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종이 위에 얼굴을 그린 작가가 아트 바젤을 뒤흔들었습니다. 바로 한국 작가 신민인데요. 신민은 세계적인 미술 행사 아트 바젤 홍콩에서 새롭게 제정된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의 첫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종이 위에 날카롭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그녀의 작업은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호평을 이끌어냈죠.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는 아트 바젤 홍콩의 디스커버리즈 섹션에 참가한 신진 작가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에 수여되는 상으로, 올해 신설되어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민은 최종 후보 3인 중 독창성과 메시지 전달력에서 돋보이며 상금 미화 5만 달러(한화 약 7,300만 원)와 마카오 전시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죠. 아트 바젤 홍콩은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해 마이애미, 파리로 이어진 전통 깊은 글로벌 아트 페어의 아시아 지부입니다. 올해는 42개국 240개 갤러리, 91,000명의 역대급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규모와 영향력을 입증했는데요. 특히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반 갤러리로 채워진 이번 에디션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확장과 도약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민이 있었습니다. 익숙한 재료로 노동 현장에 스며든 통제와 폭력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지금 예술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죠. 이번 레터에서는 그 목소리의 진원지, 신민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신민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일터에서 마주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은 작업 세계를 이루는 단단한 기반이 되었죠. 매뉴얼에 길든 말투, 감정 노동자의 굳은 표정, 피로가 가득한 눈빛 등 서비스직 현장에서 익숙했던 풍경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묘한 감정과 생명력을 얻어 다시 태어났습니다.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유머와 시선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의 작업은,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예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0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부산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주요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며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쌓아왔고,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더욱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죠. 올해 2월에는 상업 화랑 P21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미술계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쌓아온 신민의 작업은 넓은 무대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을 보며 알베르 카뮈의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A.우리 노동자들이 서명하는 계약서와 서약서는 대부분 ‘갑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갑의 부조리함에 침묵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제 작업의 목적지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너무 많은 계약서와 서약서에 서명하며, 본인의 속마음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이들에게 닿기 바랍니다. - 2025년 5월, 메종 코리아 인터뷰 中
아트 바젤 홍콩 2025 '디스커버리즈' 섹터에 전시된 신민 작가의 설치작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마주한 순간 당황하고, 이내 연민과 분노로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게 되죠. 작품은 거대한 '세미(Semi)'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그 주변에는 머리망을 쓴 피로한 얼굴의 여성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죠. '세미'는 작가가 실제로 아르바이트할 당시 사용했던 영어 이름이자, 중국어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뜻하는데요. 이 인물들은 모두 긴장된 눈빛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며, 비정한 노동 환경의 현실을 증언합니다. 이 설치작은 연작 Usual Suspects의 일부로, 서비스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머리카락 민원'과 그로 인한 감시 구조를 다룹니다. 작가가 10여 년간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의 노동 환경에서 일하며 실제로 겪었던 순간을 재현한 작품인데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면 CCTV를 돌려 그 출처를 추적하는 실태를 고발한 것이죠.
검정 리본 머리망을 쓴 조각상들은 단정함이라는 명목 아래 여성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외형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머리망은 청결을 가장한 억압의 장치이자 자본주의적 통제의 은유입니다. '완벽한 청결'이라는 기준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검열하고 그 압박 속에서 긴장하며 일하죠. 하지만 머리카락은 인간이기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흔적입니다.
Q. 지속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아오고 계시죠. 이번엔 특히 머리카락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중에서는 리본을 달고 있는 가닥들도 있고요.
A. 일할 때 착용하는 머리망은 지저분한 제 외모를 멸균해 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머리망은 제 외모를 미적으로 멸균해 줍니다. 맨얼굴, 보랏빛 입술, 새까만 딸기코, 기름진 얼굴을 검정 새틴 리본과 동그란 머리그물이 정리하고 소독해주죠. 머리망의 멸균 효과는 제가 문제시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품에서 발견되는 노동자 머리카락의 역겨움과 끔찍함을 통해 우리 속에 내재된 노동자 혐오, 그리고 멸균될 수 없는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2025년 5월, 메종 코리아 인터뷰 中
신민은 박스, 기름때 묻은 종이, 연필 등 일상의 버려지기 쉬운 재료들을 활용해 조각을 만듭니다. 그 재료 위에 '찬미', '민정'처럼 따뜻하고 힘 있는 이름을 붙이고, 종이를 한 겹 한 겹 덧대며 얼굴을 그려내죠. 그 행위는 기도에 가깝습니다. 종이는 잘 찢기고 쉽게 지워지지만 겹겹이 붙이면 단단해지는 재료입니다. 작가는 그렇게 소외된 존재들의 감정과 서사를 모읍니다. 작품 속 얼굴들은 모두 신민 작가 자신의 모습에서 출발하는데요. "남의 얼굴을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처럼, 그녀는 타인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분노와 연민을 그려내죠. 머리카락처럼 자잘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이 종이 위에 쌓여지며 하나의 서사로 피어나게 됩니다.
Q. 종이를 붙여가는 과정에서 여러 기도를 하신다고요. 이번 작업에는 특히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A. ‘우리끼리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동료를 미워하지 않는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힘든 근무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서로 어깨만 살짝 스쳐도 짜증이 확 나죠.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생리대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미워하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이를 건네주곤 하잖아요.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정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작은 것에도 쉽게 예민해지지만, 어떤 일이 있을 때면 갑자기 전우애가 타올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연대를 하는 거죠. - 2025년 5월, 메종 코리아 인터뷰 中
종이 위에 연필로 그려낸 얼굴들. 신민은 그 위에 감시와 통제 속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꺼내 올렸습니다. 기름에 절어 더럽혀진 포장지는 그에게 피부이자 함께했던 동료들의 흔적이었죠. 신민의 작업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얼굴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가벼워 보이는 재료에서 출발한 작업은 결국 무심히 지나쳐온 노동과 감정의 잔재를 되살려냈죠. 그 얼굴은 어쩌면 과거의 나일 수도, 지금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내 친구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트 바젤 홍콩에서 주목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진솔한 이야기가 노동과 감시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되며, 멸균될 수 없는 존재의 현실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날카롭게 짚어냈기 때문이죠.
"신민의 작업은 서비스 산업의 여성 노동자들이 직면한 가혹한 현실을 탐구하며, 그들의 경험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 아트 바젤 홍콩 심사위원단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행사장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청소, 보안, 식음료 노동자들을 언급하며 "그들도 내 작품을 보고 웃고, 공감하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년간 아웃사이더였는데, 이제 진짜 예술가가 된 것 같다"는 고백과 함께, "앞으로도 말할 수 있는 문제들을 찾아 뭐든 꽈배기처럼 비틀겠다"는 다짐도 전했죠. 앞으로도 어떤 방향으로 작가가 세상과 이야기를 나눌지, 그 의지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수상은 한 작가의 성취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목소리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서울 이태원 P21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Ew! Hair in My Food!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에서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는 17일까지 전시가 진행 중이니 우리가 외면했던 노동 현장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면, 전시를 통해 직접 마주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바쁘거나 무뎌져서 스쳐 지나간 얼굴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그 얼굴들을 다시 불러내고, 그 안에 잊힌 감정들을 전해주죠. 신민의 작업은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힘을 가졌습니다. 작가의 작업을 마주하며 서비스직 노동의 어떤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자리에 있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그 얼굴들은 누군가의 오늘이자, 한때의 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셔도 좋겠습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간 얼굴들에 조금은 다정한 시선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 마치겠습니다.
ARTLETTER | artist
VOL.129 누가 머리카락 주인에게 돌을 던졌나, 신민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한 신민 작가 ©아트 바젤 인스타그램(@artbasel).
겹겹이 쌓인 종이 위에 얼굴을 그린 작가가 아트 바젤을 뒤흔들었습니다. 바로 한국 작가 신민인데요. 신민은 세계적인 미술 행사 아트 바젤 홍콩에서 새롭게 제정된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의 첫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종이 위에 날카롭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그녀의 작업은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호평을 이끌어냈죠.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는 아트 바젤 홍콩의 디스커버리즈 섹션에 참가한 신진 작가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에 수여되는 상으로, 올해 신설되어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민은 최종 후보 3인 중 독창성과 메시지 전달력에서 돋보이며 상금 미화 5만 달러(한화 약 7,300만 원)와 마카오 전시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죠. 아트 바젤 홍콩은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해 마이애미, 파리로 이어진 전통 깊은 글로벌 아트 페어의 아시아 지부입니다. 올해는 42개국 240개 갤러리, 91,000명의 역대급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규모와 영향력을 입증했는데요. 특히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반 갤러리로 채워진 이번 에디션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확장과 도약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민이 있었습니다. 익숙한 재료로 노동 현장에 스며든 통제와 폭력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지금 예술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죠. 이번 레터에서는 그 목소리의 진원지, 신민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유니폼을 입은 예술가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한 신민 작가 ©아트 바젤 인스타그램(@artbasel).
신민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일터에서 마주한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은 작업 세계를 이루는 단단한 기반이 되었죠. 매뉴얼에 길든 말투, 감정 노동자의 굳은 표정, 피로가 가득한 눈빛 등 서비스직 현장에서 익숙했던 풍경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묘한 감정과 생명력을 얻어 다시 태어났습니다.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유머와 시선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의 작업은,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예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0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부산현대미술관, 북서울미술관,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주요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며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쌓아왔고,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더욱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죠. 올해 2월에는 상업 화랑 P21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으로 미술계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쌓아온 신민의 작업은 넓은 무대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서로를 의심하는 멸균되지 않은 존재들

아트 바젤 홍콩 현장 속 신민 작가의 작품 <Semi> 시리즈들 ©아트 바젤 인스타그램(@artbasel).
아트 바젤 홍콩 현장 속 신민 작가의 작품 <Semi> 시리즈들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아트 바젤 홍콩 2025 '디스커버리즈' 섹터에 전시된 신민 작가의 설치작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관람객은 작품을 마주한 순간 당황하고, 이내 연민과 분노로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게 되죠. 작품은 거대한 '세미(Semi)'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그 주변에는 머리망을 쓴 피로한 얼굴의 여성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죠. '세미'는 작가가 실제로 아르바이트할 당시 사용했던 영어 이름이자, 중국어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뜻하는데요. 이 인물들은 모두 긴장된 눈빛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며, 비정한 노동 환경의 현실을 증언합니다. 이 설치작은 연작 Usual Suspects의 일부로, 서비스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머리카락 민원'과 그로 인한 감시 구조를 다룹니다. 작가가 10여 년간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의 노동 환경에서 일하며 실제로 겪었던 순간을 재현한 작품인데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면 CCTV를 돌려 그 출처를 추적하는 실태를 고발한 것이죠.
아트 바젤 홍콩 현장 속 신민 작가의 작품 <Semi> 시리즈들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검정 리본 머리망을 쓴 조각상들은 단정함이라는 명목 아래 여성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외형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머리망은 청결을 가장한 억압의 장치이자 자본주의적 통제의 은유입니다. '완벽한 청결'이라는 기준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검열하고 그 압박 속에서 긴장하며 일하죠. 하지만 머리카락은 인간이기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흔적입니다.
아트 바젤 홍콩 현장 속 신민 작가의 작품 <Semi> 시리즈들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Shin min.
신민은 박스, 기름때 묻은 종이, 연필 등 일상의 버려지기 쉬운 재료들을 활용해 조각을 만듭니다. 그 재료 위에 '찬미', '민정'처럼 따뜻하고 힘 있는 이름을 붙이고, 종이를 한 겹 한 겹 덧대며 얼굴을 그려내죠. 그 행위는 기도에 가깝습니다. 종이는 잘 찢기고 쉽게 지워지지만 겹겹이 붙이면 단단해지는 재료입니다. 작가는 그렇게 소외된 존재들의 감정과 서사를 모읍니다. 작품 속 얼굴들은 모두 신민 작가 자신의 모습에서 출발하는데요. "남의 얼굴을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처럼, 그녀는 타인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분노와 연민을 그려내죠. 머리카락처럼 자잘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감정들이 종이 위에 쌓여지며 하나의 서사로 피어나게 됩니다.
아트 바젤 홍콩 현장 속 신민 작가의 작품 <Semi> 시리즈들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신민 작가의 작업은 과거의 노동을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청결'이라는 미명 아래 씌워진 억압,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시스템, 노동의 흔적을 혐오하는 소비자 시선, 그리고 그 틈에서 점점 침묵해 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를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드러냅니다.
당신이 무심코 지나친 얼굴들에 관하여
아트 바젤 홍콩,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신민 작가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종이 위에 연필로 그려낸 얼굴들. 신민은 그 위에 감시와 통제 속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꺼내 올렸습니다. 기름에 절어 더럽혀진 포장지는 그에게 피부이자 함께했던 동료들의 흔적이었죠. 신민의 작업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얼굴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가벼워 보이는 재료에서 출발한 작업은 결국 무심히 지나쳐온 노동과 감정의 잔재를 되살려냈죠. 그 얼굴은 어쩌면 과거의 나일 수도, 지금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내 친구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트 바젤 홍콩에서 주목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진솔한 이야기가 노동과 감시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되며, 멸균될 수 없는 존재의 현실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날카롭게 짚어냈기 때문이죠.
《Ew! Hair in My Food!》 전시 풍경 중 일부 작품 사진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행사장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청소, 보안, 식음료 노동자들을 언급하며 "그들도 내 작품을 보고 웃고, 공감하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년간 아웃사이더였는데, 이제 진짜 예술가가 된 것 같다"는 고백과 함께, "앞으로도 말할 수 있는 문제들을 찾아 뭐든 꽈배기처럼 비틀겠다"는 다짐도 전했죠. 앞으로도 어떤 방향으로 작가가 세상과 이야기를 나눌지, 그 의지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w! Hair in My Food!》 전시 포스터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
이번 수상은 한 작가의 성취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목소리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서울 이태원 P21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Ew! Hair in My Food!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에서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는 17일까지 전시가 진행 중이니 우리가 외면했던 노동 현장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면, 전시를 통해 직접 마주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바쁘거나 무뎌져서 스쳐 지나간 얼굴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술은 그 얼굴들을 다시 불러내고, 그 안에 잊힌 감정들을 전해주죠. 신민의 작업은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힘을 가졌습니다. 작가의 작업을 마주하며 서비스직 노동의 어떤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자리에 있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그 얼굴들은 누군가의 오늘이자, 한때의 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셔도 좋겠습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간 얼굴들에 조금은 다정한 시선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 마치겠습니다.
신민 《Ew! Hair in My Food!》 展
- 장소: P21 갤러리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66)
- 기간: 2025. 4. 12. – 2025. 5. 17.
- 시간: 화-금, 11:00 - 18:00 / 토 12:00 - 18:00 (일, 월 휴무)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한국 작가 신민이 아트 바젤 홍콩에서 신설된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프라이즈’의 첫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2. 이 상은 아트 바젤 홍콩 디스커버리즈 섹션 참가 신진 작가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에 수여되는 신설 상입니다.
3. 작품의 중심은 작가의 영어 이름이자 중국어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세미(Semi)’와 피로한 여성 조각들입니다.
4. 신민 작가는 프랜차이즈 노동 경험을 예술의 토대로 삼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5. 그녀의 작업은 노동의 기억을 사회적 메시지로 전환하며, 유머와 통찰로 관객과 소통합니다.
6. 이 설치작은 작가의 Usual Suspects 연작의 일부로, 서비스업에서 겪은 ‘머리카락 민원’과 감시 구조를 재현합니다.
7. 머리망을 쓴 조각들은 청결이라는 명목 아래 요구되는 여성 노동자의 단정함과 억압을 상징합니다.
8. 감자튀김 포장지에 그려진 얼굴들은 통제 속에서 일한 여성들의 흔적이자, 우리가 외면했던 존재들의 증언입니다.
9. 이번 수상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목소리가 세계 무대에 주목받았음을 의미합니다.
10. 현재 서울 이태원 P21 갤러리에서 작가의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5월 17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ditor. Jang Haeyeong
섬네일 출저: 신민 작가 인스타그램(@fatshin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