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다른 안무가 한 무대에서 펼쳐진다면, 국립현대무용단 〈트리플 빌〉

조회수 204

안무의 최전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한 사람이 짜올린 시퀀스, 그 시퀀스를 무대 위에서 확장하는 몇 명의 몸, 그리고 그 몸을 통해 관객에게 도착하는 감각. 안무는 무용수의 몸을 매개로 안무가의 언어를 세공하는 작업이지만, 그 언어는 세대와 도시, 무대의 형태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도착합니다.


오는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열리는 국립현대무용단의 〈트리플 빌〉은 그 언어를 세 편에 나눠 한 무대에 얹는 기획공연입니다. 
국내에서 굳건한 안무 세계를 세워온 이재영, 세계적인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그리고 신체성을 바탕으로 관계의 구조를 탐구해 온 정철인. 
세 명의 안무가가 짠 세 편의 작품이 러닝타임 110분 안에서 연이어 상연됩니다.


〈트리플 빌〉이 뭘까요

'트리플 빌 (Triple Bill)'은 서양 공연예술에서 오래된 저녁 프로그램 포맷입니다. 하나의 저녁 공연에 세 편의 짧은 작품을 나란히 얹어, 서로 다른 세 개의 서사와 감각을 이어서 보여주는 방식이에요.


국립현대무용단이 이번에 선택한 세 편은 각각 안무의 언어가 완전히 다릅니다. 국내 안무가가 시스템과 몸의 긴장을 풀어낸 작품, 컨템포러리 안무의 방향을 결정지은 세계적 안무가의 시퀀스, 그리고 무대 위에 스케이트보드까지 올려버리는 감각. 한 저녁에 세 편을 이어 만난다는 건, 지금의 안무가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몸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무대를 채울 수 있는지를 한 자리에서 확인하는 경험이기도 해요.


                       01_lead_oftr.jpg

국립현대무용단 〈트리플 빌〉 — 윌리엄 포사이스의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 무대 위.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 Aiden Hwang


시스템에 저항하는 몸의 확장, 이재영 〈메커니즘〉

트리플 빌의 첫 장을 여는 건 국내 컨템포러리 안무가 이재영의 〈메커니즘 (Mechanism)〉입니다. 이재영 안무가는 사회 시스템과 그 안에서의 개인,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몸의 긴장을 꾸준히 다뤄온 안무가예요.


〈메커니즘〉은 그 세계관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안무는 어떤 규칙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지, 그 규칙 안에서 개인은 어떻게 저항하거나 타협하는지를 안무의 언어로 시각화합니다. 무용수들이 한 방향으로 밀려가다 반대로 튕겨나오고, 다시 서로에게 얽히는 시퀀스가 반복되는데요. 언뜻 기계적인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어긋남과 미묘한 저항의 여지가 언제나 남아있습니다.


트리플 빌에서 상연되는 이번 버전은 처음 발표됐던 6명 구성에서 9명으로 확장됐어요. 무용수가 셋 늘어난다는 건 단순히 무대가 더 붐빈다는 뜻이 아니라, 시스템이 감당해야 할 개인의 수가 늘어나고, 그만큼 관계의 조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죠. 안무 안에서 '충돌'과 '연결'이 만들어지는 밀도 자체가 달라지는 겁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훨씬 더 다이내믹한, 확장된 스케일의 〈메커니즘〉을 만나게 되는 셈이에요.


                                03_leejaeyoung_profile.jpg

안무가 이재영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03b_mechanism_stage.jpg

9명으로 확장된 〈메커니즘〉의 무대.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 Aiden Hwang


편평한 무대 위에 그린 급류, 포사이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

이어지는 두 번째 순서는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e)의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 (One Flat Thing, reproduced)〉입니다. 포사이스는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예술감독을 거쳐 자신의 이름을 딴 포사이스컴퍼니를 운영한, 20세기 후반 컨템포러리 안무의 방향을 결정지은 세계적인 안무가예요.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은 2000년 프랑크푸르트발레단에서 초연된 작품입니다. 무대에 놓인 20개의 금속 테이블이 세팅의 전부인데요. 이 테이블 사이를 무용수들이 급류처럼 가로지르며 서로 만나고 흩어지고, 때로는 테이블 위에 몸을 얹기도 하고, 그 아래로 미끄러지기도 하는 안무예요. 오브제가 던져진 무대 위에서 몸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분배될 수 있는가, 라는 포사이스의 오랜 질문이 안무의 언어로 압축돼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트리플 빌은 이 안무를 한국 무용수의 몸으로 다시 짜서 얹습니다. 유럽 컨템포러리의 흐름을 몸에 담아 온 무용수들이 아니라, 한국 현대무용의 결로 훈련된 신체가 포사이스의 언어를 통과할 때 어떤 감각이 만들어지는지를 목격할 수 있는 무대예요. 안무의 원형은 유지하면서 한국 현대무용의 결이 그 위에 겹쳐지는,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의 순간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02_forsythe_profile.jpg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 (William Forsythe)
이미지 출처: ⓒJulian Gabriel Richter /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02b_oftr_stage.jpg

20개의 금속 테이블 위에서 시작되는 급류의 순간.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 Aiden Hwang


무대 위 킥보드와 스케이트보드, 정철인 〈비보호〉

세 번째 순서, 그리고 한 저녁의 마지막을 여는 안무는 정철인의 〈비보호 (Unprotected)〉입니다. 정철인 안무가는 신체성을 기반으로 움직임의 가능성과 관계의 구조를 탐구해 온 안무가예요. 동시대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무대 위에 구현해 왔고, 최근에는 인간 중심의 관점을 넘어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이 맺는 관계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이번 〈비보호〉에서 그 탐구가 만나는 건 익스트림 스포츠의 언어입니다. 단순히 스포츠의 이미지를 안무 안에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에서 사용되는 도구·리스크·속도를 무대의 전제로 삼는 방식이죠.


〈비보호〉의 무대에는 실제로 전동 킥보드와 스케이트보드가 오릅니다. 이번 트리플 빌 버전에는 여기에 BMX 자전거가 새로 더해져, 무용수들이 이동하는 궤적 위에 또 하나의 속도가 얹혀요. 무용수들은 그 위에 올라 이동하기도 하고, 보드와 자전거가 지나가는 궤적을 몸으로 따라잡거나, 반대로 그 궤적을 피해가며 안무를 이어갑니다. 작품의 제목이 '비보호'인 것도 이 위험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장치예요. 길 위를 지나는 존재들이 서로에게 완충 없이 부딪치는, 도시적 감각을 닮은 무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안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몸으로 던진다는 점이에요. 무용의 전통적인 신체 훈련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도구를 무대에 얹으면서, 안무는 무용수의 몸을 넘어 오브제·공간·관계까지 안무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트리플 빌의 마지막 순서로 정철인이 놓인 이유도, 세 편을 이어 보고 나면 지금의 안무가 얼마나 다른 언어와 대화하고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도착하기 때문이에요.


                                        04_jungcheolin_profile.jpg

안무가 정철인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04b_unprotected_stage.jpg

무대에 오른 전동 킥보드와 스케이트보드 — 〈비보호〉 한 장면.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 Aiden Hwang


한 저녁, 세 편이 이어지면 남는 것

세 편이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데도 한 저녁의 프로그램으로 묶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트리플 빌〉은 안무의 스타일을 나열하는 쇼케이스가 아니라, "지금의 안무가 어떤 방식으로 몸을 사고하는가"를 한 번에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이재영이 시스템 안에서 몸을 배열한다면, 포사이스는 오브제 위에서 몸을 분배하고, 정철인은 도구를 몸의 연장선으로 확장합니다. 셋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셈이에요. 관객으로서 세 편을 이어 보게 되면, 답보다도 그 답을 만들어내는 언어의 다양성이 더 크게 남습니다. 안무가 꼭 한 계보 안에서만 자라야 한다거나, 한 언어로만 말해야 한다거나 하는 관습이 조용히 흔들리고, 그 자리에 "안무는 오늘 어디까지 왔는가"라는 훨씬 넓은 질문이 놓입니다.


05_poster.jpg

국립현대무용단 2026 〈트리플 빌〉 공식 포스터.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아트아트 독자를 위한 티켓 이벤트

이번 아트레터에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아트아트 독자에게만 보내주는 티켓 이벤트 소식이 함께 도착했어요. 개막일인 10월 2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공연 S석 티켓을 5쌍, 총 10매 드리는 이벤트입니다. 자세한 참여 방법은 아트아트 인스타그램 계정 @artart.today의 트리플 빌 게시물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세 명의 안무가가 세 편의 언어를 이어 얹는 한 저녁을 직접 확인해 보시고 싶다면 참여해 보세요.


《안무의 오늘을 한 저녁에 만난다면, 국립현대무용단 〈트리플 빌〉》

-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 기간: 2026.10.2(금) ~ 10.4(일)

- 공연 시간: 금 7:30PM / 토·일 3PM

- 러닝타임: 110분 (인터미션 포함)

- 관람등급: 초등학생 이상

- 관람료: R 60,000원 / S 40,000원 / A 20,000원

- 예매: 예술의전당 1668-1352 sac.or.kr

       NOL 티켓 1544-1555 tickets.interpark.com

- 공연문의: 02-3472-1420 (kncdc.kr)


오늘의 아트레터 요약! ☝️

  • 〈트리플 빌〉은 세 명의 안무가가 짠 세 편의 작품을 한 저녁에 이어 얹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공연입니다.
  • 첫 번째 편, 이재영의 〈메커니즘〉은 시스템 안에서 저항하는 몸의 움직임을 9명 구성으로 확장해 다이내믹을 극대화합니다.
  • 두 번째 편, 윌리엄 포사이스의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은 20개 금속 테이블 위를 급류처럼 가로지르는 안무예요.
  • 세 번째 편, 정철인의 〈비보호〉는 무대 위에 전동 킥보드·스케이트보드에 BMX 자전거까지 얹어 도시적 감각의 위험과 관계를 시각화해요.
  • 세 편이 이어지는 러닝타임 110분 동안, 지금의 안무가 어디까지 왔는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어요.
  • 공연은 2026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열립니다.
  • 아트아트 독자에겐 10월 2일(금) 공연 S석 5쌍(10매) 이벤트가 함께 준비돼 있어요.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무용단 · Aiden Hwang (윌리엄 포사이스 프로필: ⓒJulian Gabriel Richter)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