 바람을 피워 칼로를 낙담하게 만들었던 1949년, 42세이던 그녀는 ‘디에고와 나’라는 작품을 그립니다. 이 작품은 칼로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그리고 역대 중남미 최고가 예술작품으로 유명하죠. 작품 속 칼로의 얼굴 위에는 남편 디에고의 얼굴이 박혀져 있고, 디에고는 이마 위에 제3의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림 속 칼로의 표정은 디에고에 대한 분노와 상심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며, 칼로의 머리카락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목을 금방이라도 조일 듯 위협적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이 역시 디에고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디에고를 결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 못하는 칼로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디에고와 칼로, 출처: fridakahlo.org


칼로와 디에고는 마지막까지 격정적인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서로에게 애증의 연인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고통스러운 사랑이었지만, 고통스러웠기에 둘의 사랑은 더욱 절절했습니다. 칼로가 남긴 다음 말에서, 우리는 칼로와 디에고가 어떤 연인 사이였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디에고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또 디에고 같은 남자와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털어놓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둑에 물이 흐른다고, 흙이 비가 온다고, 원자가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고통 받지 않듯이 나와 디에고의 만남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사람의 동반자라는 어렵고 불투명한 역할을 통해 나는 균형을 얻었다. 빨간색 속의 초록 점과 같은 균형 말이다.





지금까지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프리다 칼로의 예술 세계를 함께 알아보았어요!

절망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잃지 않고, 고통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림을 그렸던 칼로의 삶은

현재에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칼로의 그림이 여러분에게도 고통을 극복하는 힘, 그리고 생의 에너지를 전달해주었길 바라며,

요약과 함께 오늘의 아트레터 마치겠습니다! 💕 







아팅이가 정리해보는 오늘의 레터 내용! 

1.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나,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2. 18살이 되던 1925년,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칼로는 큰 부상을 겪게 됩니다. 이 사고는 칼로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3. 칼로는 1년 동안 병원에서 척추 교정용 코르셋을 착용한 채 꼼짝없이 누워 고통을 참아내야 했고, 칼로의 어머니는 평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칼로를 위해 병상 침대에 특수 이젤과 거울을 달아주었습니다.

4. 칼로는 1929년 멕시코의 거장이었던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을 합니다. 

5. 디에고의 계속되는 외도, 세 번의 유산으로 인해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결국 칼로와 디에고는 애증의 연인이자 서로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마지막까지 함께했습니다.

6. 하지만 칼로는 거듭되는 수술 실패로 점점 더 나빠지는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캔버스 위에 자신의 아픔을 그려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7. 칼로는 1953년 멕시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칼로는 침대에 누운 채로 구급차로 이동해 전시에 참여했죠.

8. 칼로는 그다음 해인 1954년에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9. 그녀는 생애 내내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마주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내었습니다. 

10. 절망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잃지 않고, 고통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림을 그렸던 칼로의 삶은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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