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이유비>님의 추천으로 호아킨 소로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추천은 언제 환영이에요. 😊
호아킨 소로야, 해변가의 산책, 1909
출처: 위키아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주말 부산에서 바다를 보고 왔는데요. '바다' 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의 유일무이한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입니다! 스페인 화가 중에는 인상주의 화가를 거의 찾아보기는 힘들어요. 흔히 스페인 화가 하면 피카소, 고야, 벨라스케스를 많이들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스페인 미술은 어둡고, 어렵다는 이미지가 없지 않아 있죠. 그런데 태양의 나라인 만큼 따뜻한 인상주의 화가도 있다는 것! 오늘 레터를 통해 스페인 빛의 대가, 호아킨 소로야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사실주의
스페인의 인상주의 화가라면서 사실주의라니, 의아하죠? 소로야의 초기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요. 그는 당시 어둡고 슬픈 분위기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렸죠. 이는 미술 공부를 하는 동안 스페인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요.
2. 인상주의
소로야는 프랑스 여행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루미니즘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지중해 바닷가의 따스한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가요. 그렇게 소로야는 사실적이면서도 빛의 효과가 두드러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나갑니다.
3. 바다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림인데요. 그는 자유로운 붓 터치와 경쾌한 색채로 이베리아반도와 지중해의 인상을 포착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바쁜 화가 생활에도 소로야는 틈틈이 고향을 찾아, 그곳의 바다를 화폭에 담아냈어요.
스페인의 일상과 사회상을 담다 🇪🇸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는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어요. 전염병으로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들의 손에서 성장하였죠. 이모부께서 금속공예를 하시는 분이라, 그는 든든한 지원을 받으면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어요. 👦
출처: Daily Dose of Art
소로야는 9살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15살에 미술학교에 입학합니다.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학교측에서 그림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어요. 🔖
마드리드로 거처를 옮긴 후,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많은 거장의 그림을 모작하면서 실력을 쌓아갑니다. 훗날 자신의 딸을 그린 작품에도 벨라스케스의 화풍이 녹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오) 호아킨 소로야, 마리아, 1901 (왼) 디에고 벨라스케스,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인판타, 1695
출처: 위키미디어, 위키완드
소로야의 그림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요, 각종 수상은 물론,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미술관에서 그림을 전시하곤 했습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친 후, 4년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 로모로 유학을 떠나요. 그곳에서 그는 이탈리아 고대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어 나갑니다. 🚶 아래 사진은 발렌시아시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나폴레옹에게 선전포고하는 팔레터, 1884
출처: artcontrari
호아킨 소로야 하면 바다의 찬란한 빛을 부드러운 색채로 담아낸 그림이 대표적인데요.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밝고, 행복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작품들을 보면, 그는 어둡고 슬픈 사회 분위기를 자주 담았어요. 프란시스코 고야와 외젠 들라크루아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붓 터치와 어두운 색채로 보아, 아마 그들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요. 👀
이래도 고기는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1894
출처: 위키아트
이 그림은 사고를 당한 젊은 어부와 그를 돕고 있는 두 명의 가난한 어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에요. 이는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
백인 노예 무역, 1895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또 다른 그림을 볼까요? 여성 여러 명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데요. 동작과 표정에 삶의 희망을 잃은 듯 보여요. 사방의 꽉 막힌 배경은 어디로 탈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는 여성들이 매춘으로 팔려 가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해요.
또 다른 마르게리타, 1892
출처: 위키아트
이 장면은 무슨 장면일까요? 😶 자세히 보면, 여성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죠? 체념한 듯한 여자의 얼굴과 총을 든 경찰들. 이 작품은 소로야가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로 이동하는 중, 한 여인이 자기 아이를 죽이고 붙잡힌 사건을 목격한 것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에요.
당시 스페인은 불안한 시기였는데요. 1898년에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마지막 식민지인 필리핀과 쿠바를 뺏기고 말죠. 1900년까지 소로야는 의식적으로 슬픔과 동정을 유발하는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 그러다 1900년 이후부터 발렌시아가 해변가에 쏟아지는 빛을 그리기 시작해요.
key point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호아킨 소로야는 탄탄한 미술교육을 바탕으로, 스페인 거장들의 그림을 모작하며 실력을 키웠어요.
그들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서 주로 사회적인 문제, 그 당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모습을 자주 화폭에 담았습니다.
”빛이 많을수록 그림은 더 생기롭고 진실하며, 아름답다” ✨
소로야는 로마 유학 중에 잠시 프랑스 여행을 갔어요. 그때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크게 감명받죠. 이후 그는 스페인의 지중해의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가요. 인상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그를 '빛의 거장'이라고 불렀어요. 🇫🇷
돛 바느질, 1896
출처: 위키아트
앰버서더 홀 알함브라, 그라나다, 1909
출처: 위키아트
프랑스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소로야의 화풍은 프랑스 인상주의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소로야는 따뜻한 배경의 빛과 물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어요. 그의 그림은 마치 스냅사진을 연상시키죠. 즉, 인상주의풍이면서도 인상주의와는 다른 독특한 화법을 구사해 나갑니다. 🎨
돌아오는 고깃배, 1984
출처: 위키아트
이 그림은 어부들이 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포착한 그림인데요. 소 두 마리가 배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은 사실적이면서도, 움직이는 파도의 모습을 색과 빛으로 잘 표현해 인상 깊죠? 😲
발렌시아 어부들, 1897
출처: 위키아트
바닷가의 여자 어부들, 1903
출처: 위키아트
위 그림은 여자 어부들이 일을 마치고 일한 명세를 장부에 기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그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그렸어요. 그의 마지막 지중해 그림 또한 해안 절벽을 오르는 밀수꾼들의 모습이었죠.
밀수꾼들, 1919
출처: 위키아트
호아킨 소로야는 작품 '슬픈 유산'을 기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해요. 이 그림은 유전성 매독으로 신체적 불편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수도사의 보호 아래 발렌시아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요. 이 그림으로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받고, 1901년에는 스페인 미술 국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어요. 🏆
슬픈 유산, 1899
출처: 위키아트
이후 미국까지 진출한 그는 뉴욕에서 성공적인 전시를 거두어요. 1911년에는 미국 히스패닉 협회로부터 미국 뉴욕 도서관에 전시할 장식용 그림을 의뢰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1912년부터 1919년간 14점의 패널로 이루어진 '스페인 지방'을 그려요. 이는 스페인의 풍습과 사람들을 묘사한 연작입니다. 또, 그는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포함하여 수많은 인물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
미국 대통령 태프트의 초상화, 1909
출처: 위키아트
소로야는 7년간 진행했던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큰 노력을 하였는데요. 작품 완성 1년 후인 1920년,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1923년에 사망하고 말죠. 그 작품은 현재까지 미국 히스패닉 협회의 도서관을 장식하고 있다고 해요. 🏫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key point
프랑스 여행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루미니즘에 감명받고, 자신이 살고 있는 스페인의 지중해의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가요.
인상주의 영향으로 따뜻한 빛과 물을 배경으로 하되, 주제 선택에 있어서는 사실주의의 영향으로 바닷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역동적인 모습을 그렸습니다.
미국까지 진출한 소로야는 대형 작품과 수많은 사람의 초상화를 의뢰받아요.
소로야의 바다로. 잊혀진 세계 최고의 화가 ⛵
그는 마드리드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매년 여름이면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그곳의 바다 풍경을 그렸다고 하는데요. 발렌시아의 바다는 어릴 적 자신의 놀이터이자, 일찍 부모님을 잃은 그에게 큰 위안이었어요. 스페인의 발렌시아는 찬란한 여름 날씨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지중해와 맞닿은 이곳의 항구는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해요. 🐬
“언제나 발렌시아로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그 해변으로 가 그림을 그릴 생각만 합니다. 발렌시아 해변이 바로 그림입니다.”
-호아킨 소로야-
아침 햇살에 발렌시아 해변, 1908
출처: 위키아트
발렌시아 해변
출처: travelandleisureasia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무해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즐겁고, 평온해집니다. 소로야는 지금 보고 있는 바다의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해변에 화구와 캔버스를 놓고 아주 빠르게 장면을 기록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작품에는 모래알들이 섞여 있다고 하죠. 🐚
해변 달리기, 1908
출처: 위키아트
바닷가의 소년들, 1910
출처: 위키아트
몸과 바다를 반짝이게 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자유분방한 붓 터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어요. 그런데도 치밀하고 과학적인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움직임이 잘 드러납니다. 🏄
“빠르게 그리지 않으면 다시 만나지 못할 풍경들이 사라질 테니까”
“태양 빛은 쉬지 않고 세상의 겉모습을 바꾼다.”
-호아킨 소로야-
출처: gurneyjourney
이처럼 야외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풍경화 방식을 '외광회화'라고 하는데요. 소로야는 외광회화로 도시 풍경화와 바다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그린 후로 더욱 유명해졌어요. 👏
나의 가족, 1901
출처: 위키아트
소로야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가 있는데요. 그의 작품 중에는 가족들을 그린 그림이 다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그의 다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는 실제로 가정적이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해요.
또 전시와 작업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때, 아내에게 8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고 해요. 소로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애정과 따뜻함이 그림에 잘 녹아들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
정원에서 부인과 딸들, 1910
출처: 위키아트
해변의 클로틸데, 1904
출처: 위키아트
그가 죽고 10년 후, 가족의 노력으로 그의 집과 정원은 스페인 국립 소로야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어요. 저택이었을 때 사용하던 가구와 화구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소로야 박물관
소로야 박물관 내부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Juan Antonio Segal
소로야는 생애 무려 2,200점에 달하는 다작을 그렸는데요.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그의 이름이 생소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이는 그가 이미 30대 중반부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1차 세계대전과 현대미술의 사조 흐름으로 빠르게 잊혔기 때문입니다.
오늘 레터를 통해서 스페인의 유일무이한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반짝이는 바다의 시원함과 행복함을 사람들과 공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
key point
소로야는 마드리드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매년 여름이면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그곳의 바다 풍경을 그렸어요.
소로야는 지금 보고 있는 바다의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야외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풍경화 방식인 '외광회화'를 그렸어요.
소로야는 30대 중반부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1차 세계대전과 현대미술의 사조의 흐름으로 빠르게 잊혀졌어요.
아팅이도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아팅이가 정리해 주는 오늘의 내용! 🍉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호아킨 소로야는 탄탄한 미술교육을 바탕으로, 스페인 거장들의 그림을 모작하며 실력을 키웠어요.
그들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서 주로 사회적인 문제, 그 당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모습을 자주 화폭에 담았습니다.
프랑스 여행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루미니즘에 감명받고, 자신이 살고 있는 스페인의 지중해의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가요.
인상주의 영향으로 따뜻한 빛과 물을 배경으로 하되, 주제 선택에 있어서는 사실주의의 영향으로 바닷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역동적인 모습을 그렸습니다.
미국까지 진출한 소로야는 대형 작품과 수많은 사람의 초상화를 의뢰받아요.
소로야는 마드리드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매년 여름이면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그곳의 바다 풍경을 그렸어요.
소로야는 지금 보고 있는 바다의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야외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풍경화 방식인 '외광회화'를 그렸어요.
소로야는 30대 중반부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1차 세계대전과 현대미술의 사조의 흐름으로 빠르게 잊혀졌어요.
✨아트아트의 스페셜 인터뷰! 회화작가 박현정✨
박현정은 단순히 예술가나 창조자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이미지 만드는 사람'이라는 소박하고 겸손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무수한 이미지가 쏟아지는 현대사회에 기술의 발전으로 창작 프로세스가 변화하고 있음에 따라,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는 추상 회화를 연구한다.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수집과 소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러한 문화가 현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종이와 디지털 기기를 오가며 이미지를 시뮬레이션하고 실험을 통해 우연성과 혁신적인 조합을 담은 평면작업을 선보인다.
썸네일 출처: mismuseos
바다를 배경으로 그린 자화상, 1909
VOL 36.여름, 그리고 바다. 지중해의 빛을 그려낸 호아킨 소로야 🌊 ✨
: 오늘은 <이유비>님의 추천으로 호아킨 소로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추천은 언제 환영이에요. 😊
호아킨 소로야, 해변가의 산책, 1909
출처: 위키아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주말 부산에서 바다를 보고 왔는데요. '바다' 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의 유일무이한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입니다! 스페인 화가 중에는 인상주의 화가를 거의 찾아보기는 힘들어요. 흔히 스페인 화가 하면 피카소, 고야, 벨라스케스를 많이들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스페인 미술은 어둡고, 어렵다는 이미지가 없지 않아 있죠. 그런데 태양의 나라인 만큼 따뜻한 인상주의 화가도 있다는 것! 오늘 레터를 통해 스페인 빛의 대가, 호아킨 소로야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먼저 보고 들어가는 키워드 😎
1. 사실주의
스페인의 인상주의 화가라면서 사실주의라니, 의아하죠? 소로야의 초기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요. 그는 당시 어둡고 슬픈 분위기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렸죠. 이는 미술 공부를 하는 동안 스페인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요.
2. 인상주의
소로야는 프랑스 여행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루미니즘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지중해 바닷가의 따스한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가요. 그렇게 소로야는 사실적이면서도 빛의 효과가 두드러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나갑니다.
3. 바다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림인데요. 그는 자유로운 붓 터치와 경쾌한 색채로 이베리아반도와 지중해의 인상을 포착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바쁜 화가 생활에도 소로야는 틈틈이 고향을 찾아, 그곳의 바다를 화폭에 담아냈어요.
스페인의 일상과 사회상을 담다 🇪🇸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는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어요. 전염병으로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들의 손에서 성장하였죠. 이모부께서 금속공예를 하시는 분이라, 그는 든든한 지원을 받으면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어요. 👦
출처: Daily Dose of Art
소로야는 9살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15살에 미술학교에 입학합니다.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학교측에서 그림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어요. 🔖
마드리드로 거처를 옮긴 후,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많은 거장의 그림을 모작하면서 실력을 쌓아갑니다. 훗날 자신의 딸을 그린 작품에도 벨라스케스의 화풍이 녹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오) 호아킨 소로야, 마리아, 1901 (왼) 디에고 벨라스케스,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인판타, 1695
출처: 위키미디어, 위키완드
소로야의 그림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요, 각종 수상은 물론,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미술관에서 그림을 전시하곤 했습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친 후, 4년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 로모로 유학을 떠나요. 그곳에서 그는 이탈리아 고대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어 나갑니다. 🚶 아래 사진은 발렌시아시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나폴레옹에게 선전포고하는 팔레터, 1884
출처: artcontrari
호아킨 소로야 하면 바다의 찬란한 빛을 부드러운 색채로 담아낸 그림이 대표적인데요.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밝고, 행복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작품들을 보면, 그는 어둡고 슬픈 사회 분위기를 자주 담았어요. 프란시스코 고야와 외젠 들라크루아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붓 터치와 어두운 색채로 보아, 아마 그들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요. 👀
이래도 고기는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1894
출처: 위키아트
이 그림은 사고를 당한 젊은 어부와 그를 돕고 있는 두 명의 가난한 어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에요. 이는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
백인 노예 무역, 1895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또 다른 그림을 볼까요? 여성 여러 명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데요. 동작과 표정에 삶의 희망을 잃은 듯 보여요. 사방의 꽉 막힌 배경은 어디로 탈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는 여성들이 매춘으로 팔려 가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해요.
또 다른 마르게리타, 1892
출처: 위키아트
이 장면은 무슨 장면일까요? 😶 자세히 보면, 여성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죠? 체념한 듯한 여자의 얼굴과 총을 든 경찰들. 이 작품은 소로야가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로 이동하는 중, 한 여인이 자기 아이를 죽이고 붙잡힌 사건을 목격한 것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에요.
당시 스페인은 불안한 시기였는데요. 1898년에 스페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마지막 식민지인 필리핀과 쿠바를 뺏기고 말죠. 1900년까지 소로야는 의식적으로 슬픔과 동정을 유발하는 그림을 자주 그렸습니다. 😿 그러다 1900년 이후부터 발렌시아가 해변가에 쏟아지는 빛을 그리기 시작해요.
key point
”빛이 많을수록 그림은 더 생기롭고 진실하며, 아름답다” ✨
소로야는 로마 유학 중에 잠시 프랑스 여행을 갔어요. 그때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크게 감명받죠. 이후 그는 스페인의 지중해의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가요. 인상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그를 '빛의 거장'이라고 불렀어요. 🇫🇷
돛 바느질, 1896
출처: 위키아트
앰버서더 홀 알함브라, 그라나다, 1909
출처: 위키아트
프랑스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소로야의 화풍은 프랑스 인상주의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소로야는 따뜻한 배경의 빛과 물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어요. 그의 그림은 마치 스냅사진을 연상시키죠. 즉, 인상주의풍이면서도 인상주의와는 다른 독특한 화법을 구사해 나갑니다. 🎨
돌아오는 고깃배, 1984
출처: 위키아트
이 그림은 어부들이 낚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포착한 그림인데요. 소 두 마리가 배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은 사실적이면서도, 움직이는 파도의 모습을 색과 빛으로 잘 표현해 인상 깊죠? 😲
발렌시아 어부들, 1897
출처: 위키아트
바닷가의 여자 어부들, 1903
출처: 위키아트
위 그림은 여자 어부들이 일을 마치고 일한 명세를 장부에 기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그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그렸어요. 그의 마지막 지중해 그림 또한 해안 절벽을 오르는 밀수꾼들의 모습이었죠.
밀수꾼들, 1919
출처: 위키아트
호아킨 소로야는 작품 '슬픈 유산'을 기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해요. 이 그림은 유전성 매독으로 신체적 불편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수도사의 보호 아래 발렌시아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요. 이 그림으로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받고, 1901년에는 스페인 미술 국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어요. 🏆
슬픈 유산, 1899
출처: 위키아트
이후 미국까지 진출한 그는 뉴욕에서 성공적인 전시를 거두어요. 1911년에는 미국 히스패닉 협회로부터 미국 뉴욕 도서관에 전시할 장식용 그림을 의뢰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1912년부터 1919년간 14점의 패널로 이루어진 '스페인 지방'을 그려요. 이는 스페인의 풍습과 사람들을 묘사한 연작입니다. 또, 그는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포함하여 수많은 인물의 초상화를 그렸어요. 🇺🇲
미국 대통령 태프트의 초상화, 1909
출처: 위키아트
소로야는 7년간 진행했던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큰 노력을 하였는데요. 작품 완성 1년 후인 1920년,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1923년에 사망하고 말죠. 그 작품은 현재까지 미국 히스패닉 협회의 도서관을 장식하고 있다고 해요. 🏫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key point
소로야의 바다로. 잊혀진 세계 최고의 화가 ⛵
그는 마드리드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매년 여름이면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그곳의 바다 풍경을 그렸다고 하는데요. 발렌시아의 바다는 어릴 적 자신의 놀이터이자, 일찍 부모님을 잃은 그에게 큰 위안이었어요. 스페인의 발렌시아는 찬란한 여름 날씨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지중해와 맞닿은 이곳의 항구는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해요. 🐬
아침 햇살에 발렌시아 해변, 1908
출처: 위키아트
발렌시아 해변
출처: travelandleisureasia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무해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즐겁고, 평온해집니다. 소로야는 지금 보고 있는 바다의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해변에 화구와 캔버스를 놓고 아주 빠르게 장면을 기록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작품에는 모래알들이 섞여 있다고 하죠. 🐚
해변 달리기, 1908
출처: 위키아트
바닷가의 소년들, 1910
출처: 위키아트
몸과 바다를 반짝이게 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자유분방한 붓 터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어요. 그런데도 치밀하고 과학적인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움직임이 잘 드러납니다. 🏄
출처: gurneyjourney
이처럼 야외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풍경화 방식을 '외광회화'라고 하는데요. 소로야는 외광회화로 도시 풍경화와 바다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그린 후로 더욱 유명해졌어요. 👏
나의 가족, 1901
출처: 위키아트
소로야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가 있는데요. 그의 작품 중에는 가족들을 그린 그림이 다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그의 다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는 실제로 가정적이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해요.
또 전시와 작업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때, 아내에게 800통이 넘는 편지를 썼다고 해요. 소로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애정과 따뜻함이 그림에 잘 녹아들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
정원에서 부인과 딸들, 1910
출처: 위키아트
해변의 클로틸데, 1904
출처: 위키아트
그가 죽고 10년 후, 가족의 노력으로 그의 집과 정원은 스페인 국립 소로야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어요. 저택이었을 때 사용하던 가구와 화구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소로야 박물관
소로야 박물관 내부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Juan Antonio Segal
소로야는 생애 무려 2,200점에 달하는 다작을 그렸는데요.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그의 이름이 생소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이는 그가 이미 30대 중반부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나, 1차 세계대전과 현대미술의 사조 흐름으로 빠르게 잊혔기 때문입니다.
오늘 레터를 통해서 스페인의 유일무이한 인상주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반짝이는 바다의 시원함과 행복함을 사람들과 공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
key point
아팅이도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아팅이가 정리해 주는 오늘의 내용! 🍉
✨아트아트의 스페셜 인터뷰! 회화작가 박현정✨
박현정은 단순히 예술가나 창조자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이미지 만드는 사람'이라는 소박하고 겸손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무수한 이미지가 쏟아지는 현대사회에 기술의 발전으로 창작 프로세스가 변화하고 있음에 따라,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는 추상 회화를 연구한다.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수집과 소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러한 문화가 현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종이와 디지털 기기를 오가며 이미지를 시뮬레이션하고 실험을 통해 우연성과 혁신적인 조합을 담은 평면작업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