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5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다. 마르셀 뒤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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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마르셀 뒤샹, 샘, 1917,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촬영





VOL.55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다. 마르셀 뒤샹 👀


오늘의 아트 레터는 다양한 형식과 개념을 통해 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입니다. 💫



마르셀 뒤샹의 초상, 만 레이, 1920-21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예일 대학교 미술관


마르셀 뒤샹은 물질보다 정신적, 개념적 예술을 선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 미술과 개념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해요.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을 비롯한 여러 예술 사조를 실험하며 영향을 주었고, 기성품과 일상적인 사물을 예술 작품에 통합하여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의미에 대한 관념에 도전하는 '레디메이드 (Ready-made)' 조각을 선보이며 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어요.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레디메이드 Ready-made

뒤샹은 일상적인 물건을 미술 작품으로 취급하는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도입했어요. 뒤샹은 일상에서 발견된 사물을 그 자체로 미술 작품으로 선보였고 이를 통해 미술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관객들에게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해요. 


2. 다다(Dada)운동과 비규칙성

뒤샹은 1910년대에 유럽에서 일어나 미국으로 퍼진 다다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다다는 전쟁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해 반이성, 반예술을 표방한 예술 사조이자 실존주의, 반전통적, 허무주의 형식을 택한 예술적 운동이었습니다. 뒤샹은 이러한 예술운동에서 출발하여 형식적인 전통에 도전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했어요.


3. 개념 예술의 시작

뒤샹은 작품에서 물리적인 형태보다는 개념, 아이디어, 상징에 중점을 둡니다. 뒤샹의 작품은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작품을 통한 사유적인 경험을 전달하고 이는 개념미술의 시작이자 현대미술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엄청난 영향을 주었어요.


유년시절과 초기의 회화 작품들 🖼️




<블레인 빌의 풍경>, 1902 출처: marcelduchamp.net


뒤샹은 1887년 프랑스 노르망디 블레인 빌에서 7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뒤샹은 독서, 체스, 음악을 배우고, 예술을 하도록 지원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형들을 따라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뒤샹이 15세 때 그린 그림으로 알려진 <블레인 빌의 풍경 (1902)>은 당시 미술계에 널리 퍼져있던 인상주의와 전통 회화 방식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후 뒤샹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1904년에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 2>, 1912.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 Association Marcel Duchamp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생활하게 된 뒤샹은 인상주의, 입체파, 야수파 등 급성장하는 미술 사조에 둘러싸여 있었고 이와 함께 다양한 그림 스타일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관심을 갖게 된 근대성과 기계 시대에 대한 진보적인 생각은 뒤샹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

특히 초기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1912>에서는 에너지, 움직임, 역학에 대한 관점을 표현했어요. 뒤샹의 대표 그림 중 하나가 된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발표했을 때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고 해요. 이후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 이 작품을 전시했을 때에도 작품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회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변화하는 시공간에 대한 표현을 통해 뒤샹은 미국에서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뉴욕에서의 활동, 그리고 다다이즘



<심지어,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출처: frieze


이후 뒤샹은 1915년 뉴욕에 정착하여 뉴욕 다다 그룹의 주요 예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예술 제작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뒤샹은 예술에서의 기존 모든 가치나 전통을 벗어난 표현방식과 태도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어요. 이때 뒤샹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건을 모아서 새로운 배열로 배치하면서 원래의 기능을 잃고 새로운 것이 되는 조각 형식, '레디메이드 (Ready-made)'를 만들어 내요.





<자전거 바퀴>, 1913. © Association Marcel Duchamp / Adagp, Paris


뒤샹의 대표적인 레디메이드 작품 중 하나인 <자전거 바퀴>는 1913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자전거의 앞바퀴를 부품으로 삼아, 이를 일상에서 찾아 볼수 있는 소재와 조합하여 새로운 맥락인 '예술'의 범주안에서 작품으로 발표한 것이죠.🪑

회화가 주를 이루던 당시 미술 경향 사이에서 뒤샹은 일상적인 사물들을 모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기교보다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가진 생각과 아이디어, 시대적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는 관점을 전달하고,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예술을 통해서 기존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질서들을 탈피하고자하는 ‘다다’ 운동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제작했어요. 💭






마르셀 뒤샹, 샘, 1917,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촬영.


또한 이때 제작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뒤샹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R. Mutt라는 이니셜이 적힌 소변기를 작품으로 발표한 <샘 (The Fountain)>이에요. 이 작품은 "R. Mutt"라는 서명과 함께 "리차드 무트"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은 출품 당시에 전시에서 제외되고, 많은 평론가들과 예술가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어요. 🚽




1963년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미술관에서의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과 <샘(fountain)>. 줄리안 와서(Julian Wasser) 촬영.


뒤샹의 <샘>은 예술이 예술가의 손에서만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기성품, 즉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도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전달해요. 공장의 대량생산품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제품을 본래의 기능적 역할을 해체한 뒤에 그 사물에 남는 의미와 새로운 맥락을 통해 실질적인 예술품으로의 역할만 존재하게 되는것이죠. 또한 뒤샹은 예술작품과 보는이의 관계사이에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과 배경지식을 뒤집음으로써 가능해진다는 것을 <샘>을 통해 보여주었어요.



파리와 초현실주의


<LHOOQ>, 1919년. 출처: CNN


뒤샹은 이후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생활했어요. 파리의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하며 초현실의 감각과 실험을 공유하게 되죠. 1919년에 뒤샹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인쇄본에 콧수염을 그리고 <LHOOQ>라는 제목을 붙힙니다. "L.H.O.O.Q."는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엘르 아쉬 오키"라고 읽히고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라는 뜻이라고 해요. 🫣

장난스러운 낙서와 같은 이 작품은 고전 미술에 대한 신성화와 같은 선입관을 부정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풍자와 함께 이상적인 여성상이라는 고정관념과 함께 사회에 자리잡은 모나리자의 모습을 당시 예술과 사회에 결합하여 비꼬는 요소를 담은 패러디 작품이에요. 이 작품 또한 뒤샹이 바라보던 예술계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맨 레이, 로즈 셀라비 (마르셀 뒤샹)의 초상, 1921


이후 뒤샹은 계속해서 과거의 전통이나 사회적 환경의 영향에 반기를 드는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어요. 1920년에 여성 자아인 로즈 셀라비(Rrose Selavy)를 통해 정체성과 자기 표현에 대한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로즈 셀라비"로서의 표현은 뒤샹이 성의 개념을 관습적인 예술과 사회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는 여성적 자아를 통해 고정적인 정체성을 부정하고 사회적으로 조직된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닌 계속 변화하는 정체성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있어요. 👩‍🎤




맨 레이, <벨 헤일린(Belle Haleine) – 오 드 뷔알레뜨(Eau de Voilette)>, 1921


뒤샹이 표현한 고정된 정체성과 성 개념의 탈피는 관념화된 예술의 정체성에 연결돼요. 뒤샹은 예술을 통해 사회와 예술에 만연한 고정된 관념과 관습적인 정서에 대한 도전 의식을 보여주었어요. 정체성의 개념을 통해 기존의 미적 개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죠.



 "나는 나의 취향이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내 자신을 부정하고자 애썼다."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예술보다 체스?♟️




에바 바비츠와 체스를 두고 있는 마르셀 뒤샹, LA 파세데나 뮤지엄, 1963년. ©1963 Julian Wasser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뒤샹은 점점 더 예술계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 해요. 1923년부터는 체스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1925년에는 체스대회 포스터를 디자인했고, 이 대회에 직접 출전해 체스 마스터가 되었으며 이후 1932년에는 체스 전략집을 출간했죠. 당시에는 뒤샹이 체스를 위해 미술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예술계에 만연했다고 해요.






(왼쪽) <16마일의 줄>, 1942. © Leo Baeck Institute. / <고무장갑이 있는 포켓 체스>, 1944. 사진 촬영: 맨 레이


1942년의 '16마일의 줄'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을 줄로 연결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체스 플레이어의 머릿속 계산 과정을 상징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뒤샹은 "모든 예술가가 체스 선수는 아니지만, 모든 체스 선수는 예술가다"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Etant Donnes> 설치 스틸 이미지 , 1965,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 2000 Succession Marcel Duchamp ARS, N.Y./ADAGP, Paris.


이후 자취를 감춘 뒤샹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20년을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의 3차원 버전인 <에땅 도네 (Etant Donnes)> (1966)를 만드는 데 보냈다고 해요. 사후에 공개하도록 남겨진 이 작품 '에땅 도네'는 문구멍으로 누드를 보는 투시화 형태의 설치미술로서, 뒤샹이 체스를 위해 미술을 포기했다는 소문을 잠재우는 작품이 되었죠. 

뒤샹의 마지막 작품인 <에탕 도네>는 지금까지도 많은 담론을 이어가고 있어요. 작품의 제목은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19세기 귀스타프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기원>을 차용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 작품은 개념미술의 일종으로 인간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에로티시즘적 표현으로 해석되어 지기도 해요. 





 "그림이나 조각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내 인생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 마르셀 뒤샹



예술은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그리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개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예술가의 인생. 

오늘 살펴본 마르셀 뒤샹의 예술세계, 어떠셨나요?


요약과 함께 아트레터 마칩니다. 😊




1. 뒤샹은 1887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독서, 체스, 음악을 배우고, 예술을 하도록 지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형들을 따라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2. 당시 미술계에 널리 퍼져있던 인상주의와 전통 회화 방식과 함께 뒤샹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1904년에 파리로 떠나게 됩니다.


3.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생활하게 된 뒤샹은 인상주의, 입체파, 야수파 등 급성장하는 미술 사조를 접하며 다양한 그림 스타일을 실험하고 회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표현을 통해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4. 뒤샹은 1915년 뉴욕에 정착하여 뉴욕 다다 그룹의 주요 예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예술 제작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뒤샹은 예술에서의 기존 모든 가치나 전통을 벗어난 표현방식과 태도를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어요.


5. 회화가 주를 이루던 당시 미술 경향 사이에서 뒤샹은 일상적인 사물들을 모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기교보다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가진 생각과 아이디어, 시대적 상황을 전달하는 예술 형식 ‘레디메이드’를 만들어냅니다.


6.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생활하던 뒤샹은 파리의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하며 초현실의 감각과 실험을 공유하고, 당시 예술과 사회에 결합하여 풍자적 요소를 담은 패러디 작품을 선보입니다.


7. 뒤샹은 계속해서 과거의 전통이나 사회적 환경의 영향에 반기를 드는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고, 1920년에 여성 자아인 로즈 셀라비(Rrose Selavy)를 통해 정체성과 자기 표현에 대한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8.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뒤샹은 점점 더 예술계와 거리를 두게 되었고 1923년부터 체스에 몰두하던 뒤샹은 예술가로서 완전히 잠적하게 됩니다.


9. 뒤샹은 20년간의 잠적과 사후에 공개된 작품 '에탕 도네’를 통해 자신의 한평생을 인간에 대한 탐구와 예술로서의 삶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 INTERVIEW : 푸에르자 부르타를 탄생시킨 에너지 | 디키 제임스



올해로 내한 10주년을 맞은 넌버벌 아트 퍼포먼스 💃 푸에르자 부르타 FUERZA BRUTA! 🕺🏻 스페인어로 '거친 날것의 힘'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이색 퍼포먼스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생의 디키 제임스는 이 공연을 창작해낸 주역이자 연출가입니다. 아트아트가 그를 직접 만나 내한 공연 10주년을 맞은 소감 그리고 이것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인터뷰했습니다. 😎

📌 공연정보
2023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 [2023 FUERZA BRUTA WAYRA IN SEOUL]
2023.11.17. (금) - 2024.02.15. (목)
성수문화예술마당 FB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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