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1 세상에 자기를 표현하는 그래피티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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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이미지: imaeil

세상에 자기를 표현하는 그래피티 아트



출처: imaeil



‘누구누구 왔다 감~’ 여러분은 벽에 낙서해 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낙서할 수 있는 칠판이나 벽이 있다면 고민 없이 낙서하곤 했는데요. 고대 동굴 벽에 새겨진 낙서를 생각하면 무언가 새기고 표현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가 아닐까 싶어요. 오늘의 주제! 바로 이런 낙서로 시작한 그래피티 아트입니다!  


먼저 보고 들어가는 세 가지 키워드


1. 범죄
그래피티는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무단으로 그려진 그림을 말합니다. 범죄 무리인 갱스터들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어요. 그래피티는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행위인 반달리즘, 사회 반항적 특징이 있습니다.


2. 예술
그런 그래피티가 메시지와 비주얼적 요소를 갖추면서 점차 인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래피티는 자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되었어요. 이러한 전환점에는 장미쉘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 있습니다.


3. 한국 그래피티 아티스트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있어요. 한국적이고 사실적인 심찬양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래피티의 새로움과 감동을 느껴봅시다. 그래피티는 세상에 자기를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범죄 👮 


그래피티(graffiti)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낙서’예요.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단어에서 기원했죠. 그래피티는 주로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전철이나 건축물 벽면에 낙서하듯 그린 그림을 말해요. 낙서가 고대 동굴 벽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그래피티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고 볼 수 있죠. 🚃 


흔히 우리가 ‘그래피티’ 하면 떠오르는 낙서는 1960-70년대 미국 갱스터들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관습에서 비롯됐습니다. 뉴욕의 반항적인 청소년들이나 소수 민족이 주도했죠. 그들에게 그래피티는 일탈과 분노 표출의 수단이었어요.



출처: vingle



1970-80년대 뉴욕 지하철의 모습입니다. 금방이라도 사건 사고가 날 것 같지 않나요? 실제로 그래피티가 활발히 이루어질 당시, 그릴 수 있는 벽의 한계로 영역 싸움이 자주 일어나요.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났죠. 😨 


이에 뉴욕 정부는 그래피티를 지우고, 막으려고 합니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반항적으로 그래피티 활동이 전개해요.



출처: nownews



불법적인 곳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반항심을 더욱 극대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건물 벽이나 지하철과 같은 공공시설은 물론, 그림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출처: 한국일보, 그래피티로 훼손된 베를린 장벽



이렇게 공공시설, 넓게는 타인의 재산을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이라고 불러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독일 정부가 서울특별시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을 그래피티로 훼손한 적이 있었죠. 



출처: Getty Images



영국의 무명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 아시죠? 뱅크시의 작품에도 이런 반항적인 성격이 있죠? 어느 날 그려져 있는 뱅크시의 작품을 보면 정치적,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어요. 물론 이것도 벽이나 박물관 등에 무단으로 그려진 거고요.


이처럼 그래피티는 불법, 반항, 반달리즘이라는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불법적으로, 심지어 도구까지 훔쳐서 사용한 것이 아니면 그래피티로 취급하지 않는다고도 하죠.



Key point

1. 그래피티는 거리의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무단으로 그리는 그림을 말합니다.

2. 초기 그래피티는 반항적인 청소년과 소수민족들이 주도했어요.

3. 그래피티는 불법, 반항, 반달리즘의 정체성에 뿌리를 둡니다.





예술 🎨 


출처: theguardian



초기 그래피티는 주로 이니셜이나 닉네임을 새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이곳에는 메시지가 담기고, 비주얼적인 요소가 추가되죠. 더 이상 그래피티는 단순한 낙서가 아니게 돼요.



출처: widewalls



반항적이고 불법적이었던 그래피티가 예술로 인식되는 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장미쉘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의 공이 컸습니다. 👨 👨

 

아트아트의 장미쉘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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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idewalls



검은 피카소라고 불리는 장미쉘 바스키아는 고등학교 중퇴 후,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 벽에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 디아즈’라는 친구를 만나 세이모 (SAMO)라는 그래피티 그룹으로 함께 활동하죠.


그래피티 라이터가 자신의 그래피티 이니셜, 닉네임을 남기는 것을 ‘태그’라고 합니다. 길을 걷다가 형태는 알아보겠는데 무슨 뜻이지? 했던 글자가 있었다면, 아마 태그였을 거예요. 그는 세이모로 활동하며 태그로 카피라이트 기호인 ⓒ를 사용했죠. 하지만 이후 세이모로 함께 활동했던 알 디아즈와 갈라서게 되면서 바스키아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SAMO IS DEAD.” / 출처: artstuebli



그는 버려진 벽이나 캔버스 조각, 찢어진 아파트 문짝을 위에 그림이나 시를 남겼어요. 미술관에 흑인이 별로 없다고 느낀 그는 흑인 영웅을 작품에 자주 등장시켰죠. 주로 물질만능주의, 권위적이던 사회와 주류 미술계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주로 담았어요. 



장미쉘 바스키아, 죽음을 타고, 1988 / 출처: kyeonggi



출처: arte-mag



키스 해링은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리곤 뉴욕 거리 벽과 지하철에 그려진 낙서 그림에 영감을 얻죠. 이곳에 그림을 그리면 모든 사람이 예술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지하철역 빈 광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길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말이 있었으니까.”-키스 해링-


그의 그림은 다른 낙서들과 달리 밝고 귀여워서 사람들의 눈길을 금세 사로잡았어요. 주로 낙서에는 생명과 죽음,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메세지를 담았죠.



“Todos juntos podemos parar el sida”, “우리는 함께 에이즈를 막을 수 있습니다”

출처: dailyphotostream 



이처럼 그래피티는 개인적, 사회적 메시지를 세상에 표현하는 수단이었어요. 이들을 기점으로 그래피티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인정받고,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출처: hyundai



예술 친화적인 베를린의 경우, 작가들이 자유롭게 그래피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거리를 개방했어요. 다른 일부 도시는 그래피티 작가와 협업하여 거리를 그래피티로 채워나가죠. 이렇게 사회의 골칫거리였던 그래피티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Getty Images, museumofgraffiti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래피티가 예술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요. 이는 낙서 수준의 그래피티와 예술적 그래피티, 불법적이고 합법적인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래피티가 예술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건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다양한 기술과 분야에 접목되면서, 그래피티는 이제 하나의 미술의 기법, 스타일이 되었어요.


Key point

1. 반항적이고 불법적이었던 그래피티가 메시지와 비주얼을 갖추며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2. 장미쉘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은 그래피티에 인종차별, 에이즈 퇴치와 같은 메세지를 담았어요.

3. 여전히 사람들은 그래피티의 예술성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4. 그래피티는 이제 하나의 미술 기법, 스타일이에요.





한국 그래피티 아티스트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래피티에 대한 이미지가 과거에 머물러있어요. 그래서 한국의 그래피티는 문화 예술적으로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고 평가받고 있죠. 그래서 오늘은 끝으로 한국적이고 사실적인 작품으로 그래피티의 새로움과 감동을 주는 아티스트 한 분을 소개하고 마쳐볼까 해요. 




바로,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을 그린 ‘심찬양’ 작가입니다. 몇 년 전 티비를 통해 화제를 모으며 국내서도 인지도 있는 그래피티 작가가 되었어요. 🇰‍🇷 


로열독이란 활동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그래피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래피티 본토, 미국에 갑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체류 기간 90일 중 89일 동안 그래피티를 그렸어요.


그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한국적인 것을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곳의 흑인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죠. 그래서 자신도 자신만의 이야기, 문화를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해요.


출처: 심찬양 인스타그램



그렇게 그의 대표작 ‘꽃이 피었습니다’ 가 탄생했습니다. 흑인을 모델로 한 배경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후원하는 흑인 아이들의 사진이 집에 늘 걸려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 



출처: 심찬양 인스타그램



심찬양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정말 벽이 하나의 캔버스가 될 수 있고, 길거리가 전시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미술은 꼭 미술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요.


“언젠가 잘되겠지 하면서 살아온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해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희망 고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했습니다” -심찬양, THEICONTV 인터뷰 중-


당당히 세상에 자기를 표현하는 그래피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Key point

1. 한국의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2. 심찬양 작가를 통해 그래피티가 세상에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임을 느낄 수 있어요. 



아팅이가 정리해 주는 오늘의 내용


1. 그래피티는 거리의 건물 벽이나 지하철 등에 무단으로 그리는 그림을 말합니다.

2. 초기 그래피티는 반항적인 청소년과 소수민족들이 주도했어요.

3. 그래피티는 불법, 반항, 반달리즘의 정체성에 뿌리를 둡니다.

4. 반항적이고 불법적이었던 그래피티가 메시지와 비주얼을 갖추며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5. 장미쉘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은 그래피티에 인종차별, 에이즈 퇴치와 같은 메세지를 담았어요.

6. 여전히 사람들은 그래피티의 예술성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7. 그래피티는 이제 하나의 미술 기법, 스타일이에요.

8. 한국의 그래피티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9. 심찬양 작가를 통해 그래피티가 세상에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임을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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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오색찬란한 빛을 담은 화가 <지오엘 아마로 Gioele Amaro> 작가 소개글!


2위. 그림을 통해 행복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전하는 <박연경 ayeomee> 작가 소개글!


1위. 조각상에 새로운 움직임을 넣는 아티스트 <제임스 거드James Gerde> 작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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