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9 그 무엇보다 당신을 불편하게 할 전시, 피에르 위그: 리미널 |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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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 불편한 예술, 피에르 위그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따끈따끈한 전시 소식과 함께 찾아왔는데요,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인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와
그의 첫 한국 개인전 <리미널>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리움미술관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피에르 위그는 현실과 허구, 인간과 비인간, 질서와 무질서를 넘나들며 작업해왔습니다.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주제들을 파고들어 생생하게 비춰내는 피에르 위그의 작품은, 어쩔 때는 괴이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해요. 


©publicdelivery

그는 1999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총 1000그루의 나무를 심어 공연장 전체를 숲으로 바꿔버린 과감한 작품 ‘A Forest of Lines’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며 세계에서 가장 도시적인 공간을 야생의 공간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죠.
이렇듯 항상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들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가, 피에르 위그의 작품관과 이번 전시에 대해 알아봅시다!



🌫 리미널 스페이스를 아시나요?

호러와 서브컬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전시의 제목인 '리미널'이라는 단어를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어딘가 익숙하지만 불길한 느낌을 주는 위와 같은 공간들은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 라는 개념으로 불립니다. 과하게 인공적인 조명, 뿌연 안개, 텅 빈 복도나 방. 마치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듯한 이곳은 언제든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이 공간들은 인터넷 밈과 호러 서브컬처에서도 자주 언급되며, 보기만 해도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을 줘요. 


©Kane Pixels / Backroom level 0


피에르 위그는 이번 전시에서 바로 이 리미널의 개념을 예술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Liminal’이라는 단어는 ‘경계’, 혹은 ‘문턱’를 의미하는 라틴어 ‘리멘(Limen)’에서 유래했습니다. 어떤 것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곧 출현할 수도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뜻하죠.

하지만 위그의 작업 속에서 경계는 기둥이나 벽 같은 단순한 물리적 구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과 가상, 인간과 비인간, 인식과 무의식이 충돌하는 공간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피에르 위그는  AI, 생물학, 시뮬레이션 기술 등을 활용하여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는 세계를 낯설게 새로 만들어 냅니다. 

도시적 풍경 속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순간, 자연과 기계가 혼합된 생태계,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인공적인 존재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알고 있던 ‘현실’이라는 개념에 균열을 내는 실험적인 경험이 될 거예요. 그렇다면 피에르 위그가 흐리고자 했던 경계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함께 살펴봅시다. 



인간인가, 짐승인가? 인간성의 경계를 묻다 

©PIERRE HUYGHE, mattatoioroma

처음 이 존재를 보면 평범한 소녀처럼 느껴질지 몰라요. 하지만 곧 알게 됩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라는 사실을요. 긴 털이 난 손끝, 조심스러운 몸짓. 그리고 무엇보다, 소녀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가면입니다.




©weirdopedia

이 작품은 한 유투브 영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2년 전 어느 날, 유투브에는 '푸쿠 쨩,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라는 제목의 한 영상이 업로드됩니다. 영상 속에서는 웨이터 소녀처럼 유니폼을 입은 원숭이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냅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영상 속의 손님들은 원숭이가 정말 사랑스럽고, 자신의 아들과는 달리 말을 잘 듣는다며 즐겁게 웃습니다.


©BBC

이 원숭이의 종족은 바로 마카크입니다. 이 종은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뇌 기능과 유사하기 때문에 동물 실험에 널리 사용되기도 했죠. 피에르 위그는 영상을 본 후 즉각 이 원숭이 '푸쿠 쨩'의 영상 속 비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기이함,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의 모호함에 매료되었습니다. 우리의 일하는 삶의 반복과 고된 노동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는데요! 



©PIERRE HUYGHE

피에르 위그는 이내 '푸쿠 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냅니다. 『휴먼 마스크』는 일본 후쿠시마 지역의 한 작은 식당에서 촬영된 영상 작품입니다. 이 원숭이는 과거 식당에서 종업원 훈련을 받았던 실제 원숭이를 데려온 것입니다. 원숭이는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사람이 떠난 공간에 홀로 남겨졌지만,  여전히 이전에 학습했던 행동을 반복합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주문을 받을 것도, 손님을 응대할 필요도 없는데, 그는 가발과 원피스를 입고 마치 사람이 남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춤을 춥니다. 중간 중간 목적을 잃은 듯 멈추기도 하죠. 그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어쩐지 애처롭습니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했는데요, 설정된 상황 자체는 가상의 디스토피아이지만 AI나 다른 합성 기술이 아닌 실제 훈련시킨 원숭이가 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휴먼 마스크』 속 세상처럼 모든 게 사라진다면, 인간성은 어떻게 새로 정의될까요?


©PIERRE HUYGHE

여기가 미술관이야, 박물관이야? 소리가 나올 만큼, 전시장 안에는 스크린만 아니라 여러 개의 수조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콘스탄틴 브란쿠시의 대표작 ‘잠자는 뮤즈’의 작은 복제판을 집처럼 이 소라게가 천천히 기어 다니는 수족관 ‘주드람4’입니다.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작품인데요, 인간의 형식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경계에 대해 작가는 급기야 살아있는 생물을 가져와 질문을 던집니다.


©리움미술관

그뿐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수조, ‘캄브리아기 대폭발’ 안에서는  5억 4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 당시 출현한 고대 생명체 두 종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생성되었지만 형태가 변하지 않은 이들은 본능적 행동을 반복하며 길고 긴 생명을 이어갑니다. 



전시장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암세포?!

©LUMA Arles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연구용 암세포가 서식하고 분열하는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삼성서울병원과의 협력으로 진행된 『암세포 변환기』 입니다.

이 작품 속 암세포는 단순한 과학적 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분열하고 변화하며,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현미경 이미지 데이터로 송출되어 『U움벨트-안리』 라는 또 다른 작품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그림을 그려냅니다. 마치 예술의 연쇄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AI와 인간 의식 사이의 경계

©리움미술관


전시 공간을 거닐다 보면 낯설고도 기묘한 형상 을 마주하게 됩니다. 얼굴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움직입니다. 그리고 바라봅니다. 리움미술관과 합작해 만들어진 전시와 동명의 신작 『리미널(Liminal)』입니다.

『리미널』 에 등장하는 이 인간 형상의 움직임과 시선은 단순한 기계적 프로그래밍이 아닙니다. 이 존재는 공간의 센서가 포착한 환경 데이터와 인공 신경 조직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행동합니다. 즉, 그는 주변을 인식하고, 조건을 학습하며, 기억을 쌓아가죠. 피에르 위그의 인간성에 대한 집요한 질문은 이제 타 생물종을 넘어서서 '데이터와 기계'를 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형상을 단순한 조형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생명’ 이라고 해야 할까요?

©SBS

또한 실제로 리움미술관의 전시장 안 곳곳에는 황금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돌아다니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리미널과는 다르게 실제 인간이지만, 황금 마스크를 쓰고 있기에 역시 시선을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발성과 신경망은 새로운 언어 '이디엄'이 되어 전시장에 울려퍼집니다. 흥미로는 TMI 로는, 이들의 의상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기계가 애도하는 인간의 죽음

마지막으로 신작 『카마타』를 살펴봅시다. 이 영상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인간 유해를 조명하며 시작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익숙하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PIERRE HUYGHE


로봇 팔들이 인간의 해골을 둘러싸고 알 수 없는 의식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장례를 치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그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이 장면은 마치 미래의 어느 순간, 인간이 사라진 후 기계가 유적을 조사하는 풍경을 연상시키죠.

기계는 애도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감정과, 의례들은 기계화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장례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알 수 없습니다. 기계들은 정말 슬퍼하는 걸까요? 아니면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을 뿐일까요? 인간은 감정을 나누고, 의미를 부여하며, 의식을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남긴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이런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애도와 기억조차 기계화될 수 있다면, 감정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AI와 데이터를 중심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는 2025년, 예술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는 이러한 질문을 작품을 통해 던졌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예술을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탐구해야 할 주제가 된 시대. 우리는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의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
_ 피에르 위그



이렇듯 이번 전시 『리미널』을 이루는 모든 작품들에는, 처음과 끝이 없습니다. 영상, 살아있는 생물, 세포,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편집되고 재구성되며, 전시 공간 내 센서가 수집한 정보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즉, 우리가 보는 미술 작품은 정해진 하나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공간과 환경에 반응하며 계속해서 달라지는 이야기인 것이죠.

그렇다면 이 장면들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방식의 기억과 기록일까요? AI와 데이터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피에르 위그의 작품들은 단지 전시장 속 이미지를 넘어 인간 존재와 사회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The Wall Street Journal



당신은 이 경계에 발을 들일 준비가 되었나요?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은 관객에게 일방적인 감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워하며 작품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현실과 가상이 얽혀 있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인간성과 기술, 감각과 인식의 경계를 다시금 고민하게 될 거예요.


피에르 위그: 《리미널(Liminal)》
리움 미술관
2025.02.27. – 2025.07.06.



오늘의 아트레터 요약! ☝️


  1.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피에르 위그는 계속해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 교육을 받았지만, 형식을 뛰어넘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예술을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가입니다.

  2. 피에르 위그는 공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작업합니다. 
    그는 단순히 스크린 혹은 캔버스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전시장 안과 밖을 자유롭게 침범하며 작품의 세계를 펼칩니다. 

  3. 이번 전시 『리미널』은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경계 공간’에 주목합니다.
    전시는 단순한 예술을 뛰어넘어 AI, 생물학, 시뮬레이션 기술을 결합해 현실과 비현실이 혼재된 새로운 경험을 보여줍니다. 

  4. 피에르 위그의 작업은 살아있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미디어 아트, 유기체, 알고리즘이 결합된 환경 속에서 작품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스스로 배우며 성장하고, 진화합니다.

  5. 작가는 관객 또한 전시의 일부로 포함시킵니다.
    관객의 움직임, 소리 또한 데이터로 수집되며 관람자인 우리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Editor |  Jo I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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