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젊은 왕,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순간 두 눈을 찌르는 남자, 딸의 어깨를 짚고 콜로노스로 걸어가는 눈먼 노인. 우리가 오이디푸스라고 부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승리와 몰락, 그리고 진실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얼굴 위에 있죠.
그런데 이번 가을, 국립극단이 오이디푸스를 다르게 부릅니다.
승리에서 몰락으로 이어지는 곡선이 아니라, 흔들리는 몸과 멀어진 눈으로 황야를 걷는 한 사람으로요.
안트로폴리스 5부작, 그 세 번째 이야기
국립극단은 지금 안트로폴리스라는 이름의 대형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어요. 그리스 비극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5부작인데요.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소포클레스와 함께 이름을 올린 텍스트를, 각기 다른 각색과 연출로 한 편씩 무대에 올리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작품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지난해 제62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무대미술상을 함께 받으며 시리즈의 결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두 번째 〈라이오스〉는 같은 해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상 노미네이트에 이름을 올렸고요. '관객과 평단이 함께 지켜본 시리즈'라는 문장이 과장이 아니게 된 이유예요.
그리고 세 번째 〈오이디푸스〉가 9월 24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립니다.
각색은 정진새, 연출은 강량원. 두 사람의 이름이 이 이야기의 방향을 이미 조용히 말해줍니다.

[안트로폴리스 III] 〈오이디푸스〉 공식 포스터
국립극단 제공
우리가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없다
이번 무대에서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운명과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이 아닙니다. 강량원 연출은 익숙한 서사를 완전히 뒤집는 대신, 그 서사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 인물을 보여줘요. 스스로 눈을 찔러 멀어진 시야, 지팡이에 의지해 흔들리는 몸. 그 몸이 콜로노스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황야를 향합니다.
중요한 건 이 걸음이 더 이상 승리나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신탁을 완성하고 도시를 구원했던 왕은 없고, 대신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채로 다시 걸어야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포스터의 카피가 이렇게 짧게 말합니다. '앞으로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문장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에 놓여요. 우리가 알던 결말 이후의 오이디푸스, 그가 무엇을 짚고 걸을 것인가—이번 무대는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국립극단 제공
각색 정진새 · 연출 강량원, 다시 쓰는 결
각색을 맡은 정진새 작가는 그동안 여성 인물의 목소리를 다시 세우는 작업으로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좁혀온 이름이에요. 사라진 자·잊힌 자의 자리에 언어를 돌려주는 감각이 이번 오이디푸스에도 흘러들었습니다. 왕과 아버지의 자리에서 이야기되어온 오이디푸스가, 이번엔 그 옆에 함께 서 있던 몸들과 나란한 높이에 놓여요.
연출 강량원은 배우의 몸과 리듬을 무대의 텍스트로 다루는 연출가로 오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사 이전에 몸이 먼저 말을 하는 무대. 이번 〈오이디푸스〉에서도 흔들리는 다리, 짚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손, 눈을 감은 채 남아있는 얼굴들이 하나의 문장처럼 쌓입니다.
같은 텍스트를 서로 다른 크리에이티브가 이어받는 안트로폴리스 시리즈에서, 세 번째 이야기가 유독 조용하고 깊어 보이는 이유가 이 조합에 있어요.

국립극단 제공
인간 이후, 연대, 돌봄이라는 오늘의 화두
이번 〈오이디푸스〉가 놓인 자리를 요약해주는 세 단어가 있어요. 인간 이후(Post-human), 연대, 돌봄. 국립극단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의 방향으로 앞세운 이 단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목소리로 반복해 이야기하고 있는 화두와 정확히 겹칩니다.
인간 이후는 인간을 지워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인간만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믿어온 시선을 잠시 내려놓자는 제안이에요.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비인간 존재들
식물, 동물, 흙과 돌, 그리고 우리보다 취약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죠. 오이디푸스는 이제 왕이 아니라,
그 취약한 존재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으로 무대에 섭니다.
연대와 돌봄은 이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개의 손이에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오이디푸스를 누가 짚어주는가, 짚어주는 손은 무엇을 대가로 받는가.
이 질문을 극이 관객에게 되돌려주는데요. 우리는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는 익숙하지만, 함께 걸어야만 하는 순간에는 자꾸 서투른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오이디푸스는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국립극단 제공
무대 위 황야, 그리고 접근성 회차
무대는 최소한의 오브제로 극의 시간을 다시 짭니다. 매끄러운 회백색 바닥 위에 놓인 검은 바위들,
그리고 한쪽에 조용히 뻗어있는 마른 가지. 도시가 무너진 뒤 남은 자리 같기도 하고, 아직 아무 것도 세워지지 않은 시작 같기도 한 풍경이에요.
러닝타임은 120분, 인터미션이 없습니다. 하나의 걸음을 끊지 않고 따라가는 시간인 셈이죠. 관람은 16세 이상 가능하고요.
특히 눈여겨보실 것은 10월 3일(토)부터 10월 5일(월)까지 이어지는 접근성 회차입니다. 이 회차에서는 음성해설,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이동지원이 함께 운영되고, 전 회차에 무대모형 터치투어도 제공돼요. 인간 이후·연대·돌봄이라는 화두를 무대 밖으로 이어내는 국립극단의 방식이 여기에도 담겨 있어요.

국립극단 제공
오이디푸스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물음
그리스 비극을 지금 다시 무대에 올린다는 건, 옛 이야기를 옛 이야기로 반복하는 게 아니에요. 그 이야기를 여전히 우리 옆에 놓고 함께 걷는 일이죠.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이 세 번째 작품에서 오이디푸스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승리도 구원도 아닌 걸음. 그 걸음을 짚어주는 손. 오이디푸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물음은 어쩌면 이 문장 하나일지도 몰라요. 인간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가.
9월 24일 개막을 앞두고, 아트아트 독자 여러분께 이 걸음을 함께 걸어보시길 조심스럽게 권해드립니다.

국립극단 제공
《우리가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없다, 국립극단 〈오이디푸스〉》
- 공연: [안트로폴리스 III] 〈오이디푸스〉 · ANTHROPOLIS III Ödipus
- 작: 소포클레스 · 롤란트 쉼멜페니히
- 각색: 정진새
- 연출: 강량원
- 장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 기간: 2026.09.24(목) - 10.18(일)
- 시간: 평일 19:30 / 토·일·공휴일 15:00 (화 공연 없음) · 9/24·9/25·10/5·10/9은 15:00
- 러닝타임: 120분 (인터미션 없음)
- 관람연령: 16세 이상 (2010.12.31. 출생자까지)
- 티켓: R 60,000원 / S 45,000원 / A 30,000원
- 접근성 회차: 10월 3일(토) - 10월 5일(월) — 음성해설·한국수어통역·한글자막해설·이동지원, 전회차 무대모형 터치투어 제공
- 예매: 국립극단 홈페이지 (http://www.ntck.or.kr/ko/performance/info/257324)
오늘의 아트레터 요약! ☝️
- 국립극단 [안트로폴리스 III] 〈오이디푸스〉가 9월 24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합니다.
-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그리스 비극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대형 프로젝트예요.
- 1편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제62회 동아연극상 3관왕, 2편 〈라이오스〉는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노미네이트를 이뤘습니다.
- 이번 오이디푸스는 승리의 영웅이 아니라, 흔들리는 몸으로 황야를 걷는 한 사람입니다.
- 각색 정진새 · 연출 강량원이 인간 이후·연대·돌봄이라는 오늘의 화두 위에 이야기를 다시 세웠어요.
- 120분 인터미션 없이 이어지며, 10월 3일~5일 접근성 회차에서 음성해설·수어·자막·터치투어를 제공합니다.
- 10월 5일(월) 15시 회차 R석 5분(1인 2매)에 아트아트 독자를 초대합니다.
이미지 출처: 국립극단 제공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젊은 왕,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순간 두 눈을 찌르는 남자, 딸의 어깨를 짚고 콜로노스로 걸어가는 눈먼 노인. 우리가 오이디푸스라고 부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승리와 몰락, 그리고 진실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얼굴 위에 있죠.
그런데 이번 가을, 국립극단이 오이디푸스를 다르게 부릅니다.
승리에서 몰락으로 이어지는 곡선이 아니라, 흔들리는 몸과 멀어진 눈으로 황야를 걷는 한 사람으로요.
안트로폴리스 5부작, 그 세 번째 이야기
국립극단은 지금 안트로폴리스라는 이름의 대형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어요. 그리스 비극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5부작인데요.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소포클레스와 함께 이름을 올린 텍스트를, 각기 다른 각색과 연출로 한 편씩 무대에 올리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작품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지난해 제62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무대미술상을 함께 받으며 시리즈의 결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두 번째 〈라이오스〉는 같은 해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상 노미네이트에 이름을 올렸고요. '관객과 평단이 함께 지켜본 시리즈'라는 문장이 과장이 아니게 된 이유예요.
그리고 세 번째 〈오이디푸스〉가 9월 24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립니다.
각색은 정진새, 연출은 강량원. 두 사람의 이름이 이 이야기의 방향을 이미 조용히 말해줍니다.
[안트로폴리스 III] 〈오이디푸스〉 공식 포스터
국립극단 제공
우리가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없다
이번 무대에서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운명과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이 아닙니다. 강량원 연출은 익숙한 서사를 완전히 뒤집는 대신, 그 서사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 인물을 보여줘요. 스스로 눈을 찔러 멀어진 시야, 지팡이에 의지해 흔들리는 몸. 그 몸이 콜로노스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황야를 향합니다.
중요한 건 이 걸음이 더 이상 승리나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신탁을 완성하고 도시를 구원했던 왕은 없고, 대신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채로 다시 걸어야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포스터의 카피가 이렇게 짧게 말합니다. '앞으로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 문장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에 놓여요. 우리가 알던 결말 이후의 오이디푸스, 그가 무엇을 짚고 걸을 것인가—이번 무대는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국립극단 제공
각색 정진새 · 연출 강량원, 다시 쓰는 결
각색을 맡은 정진새 작가는 그동안 여성 인물의 목소리를 다시 세우는 작업으로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좁혀온 이름이에요. 사라진 자·잊힌 자의 자리에 언어를 돌려주는 감각이 이번 오이디푸스에도 흘러들었습니다. 왕과 아버지의 자리에서 이야기되어온 오이디푸스가, 이번엔 그 옆에 함께 서 있던 몸들과 나란한 높이에 놓여요.
연출 강량원은 배우의 몸과 리듬을 무대의 텍스트로 다루는 연출가로 오래 알려져 있습니다. 대사 이전에 몸이 먼저 말을 하는 무대. 이번 〈오이디푸스〉에서도 흔들리는 다리, 짚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손, 눈을 감은 채 남아있는 얼굴들이 하나의 문장처럼 쌓입니다.
같은 텍스트를 서로 다른 크리에이티브가 이어받는 안트로폴리스 시리즈에서, 세 번째 이야기가 유독 조용하고 깊어 보이는 이유가 이 조합에 있어요.
국립극단 제공
인간 이후, 연대, 돌봄이라는 오늘의 화두
이번 〈오이디푸스〉가 놓인 자리를 요약해주는 세 단어가 있어요. 인간 이후(Post-human), 연대, 돌봄. 국립극단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의 방향으로 앞세운 이 단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목소리로 반복해 이야기하고 있는 화두와 정확히 겹칩니다.
인간 이후는 인간을 지워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인간만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믿어온 시선을 잠시 내려놓자는 제안이에요.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비인간 존재들
식물, 동물, 흙과 돌, 그리고 우리보다 취약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죠. 오이디푸스는 이제 왕이 아니라,
그 취약한 존재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으로 무대에 섭니다.
연대와 돌봄은 이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개의 손이에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오이디푸스를 누가 짚어주는가, 짚어주는 손은 무엇을 대가로 받는가.
이 질문을 극이 관객에게 되돌려주는데요. 우리는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는 익숙하지만, 함께 걸어야만 하는 순간에는 자꾸 서투른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오이디푸스는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국립극단 제공
무대 위 황야, 그리고 접근성 회차
무대는 최소한의 오브제로 극의 시간을 다시 짭니다. 매끄러운 회백색 바닥 위에 놓인 검은 바위들,
그리고 한쪽에 조용히 뻗어있는 마른 가지. 도시가 무너진 뒤 남은 자리 같기도 하고, 아직 아무 것도 세워지지 않은 시작 같기도 한 풍경이에요.
러닝타임은 120분, 인터미션이 없습니다. 하나의 걸음을 끊지 않고 따라가는 시간인 셈이죠. 관람은 16세 이상 가능하고요.
특히 눈여겨보실 것은 10월 3일(토)부터 10월 5일(월)까지 이어지는 접근성 회차입니다. 이 회차에서는 음성해설,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이동지원이 함께 운영되고, 전 회차에 무대모형 터치투어도 제공돼요. 인간 이후·연대·돌봄이라는 화두를 무대 밖으로 이어내는 국립극단의 방식이 여기에도 담겨 있어요.
국립극단 제공
오이디푸스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물음
그리스 비극을 지금 다시 무대에 올린다는 건, 옛 이야기를 옛 이야기로 반복하는 게 아니에요. 그 이야기를 여전히 우리 옆에 놓고 함께 걷는 일이죠.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5부작이 세 번째 작품에서 오이디푸스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승리도 구원도 아닌 걸음. 그 걸음을 짚어주는 손. 오이디푸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물음은 어쩌면 이 문장 하나일지도 몰라요. 인간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가.
9월 24일 개막을 앞두고, 아트아트 독자 여러분께 이 걸음을 함께 걸어보시길 조심스럽게 권해드립니다.
국립극단 제공
《우리가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없다, 국립극단 〈오이디푸스〉》
- 공연: [안트로폴리스 III] 〈오이디푸스〉 · ANTHROPOLIS III Ödipus
- 작: 소포클레스 · 롤란트 쉼멜페니히
- 각색: 정진새
- 연출: 강량원
- 장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 기간: 2026.09.24(목) - 10.18(일)
- 시간: 평일 19:30 / 토·일·공휴일 15:00 (화 공연 없음) · 9/24·9/25·10/5·10/9은 15:00
- 러닝타임: 120분 (인터미션 없음)
- 관람연령: 16세 이상 (2010.12.31. 출생자까지)
- 티켓: R 60,000원 / S 45,000원 / A 30,000원
- 접근성 회차: 10월 3일(토) - 10월 5일(월) — 음성해설·한국수어통역·한글자막해설·이동지원, 전회차 무대모형 터치투어 제공
- 예매: 국립극단 홈페이지 (http://www.ntck.or.kr/ko/performance/info/257324)
오늘의 아트레터 요약! ☝️
이미지 출처: 국립극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