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30 당신의 마음을 닮은 조각들, 《Ron Mueck》展 |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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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0 당신의 마음을 닮은 조각들, 《Ron Mueck》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Ron Mueck》 전시관 입구.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오늘은 상반기 한국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론 뮤익》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의 론 뮤익 회고전인데요. 삶과 죽음을 둘러싼 감정의 결을 놀라운 디테일로 구현하는 작가 론 뮤익은 극사실주의 조각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30여 년간 발표한 주요 조각 10점과 작업실 풍경을 담은 사진, 다큐멘터리 등 총 24점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개막 20일 만에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죠.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작품을 마주한 감상과 경이로움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듯하다"라며, 관람객들 사이에 유독 많은 대화가 오가는 점을 인상 깊게 전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닮았지만 결코 쉽게 잊히지 않는 조각을 만드는 작가, 론 뮤익. 이번 레터에서는 그가 조각으로 말하는 인간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본 레터의 작품 소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전시 작품 전반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시선으로 관람하고 싶은 분이라면, 관람 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존재를 바라보는 조각가, 론 뮤익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 론 뮤익


Ron Mueck. ©Triennale Milano.


론 뮤익은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난감 제조업을 하던 독일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린 시절 꼭두각시 인형과 동물 모형을 직접 만들곤 했죠. 이 경험은 그의 조각 세계의 출발점이 됩니다. 손끝에서 익힌 섬세함은 이후 조형 감각의 근간이 되었죠. 뮤익은 초기에는 쇼윈도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이후 어린이 프로그램과 영화 속 인형과 모형 제작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죠. 광고 업계에서는 기계 장치를 활용한 사실적 모형인 애니메트로닉스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조형성과 기술적 완성도를 두루 갖춘 작업자였던 셈이죠.


Ron Mueck, Dead Dad, 1996-1997. ©Thaddaeus Ropac.


1996년, 뮤익은 포르투갈 출신 화가 파울라 레고와 협업하며 예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아버지를 모델로 한 소형 나체 조각 <죽은 아빠>(1996-1997)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이 작품은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전에서 주요 작품으로 소개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5m에 달하는 대형 조각 <소년>(1999)을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진출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죠.


"론 뮤익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정교하고 사실적인 조각 기술과 표현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예술적 철학과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시대적 맥락을 폭넓게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연구사


Ron Mueck, Mother and Child, 2003. ©Thaddaeus Ropac.


뮤익이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단 48점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밀도 높은 정교함과 깊이를 품고 있죠. 그의 조각은 구상 조각의 전통을 따르되, 인물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익숙하면서도 낯선 인상을 남깁니다. 주름, 피붓결, 머리카락까지 재현된 정밀한 조각은 사실적이지만, 그 사실성은 외형 너머의 감정과 본질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죠. 뮤익이 다루는 주제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입니다. 고독, 불안, 상실, 책임, 관계, 죽음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조각이라는 매체로 표현하죠. 어떤 조각은 그저 묵묵히 관람자를 바라보고, 어떤 조각은 조용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관람자는 그의 작품 앞에서 말로 하기 어려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죠. 극사실의 외피를 벗겨내고 나면, 그 안에는 삶과 죽음, 존재의 무게에 대한 조용한 질문이 남습니다. 론 뮤익의 조각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는 이유기도 하죠.


일상에 숨은 감정의 얼굴들


Ron Mueck, Mask II, 2002.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 바로 <마스크 II>입니다. 실제보다 약 4배 크기로 확대된 얼굴은 론 뮤익의 자화상이자 초상 조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요. 살짝 벌어진 입, 받침대에 눌린 볼, 무거운 눈꺼풀. 숨소리까지 들릴 듯한 정교함이 감탄을 자아내죠.


Ron Mueck, Mask II, 2002.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하지만 뒤로 돌아서는 순간, 이 얼굴은 실체가 아닌 '껍데기'였음이 드러납니다. 완벽하게 구현된 사실성은 오히려 그 속의 부재를 선명히 부각시키죠. 작품의 제목인 <마스크 II>를 다시금 곱씹게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얼굴은 자신을 드러낸 것일까요, 아니면 모든 자의식을 벗어던진 진짜 '나'일까요?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눈썹 하나까지 살아 있는 세부 묘사 속에서, 우리는 끝내 대답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Ron Mueck, Woman with Sticks, 2009.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다음으로 마주하는 <나뭇가지를 든 여인>은 조용하지만 강렬한 긴장감을 지닌 작품입니다. 벌거벗은 여인이 등을 젖힌 채 나뭇가지를 안고 있습니다. 거친 가지에 긁힌 자국, 그 위로 드러난 표정은 고통과 집중, 그리고 이를 견디려는 집념으로 가득하죠. 작은 크기의 조각은 오히려 관람객을 깊은 내면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삶의 짐을 짊어진 존재일까요? 설명 대신 감정을 던지는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서사를 그리게 만듭니다.


Ron Mueck, Chicken / man2019.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닭과 노인이 마주 봅니다. 설명 하나 없이 배치된 <치킨 / 맨>은 묘하게 긴장된 기류로 가득합니다. 닭의 날카로운 눈빛, 노인의 축 처진 어깨와 주름진 피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인데요. 관람자는 자유롭게 위치를 옮기며 시점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닭의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거나, 노인의 시선으로 닭을 응시하거나, 제3의 관찰자가 되어보기도 하죠. 작가는 구체적인 해석을 제시하지 않았기에, 관람자의 상상은 끝없이 확장됩니다.


Ron Mueck, Chicken / man2019.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소소한 포인트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이 장면을 구성한 가구 아래 숨겨진 작은 라벨은 뮤익이 얼마나 세밀하게 작품을 만드는지 보여주는데요. 사소한 것조차도 놓치지 않는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 후반부에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필름과도 연결되는데요.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까지 함께 보면, 뮤익의 집요한 작업 세계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거예요.


Ron Mueck, In Bed2005.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거대한 침대 속 여인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침대에서>는 론 뮤익 특유의 극사실적 조형 언어와 내면의 무게를 함께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불과 베개까지 포함된 조각은 실제 인물보다 훨씬 크고, 그 크기만큼이나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죠. 가까이 다가가면 눌린 팔꿈치 아래 이불의 구김, 베개에 눌린 뺨, 흐트러진 머릿결과 미세한 목주름까지 모든 세부 묘사가 살아 있습니다. 


Ron Mueck, In Bed2005.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관객을 향하지 않습니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자신만의 세계에 잠겨 있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관람자는 끝내 그 시선 너머를 따라가게 됩니다. 존재는 정지해 있지만, 감정은 계속 흐릅니다. 뮤익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요.


Ron Mueck, Young Couple2013.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젊은 연인>은 정면과 후면의 온도 차가 뚜렷한 작품입니다. 정면에서는 다정한 연인이 속삭이는 듯하지만, 뒤편에서 보면 남성이 여성의 팔을 꽉 쥔 모습이 드러나며 전혀 다른 기류가 읽히죠. 사랑일지, 억압일지, 해석은 관람객의 몫입니다. 단일한 시선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관계의 복잡성이 이 작품의 핵심이죠.


Ron Mueck, Ghost1998/2014.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유령>은 사춘기 소녀가 느끼는 불편함과 수줍음을 섬세하게 담은 론 뮤익의 초기작입니다. 실제보다 크게 제작된 인물은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작은 몸 안에 감정이 넘쳐흐르는 듯한 밀도를 자아내죠. 이 작품은 제작 방식에서도 주목할 만한데요. 보통 조각가들이 원형을 본뜬 첫 번째 틀을 'AP(Artist Piece)'라 부르며,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버전으로 여깁니다. 뮤익은 이 <유령>의 AP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작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4년에 완성된 AP 버전을 볼 수 있는데요. 더욱 정교해진 손끝과 발가락의 표현, 벽에 살짝 기대선 소녀의 미세한 긴장은 조각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2013.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2013.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쇼핑하는 여인>은 뮤익이 만들어 온 어머니 연작 중 하나로, 일상 속 여성의 고단함을 담담히 조명합니다. 커다란 외투, 무거운 장바구니, 아기를 안은 팔 모두가 그녀의 하루를 짐작하게 하죠. 아기의 시선은 여성을 향하지만, 여성은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합니다. 아이의 세상 속 전부인 엄마에게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주는데요. 이 조각은 우리 곁 어딘가의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Ron Mueck, Mass2016-2017.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이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 론 뮤익


약 20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그린 작품 <죽은 아빠> 이후, 론 뮤익은 다시 한번 죽음을 마주합니다. 작품 Mass는 수많은 인간의 두개골롤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두개골은 미세하게 다르지만 특정한 개별성을 강조하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숫자와 압도적인 덩어리 감, 이름 없는 무게인데요. 뮤익은 그간 주로 고립된 개인의 내면을 조각해 왔지만, 이번에는 시선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돌렸습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두개골들은 미술사 속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대중문화, 고고학에서 반복되며 상징성을 축적해 온 이미지들인데요. 뮤익은 이를 통해 '보편적 죽음'을 조용히 불러내죠. 작품의 핵심은 죽음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어 'Mass'는 집단, 덩어리, 미사(종교적 의례)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작품은 단순히 두려움이나 슬픔보다는, 죽음에 대한 경외, 역사적 참사에 대한 기억, 공동체적 상실의 감각을 환기하죠. 


Ron Mueck, Mass2016-2017.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2017년 멜버른 국립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이 설치작은 전시 공간에 따라 그 배치가 유연하게 변합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천장에서 무더기처럼 쏟아지는 두개골들이 관람객을 덮듯 둘러싸며, 몸 전체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데요. 그 아래를 걷는 감각은 차갑고 웅장하며, 묘하게 숭고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이들이 죽음과 마주하는 '의식의 공간'처럼요. 뮤익 특유의 사실성과 정적, 그리고 정교한 물성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충격은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감정을 흔들어 놓습니다.


고요 속에서 흐르는 감정


Ron Mueck, Man in a Boat2002.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Mass의 집단성과 강렬함을 지나 만나게 되는 <배에 탄 남자>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띱니다. 무언가를 응시하며 침묵에 잠긴 남성,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관객 사이엔 이상하리만큼 짙은 거리감이 흐릅니다. 남성은 배 앞머리에 앉아 팔을 감싼 채 자신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시선은 먼 곳을 향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끝내 드러나지 않죠. 의심인지 탐색인지 모를 눈빛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멀게 느껴집니다. 눈높이에 맞춰져 있음에도 그는 철저히 고립된 존재처럼 다가오죠.


뮤익은 자신의 조각을 "지극히 사실적이지만, 동시에 방 안에 놓인 사물"이라 표현한 적 있습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밀한 피부와 표정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은 현실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실제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요한 고독'을 품은 채 머물고 있을 뿐이죠. 그가 앉은 위치도 흥미롭습니다. 가장 앞선 자리이자, 가장 위태로운 자리인데요. 관객과의 시선은 나란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끝내 닿을 수 없습니다. 조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가 향하는 방향보다도 지금 이 순간 머무는 고요함이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죠.


Ron Mueck, Dark Place2018.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어두운 장소>는 어둠 속에 배치된 단 하나의 얼굴을 통해 뮤익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정지된 몸 대신 얼굴의 감정, 세부 묘사 대신 감정의 기류에 집중한 조각인데요.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어둠 속에서 그저 흐릿한 형체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시야가 익숙해지면, 마스크의 윤곽과 눈빛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죠. 이 느린 감각의 전환이 곧 작품 감상의 일부가 됩니다. 뮤익의 전작들과 달리 이 마스크는 뚜렷한 서사를 갖지 않습니다. 떠다니는 듯한 존재, 어떤 감정인지 단정할 수 없는 눈빛, 오직 응시만이 남아 있을 뿐이죠. 관객은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는 대신, 멀리서 감정의 잔상을 따라가야 합니다. 얼굴은 말하지 않지만,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침묵 속에 떠 있는 눈빛과, 그 안에 감춰진 감정의 결을 읽는 것. <어두운 장소>는 보는 것보다 느끼는 일에 가까운 감상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묵묵히 완성되는 조각


Gautier Deblonde, Ron Mueck's workshopLondon, 2005-2013.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뮤익의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과 필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진작가 고티에 드블롱드가 약 25년에 걸쳐 기록한 뮤익의 스튜디오 풍경 중 일부로, 완성된 조각 뒤에 숨겨진 노동과 시간이 드러나는 장면들인데요. 드블롱드는 뮤익의 오랜 친구이자, 공식 전시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사진에는 재료를 다루는 손끝, 점차 형태를 갖춰가는 조각의 과정, 고요한 작업실의 공기가 담겨 있죠. 조각이라는 결과물 그 이전의 물리적, 심리적 여정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객은 이 기록을 통해 조용히 축적된 시간과 집중을 마주할 수 있죠.


Gautier Deblonde, Still Life : Ron Mueck at Work, 2013. HD Film, 48 mins.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다큐멘터리 <스틸 라이프 : 작업하는 론 뮤익>은 조용하지만 밀도 높은 뮤익의 작업 여정을 따라갑니다. 18개월간 촬영한 영상은, 런던 북부에 있는 뮤익의 작업실부터 전시 설치 현장까지의 과정을 한 걸음 떨어진 시선으로 관찰하듯 담아냈죠. 영상 속 뮤익은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조각은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죠. 감독 드블롱드는 그의 움직임을 '라디오 방송'에 비유했습니다. 일정한 리듬과 간격, 조용한 집중이 흐르는 공간. 실제로 영상에는 작업실을 채우는 라디오 소리가 잔잔히 깔려 있는데요. 머리카락을 사포로 다듬는 장면이나, 초벌 모델링에 담긴 손의 움직임은 뮤익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드러냅니다. 그가 평생 만든 조각이 단 48점이라는 사실과, 작업에 담긴 밀도와 집요함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죠. 뮤익은 몰드가 굳는 시간을 기다리며 산책하거나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기도 합니다. 어떠한 해설 없이 그저 묵묵히 흐르는 이 영상은 하나의 수행과도 같은 뮤익의 창작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죠.


Gautier Deblonde, Chicken / Man, 2019-2025. HD Film, 13 mins.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치킨 / 맨>은 2019년 크라이스트처치 아트갤러리의 의뢰로 제작된 영상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장편으로 새롭게 편집되었습니다. 조각의 외부 대여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영상은 뮤익 특유의 정밀한 조각 과정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뮤익은 인물의 시선, 손의 위치, 몸의 각도 하나까지도 수십 번 조율하며, 마치 실제 존재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긴장감 있는 자세를 찾아갑니다. 의자의 방향조차 반복해서 만지며 '어떻게 앉아 있어야 감정이 전달될 수 있을까'를 끝까지 고민하죠. 이번에도 드블롱드는 말보다 '쌓여가는 시간'을 중심으로 기록합니다. 작업실의 고요함, 촬영 현장의 집중, 그리고 작품이 새로운 공간에 놓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틸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이 영상 역시 뮤익의 작업을 조용히 들여다봅니다.


조각으로 만나는 인간 존재의 깊이


Gautier Deblonde, Still Life : Ron Mueck at Work, 2013. HD Film, 48 mins.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론 뮤익의 조각 앞에 선 순간, 가장 먼저 터져 나오는 건 놀라움입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눈빛과 표정, 피부 위에 자리한 주름 하나까지 그 생생한 묘사는 마치 누군가를 마주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그러나 감탄은 곧 침묵으로 바뀝니다. 뮤익의 인물들은 단순히 정교한 모형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우리 안의 불안, 외로움, 관계의 균열 같은 감정들이 응축돼 있으니까요. 결국 뮤익의 작업은 한 인간을 완벽히 재현하기 위한 기술이 아닌, 그 안에 숨은 삶의 결을 더듬기 위한 태도에 가깝습니다.


Gautier Deblonde, Still Life : Ron Mueck at Work, 2013. HD Film, 48 mins.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이미지가 손쉽게 복제되고 소비되는 시대, 뮤익이 택한 느린 조각의 방식은 오히려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반복되는 노동과 세밀한 관찰 끝에 탄생한 그의 조각은 우리가 잊고 있던 진정성과 시간의 밀도를 환기하죠. 그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건 무언가를 '본다'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인 것 같기도 하네요.


전시장 밖 론 뮤익의 작품 키워드에 맞춰 구성된 문학 작품 문구가 적힌 카드.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전시장을 나오면 뮤익의 작품 키워드를 확장한 문학과 동화, 게임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정과 서사를 따라가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정이 펼쳐지는데요. 전시장에 마련된 코너에서, 뮤익이 남긴 질문을 따라가 봐도 좋겠습니다.


론 뮤익 작품 키워드를 따라 구성된 게임 화면.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론 뮤익의 조각은 결국 우리에게 '지금,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지' 묻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매일 조금씩 자신의 얼굴을 다시 빚어가는 일이니까요. 전시는 7월까지 이어집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으셨다면 주말의 여유 속에, 혹은 평일 아침 고요한 시간에 그와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요. 말없이 건네는 얼굴들 사이에서,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 하나가 조용히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 울림이 전시장을 나온 뒤에도 마음에 번져가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 마칩니다. 


《Ron Mueck》展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6 전시실
- 기간: 2025. 4. 11. - 2025. 7. 13.
- 시간: 월, 화, 목, 금, 일 10:00 - 18:00
            수, 토 10:00 - 21:00 (야간개장 18:00 - 21:00)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Ron Mueck》 전시는 론 뮤익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으로, 그의 주요 작품 10점과 작업실 사진, 다큐멘터리 등 24점을 선보입니다.

2. 뮤익은 어린 시절 장난감 제작 경험과 후에 쇼윈도 디자이너, 인형 제작을 통해 섬세한 조형 감각을 발전시켰습니다.

3. 1996년 작품 <죽은 아빠>로 국제적 주목을 받으며, 1999년 대형 조각 <소년>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진출했습니다.

4. 뮤익이 평생 작업한 작품은 단 48점으로, 극사실적 조각을 통해 감정과 본질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5. 뮤익의 조각은 고독, 불안, 죽음 등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며 관객은 작품을 통해 깊은 감정을 경험합니다.

6. 첫 번째 전시장은 뮤익의 조각을 통해 인간 내면과 감정을 밀도 있게 탐구하며 자아와 관계의 본질을 성찰하게 합니다. 

7. 작품들은 고독과 감정의 흐름을 탐구하며, 관객에게 보는 것을 넘어선 느끼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8. 두 번째 전시장은 뮤익의 창작 과정과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 작품을 통해 조용히 탐구하는 밀도 있는 여정을 제시합니다.

9. 전시 후에는 문학, 동화, 게임 콘텐츠가 이어지며, 감정과 서사를 따라 인간 존재를 사유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10. 뮤익의 전시를 통해 관람자는 자신만의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Editor. Jang Haeyeong
섬네일 출처: 에디터 촬영(Jang Hae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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