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7 죽음을 박제한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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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7 죽음을 박제한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Prudence Cuming Associates/Paul Stolper Gallery.


누구나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예술은 더 이상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죠. 기발한 마케팅과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서, 이제 현대미술가에게 필요한 건 작품을 '잘 만드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작품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해졌죠. 이런 흐름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데미안 허스트인데요.


허스트는 영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자, 동시에 '장사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평생 붙들고 있는 단 하나의 주제는 바로 '죽음'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 허스트는 그 죽음을 정면으로 끌어와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일지 묻습니다. 상어를 포름알데히드에 담고,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박는 방식으로 말이죠. 언뜻 보면 자극적인 전시에 불과해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묘한 불편감이 따라붙습니다. 죽음을 팔아 가장 비싼 작품을 만드는 남자, 데미안 허스트. 그는 왜 그렇게까지 죽음을 보여주려 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그런 작품들에 매혹되는 걸까요? 오늘의 레터에서는 허스트가 탐구한 죽음의 의미와 그가 불러일으킨 논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음을 보여주기보다 '직면하게' 만든 예술가


Damien Hirst ⓒGemma Levine/Getty Images.


데미안 허스트는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자랐습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죠. 1988년 여름, 허스트는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전시회를 기획합니다. 항구의 낡은 창고를 전시장으로 삼고, 미술계 주요 인사들에게 일일이 초청장을 보내고 전화를 돌리는 등 직접 발로 뛰어 그들을 데려오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시는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 유명한 ⟪Freeze⟫ 전시죠. 


⟪Freeze⟫전시는 학생 전시를 넘어 미술가가 스스로 전시를 기획하고 공간을 창조한다는 '작가 큐레이팅'의 개념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공공 미술관이 아닌 새로운 형태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오늘날 '대안 공간'으로 불리는 흐름을 제시했죠. 이 전시를 계기로 허스트는 런던 미술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후 YBA(Young British Artists)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중심인물로 떠오르게 됩니다.
*YBA(Young British Artist): 허스트를 비롯해 트레이시 에민, 채프먼 형제 등으로 구성된 집단. 기존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영국 현대미술을 이끈 주역들.


1995년, 허스트는 죽음과 부패를 주제로 한 작품들로 터너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비롯한 여러 국제 전시에서 활약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자리매김했고, 1997년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Sensation⟫전에서는 또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죠.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에서도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며 세계적인 입지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Natural History exhibition at Gagosian Gallery in London in 2022. ⓒTristan Fewings/Getty Images.


허스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죽음'입니다. 그것도 마주치기 꺼려지는, 외면하고 싶은 죽음을 아주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끌어내죠. 살아있는 생명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애써 잊고 지내는 그 사실을 허스트는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시신, 동물 사체, 해부된 장기 등 강렬한 이미지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늘 논란과 동시에 현대 사회 속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만들죠. 죽음은 예술사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고전적인 주제입니다만, 허스트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죽음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직면'시키기 때문입니다. 충격은 피로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들이밀 때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죠. 허스트는 이 지점을 정확히 찔러냈습니다.


그렇다면 허스트는 왜 이토록 죽음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걸까요? 그 배경엔 유년 시절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어렵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장례식장에서 일했으며, 허스트 자신도 시체 공시소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죠. 어릴 때부터 죽음과 시체, 그리고 의학적 해부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허스트의 작업 세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믿음을 소비하는 사회


왜 대부분의 사람이 의학은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문도 품지 않고 말입니다.
-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의 초기 대표작인 Medicine Cabinets 시리즈는 약국 진열장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깔끔하게 정돈된 약품 패키지들이 병렬적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가 죽음을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약은 생명을 연장하는 수단이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모순적인 현실을 드러내죠. 허스트는 이를 통해 죽음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허망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Damien Hirst, Sinner, 1988. ⓒPrudence Cuming Associates.


이 시리즈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약국을 갔던 허스트는 그녀가 정확한 성분이나 효능도 모르는 약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약에 대한 맹신과 믿음'이라는 주제를 던졌고, 이후 그의 예술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그의 재학 시절 중 작품이자 Medicine Cabinets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Sinner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탄생했습니다. 약이 가지는 이중성, 즉 치료와 소비, 희망과 불안이라는 감정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정리해 놓은 셈이죠.


Damien Hirst, Bodies, 1989. ⓒPhillips.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따라서 의학과 제약 회사가 내세우는 이런 종류의 크고 행복하고, 웃고, 최소한이고,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을 실망시키지만,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불멸을 믿고 싶어 합니다.
-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Prototype for Lies, 1998. ⓒGagosian.


이후 허스트는 약이라는 주제를 확장하여 Pill Cabinets 시리즈로 이어갑니다. 초기작에는 실제 약 패키지를 비워서 약국처럼 전시했다면, Pill Cabinets는 알약 자체를 작품의 주된 오브제로 사용했죠. 이 시리즈는 약을 소비재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색색의 알약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이 시리즈는 한층 더 시각적이고 미니멀한 쾌감을 선사하는데요. 허스트는 이를 "미니멀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색감"이라 표현했습니다. 알약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은 일견 평화롭지만, 동시에 수백 개의 약물이 주는 기이한 압도감은 현대 의료 시스템의 상업화와 인간의 불안을 함께 드러냅니다. 포장 없이 진열된 약들은 우리가 '믿음'이라는 감정조차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죠.



Damien Hirst, Lullaby Spring, 2002. ⓒSotheby's.


허스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Lullaby Spring은 이 시리즈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수천 개의 알약이 배열된 이 작품은 삶의 연약함과 인간의 통제 욕망, 그리고 죽음을 향한 두려움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를 상징합니다. 정돈된 구조와 알록달록한 색상은 오히려 혼돈 속에서 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강박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죠.


Pharmacy2 Interior, 2016. ⓒPrudence Cuming Associates.


Pharmacy2 Interior, 2016. ⓒPrudence Cuming Associates.


허스트의 알약 사랑은 전시 공간을 넘어 실제 공간으로도 확장됩니다. 1997년, 허스트는 런던 노팅힐에 'Pharmacy Restaurant & Bar'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오픈합니다. 약국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약품명을 딴 칵테일 메뉴, 그리고 실제 약장들이 설치된 공간은 컨셉의 극단을 보여주었죠. 이 레스토랑은 프라다가 유니폼 디자인을, 영국의 대표 산업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이 가구 디자인을 맡으며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개장 직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98년 칼튼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그러나 '약국 이미지가 실제 약국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영국 왕립 제약협회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레스토랑은 2003년 문을 닫았다가, 2016년 허스트의 기획으로 다시 재개방되었습니다. '약'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완성해 나가려는 그의 집요한 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유리 상자에 담긴 죽음


Damien Hirst, A Thousand Years, 1990. ⓒWhite Cube.


Damien Hirst, A Thousand Years, 1990. ⓒWhite Cube.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늘 피하고 싶은 존재입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죽음의 본질을 날것 그대로 꺼내 전시장 한복판에 놓아두죠. 두 칸으로 나뉜 유리 진열장 안에 한쪽에는 잘린 소의 머리와 핏자국이, 다른 쪽에는 파리, 구더기, 설탕, 살충제가 들어 있습니다. 두 공간은 관으로 연결되어 있고, 파리는 소의 피 냄새에 이끌려 날아가다 전기 충격 망에 닿아 죽습니다. 그 시신 위에는 또 다른 구더기가 생기고, 이 구더기는 하루살이가 되어 다시 날아다니죠. 탄생과 죽음, 그리고 다시 탄생. 허스트는 생명의 순환을 생생한 방식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평소 외면하는 죽음을 직면하게 했습니다. 이 적나라함은 불편함을 불러왔고, 비판 역시 뒤따랐죠.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Prudence Cuming Associates.


1991년, 허스트는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수조에 상어를 넣은 작품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름부터 인상적인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은 그의 대표작이자 자연사 시리즈의 상징입니다. 허스트는 어부에게 "당신을 잡아먹을 만큼 큰 상어를 원한다"고 주문했고, 실제로 거대한 상어를 수조에 넣어 지느러미가 움직이게끔 모터까지 달았습니다. 죽은 상어는 그렇게 살아 있는 듯한 모습으로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며 움직였죠. 이 상어는 허스트가 던진 질문의 물리적 형상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죽음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요?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Prudence Cuming Associates.


보존이라는 개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상어는 썩기 시작합니다. 제작 당시 보존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용액은 탁해졌고, 결국 껍데기만 남은 상어는 유리 섬유 틀로 대체되었죠. 허스트조차도 임시 조치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무서워 보이지가 않았다. 진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게감도 없었다"라며 원작의 아우라가 사라졌음을 비판했습니다. 이후, 이 작품을 구매하려던 억만장자 스티븐 코헨의 지원 아래 상어는 교체됩니다. 이번엔 보존 과정을 더 정밀하게 설계했죠. 원작과 같은 해안에서 상어를 포획하고, 이번에는 상어의 육체 속에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주입해 안정화했습니다. 유리 수조는 1991년 원작에 사용된 것을 그대로 재활용했죠. 작품 속 상어를 교체한 뒤에도 그것이 동일한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허스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엄청난 딜레마다. 원본의 예술품이냐, 원래의 의도냐를 놓고 무엇이 중요한지에 관해서는 예술가와 보존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나는 개념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의도'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똑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판결은 오랜 세월 동안 나오지 않으리라 본다.
-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Mother and Child Divided, 1993. ⓒTate.


허스트는 이후 암소와 송아지를 반으로 갈라 수조에 넣은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를 공개하며, 죽음의 형태를 더욱 직접적으로 전시했습니다. 단면이 드러난 장기, 피, 살점. 화면 속 이미지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실물 앞에 서면 묘한 공포가 뒤섞인 감정이 밀려오게 되죠. 허스트는 말합니다. 예술이 아름답고 평온한 것만 추구해선 안 된다고. 우리 안의 두려움, 죽음을 향한 회피 본능,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의 일부라고 말이죠. 그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유리 상자 안에 넣어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우리 앞에 내놓았습니다.


아름다운 죽음의 이면


Damien Hirst, I am Become Death, Shatterer of Worlds, 2006. ⓒChristie's.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데미안 허스트는 나비를 통해 질문을 던집니다. 찬란한 원색 위, 생명이 꺼진 나비들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살아있는 나비는 하늘을 날 때 가장 아름답지만, 허스트는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캔버스에 고정했죠.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패턴 속에서 우리는 죽음과 아름다움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이 전하는 건 '죽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걸까요, 아니면 '아름답기 때문에 죽음조차 잊게 된다'는 역설일까요? 나비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그런 나비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한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늘 윤리적 논쟁의 중점에 있었습니다.


Damien Hirst, In and Out of Love ⓒHENI.


Butterflies feasting on fruit as part of Damien Hirst's work In and Out of Love. ⓒOli Scarff/Getty Images Europe.


특히 허스트는 2012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전시 <사랑의 안과 밖>에서 더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창문 없는 하얀 방 안에 나비 수천 마리를 풀어놓고, 그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했죠. 하지만 전시하는 동안 9,000마리 이상의 나비가 죽어 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비판을 받게 됩니다. 매주 400마리가량의 나비가 죽은 나비들을 대체해 다시 채워졌습니다. 허스트는 이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것이 죽었다는 것입니다"라는 말만 남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허스트의 말은 역설적이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건드립니다. 우리는 죽은 나비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그 아름다움이 생명을 담보로 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혼란을 겪게 되죠. 테이트 모던 측은 "전시장 내 환경 덕분에 많은 나비들이 자연에서보다 오래 살았다"고 해명했지만, 이 발언은 오히려 논란을 키우기에 충분했습니다. 허스트의 Butterfly 시리즈는 우리가 어떤 감각으로 예술을 받아들이는지,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를 되묻습니다. 그 화려한 날갯짓 뒤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어떤 죽음이 숨어 있죠.


색점 뒤에 숨은 불안: 과학, 예술, 그리고 삶


Damien Hirst, Methamphetamine, 2000. ⓒChristie's.


알록달록한 점들이 반복되는 그림, 데미안 허스트의 Spot paintings는 얼핏 보기엔 유쾌하고 단순한 패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 과학에 대한 믿음, 예술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숨어있습니다. 허스트는 Medicine Cabinets 시리즈에서부터 이미 과학이 가진 신뢰와 권위를 예술로 끌어왔습니다. 실제 약품과 가짜 약을 진열장에 정리해 두고,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한 '약'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을 드러냈죠. 질병 → 약 → 치료 → 생명이라는 일련의 구조는, 인간이 과학을 통해 생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Damien Hirst, Valium, 2000. ⓒChristie's.


Spot paintings는 그 연장선에 있는 시리즈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수많은 원형 점. 각 점은 철저한 규칙에 따라 놓여 있습니다. 심지어 작품에 따라 허스트 본인이 아닌 조수들이 제작한 것도 있죠. 얼핏 보면 그저 땡땡이 패턴 같기도 합니다만, 보다 보면 우리는 반복되는 색 점들 사이에서 '왜 이걸 이렇게까지 반복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딱 떨어지는 배열, 그러나 어떤 감정도 없는 표면은 오늘날의 시스템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작가 본인인 허스트의 손길이 빠지면서 개념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죠.


2011년, 이 시리즈는 전 세계 11개 도시의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될 만큼 대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허스트의 설계가 아니었을까요? 무의미해 보이는 것이 반복될 때, 우리는 그것을 믿게 되니까요. 마치 매일 먹는 알약처럼요. 결국 Spot Paintings는 '이 점들에 의미가 있다면, 그건 당신이 붙인 의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약도, 예술도, 과학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네요.


통제 불가한 감정의 원심력


Damien Hirst, Beautiful, pop, spinning ice creamy, whirling, expanding painting, 1995. ⓒStephen White/White Cube.


빠르게 돌고 있는 캔버스 위에 쏟아지는 물감. Spin Paintings 시리즈는 마치 장난감 같고 유쾌해 보입니다.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는 이 안에 혼란, 감정, 불확실성 같은 삶의 본질을 담아냈습니다. 허스트는 어릴 적 BBC 프로그램 <블루 피터>에서 본 놀이기법에서 착안해 1992년부터 이 시리즈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원판을 고속으로 회전시키고, 그 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우연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요. 이 기술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번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허스트는 이 과정에서 감정의 분출, 제어 불가능한 삶의 흐름, 존재의 취약함에 주목했습니다. Spot Paintings 시리즈가 질서의 예술이었다면, Spin Paintings는 그 반대였죠. 통제가 불가능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삶의 혼란을 시각화한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 역시 대부분이 허스트 본인이 아닌 조수들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겁니다. 이는 '작가의 손'보다 '과정 그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두겠다는 선언처럼 보이는데요. 누가 만들든, 중심축이 어떻게 돌든, 결과는 오직 우연에 의해 정해지니까요. 그런 점에서 Spin Paintings 시리즈는 예술이 통제 불가능한 감정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이아몬드를 씌운 죽음


Damien Hirst, For the Love of God, 2007. ⓒWhite Cube.


그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할 이미지이자, 데미안 허스트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바로 실제 인간의 두개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신의 사랑을 위하여>입니다. 이 작품은 죽음과 소비주의, 그리고 현대 미술의 상업성을 전면으로 드러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부와 권력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요소가 하나의 이미지로 맞닿을 때 우리는 묘한 불편함과 동시에 화려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허스트는 이 아이러니를 통해 이토록 찬란한 외피를 뒤집어써도 결국 인간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음을 말했죠.


2007년, 이 작품은 5천만 파운드(당시 약 983억 원)에 거래되었다고 발표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2022년, 실제로는 이 작품이 거래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게 되었죠. 이 사건은 허스트에게 비판과 논란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올리기 위한 쇼가 아니었냐는 의혹과 함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작가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죠. 천문학적 가격의 언론 플레이와 자극적인 이미지까지. 죽음을 팔아 예술이 되고, 논란을 사고, 다시 그것이 또 다른 가치가 되는 순환을 보여준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어쩌면 그것마저 작품의 일부였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을 빌려 삶을 질문한 비즈니스 맨


Damien Hirst ⓒPrudence Cuming Associates.


데미안 허스트는 '살아 있는 작가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자주 언급됩니다. 작품 활동에 그치지 않고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그리고 자신만의 갤러리를 운영하며 예술계를 넘어선 파급력을 지닌 존재가 되었죠. 허스트는 대학생 시절부터 뛰어난 기획력을 바탕으로 직접 전시를 열고, 언론을 활용해 자신을 홍보하는 데 능했습니다. 그의 예술은 도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었고, 거센 비판만큼이나 늘 세상의 주목을 받았죠.


Damien Hirst poses with his work The Incredible Journey at Sotheby’s art gallery and auction house in London, 2008 ⓒShuan Curry/AFP/Getty Images.


허스트는 작품을 유통하고 전시하는 방식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배우 매니지먼트 출신인 프랭크 던피와 함께 미술 상품을 '상품화'하며 아트 에디션을 제작했고, 어시스턴트를 통해 작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시스템도 도입했죠. 특히 2008년, 개인 경매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에서는 하루 만에 약 1억 1,100만 파운드(당시 약 2,400억 원)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작가가 전통적인 갤러리나 딜러 없이도 스스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으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죠.


The Exterior of the Newport Street Gallery ⓒHélène Binet.


그의 컬렉터로서의 면모 역시 주목할 만한데요. 무명 시절부터 동료 작가들과의 작품 맞교환으로 시작된 컬렉션은, 지금 수천억 원대의 가치를 지닌 아트 컬렉션으로 성장했습니다. 2015년, 허스트는 이 컬렉션을 기반으로 런던에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를 개관했고, 자신이 주목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며 '컬렉터 허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렇듯 허스트는 작품의 창작부터 판매, 전시, 소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설계하며 예술가이자 기획자, 컬렉터로서 예술 생태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통찰력에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까지 더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왔죠. 특히 2022년에는 예술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NFT로 전환된 자신의 작품의 물리적 원본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허스트의 모든 성취의 중심에는 여전히 '죽음'이라는 테마가 놓여 있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그의 방식은 언제나 논란과 비판을 불러왔지만, 허스트의 지속적으로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해골, 형형색색의 나비, 박제된 동물 등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진실을 작품으로 끄집어냈죠. 허스트는 지금도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가 던지고 있는 건 삶에 대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며 외면하고 있는지. 그가 보여주는 죽음은 어쩌면 삶을 비추는 가장 낯설고도 가까운 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허스트의 작품에서 어떤 얼굴을 마주하셨나요? 죽음을 빌려 삶을 묻는 그의 시선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허스트의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셔도 좋아요. 그동안 직면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 마치겠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 내용 요약 💌

1. 데미안 허스트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자 상업성과 논란을 동시에 품은 예술가입니다.

2. ⟪Freeze⟫ 전시를 통해 허스트는 작가 주도의 전시와 대안공간 개념을 제시하며 YBA의 중심인물로 떠올랐습니다.

3. 허스트는 죽음을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강렬한 이미지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질문합니다.

4. Medicine Cabinets 시리즈는 약을 통해 죽음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허망함을 드러냅니다.

5. Pill Cabinets 시리즈는 약을 소비재로 바라보며, 현대 의료 시스템과 믿음의 상업화를 비판합니다.

6. 허스트는 살아 있는 자에게 죽음은 상상조차 어렵다는 질문을 거대한 상어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으로 시각화했습니다.

7. 허스트는 나비를 통해 죽음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8. 의도적 통제를 드러내는 Spot paintings와 달리, Spin paintings는 우연을 말하며 두 시리즈는 삶과 예술의 양면을 보여줍니다.

9.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은 죽음과 소비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을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10. 허스트는 예술가이자 기획자, 사업가로서 예술계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Editor. Jang Haeyeong
섬네일 출처: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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