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0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알지 못하는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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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이미지 출처 : The Monthly


vol.20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알지 못하는 앙리 마티스 
: 색채의 해방을 낳은 야수파 대표 작가를 알아봐요! 🌈


출처 : Artsy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느새 20번째 레터를 맞이하게 됐네요. 이번에는 어떤 작가를 소개할까 카페에서 고민을 하던 찰나 벽에 걸려 있던 하나의 작품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람의 형태를 띄고 있는, 오로지 파란색으로만 채색되어 있던 작품. 물감인지, 종이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 작품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는 작품이겠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알진 못하는 작가를 한 번 다뤄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다룰 주인공, 폴 세잔의 영향을 받아 피카소의 영원한 라이벌이 되어줬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입니다.




먼저 보고 들어가는
세 가지 키워드 💁


1. 야수파

폴 세잔에 영향을 받아 색채의 해방을 실현한 앙리 마티스. 그렇게 탄생한 화조가 야수파에요! 야수파는 말그대로 대상을 야수처럼 그려놨다는 비웃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의 평생의 경쟁자는 그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에요. 12살의 터울을 극복하고 건강한 경쟁을 이어온 두 거장은 끝까지 서로를 영감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성장의 발판으로 존중했습니다.


3. 컷-아웃 기법

크게 아팠던 앙리 마티스는 다시 붓을 잡기는 어려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그러나 예술을 향한 집념은 내려놓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잘라서 붙이는 컷아웃(Cut-outs)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앙리 마티스만의 또 다른 작품세계가 펼쳐집니다.


 

👨🏻‍🎨 우연치 않은 계기로 잡은 붓,

그렇게 탄생한 거장.


출처 : The Court Gallery



여러분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저는 딱히 운명을 믿지는 않는 편인데요. 그러나 이런 내용들을 마주할 때면 정말 세상에는 운명이라는 게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처음부터 미술을 공부하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엄연히 말하면 법률가였죠. 그러나 20대에 맹장염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다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어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었거든요.



출처 : Aleksei (Unsplash)


그 이후로 출퇴근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던 마티스는 미술이 자신의 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떠나죠.



마티스의 초기작, <Woman Reading> / 출처 : Le Cateau-Cambrésis



늦깍이 화가였던 마티스는 당연히 서투를 수 밖에 없었어요. 서투른 만큼 고정되어 있는 대상을 그리거나, 전형적인 미술을 모방하는 것 외에는 큰 변주를 줄 수 없었죠. 그래서 그의 초기작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마티스와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평이 주를 이뤄요.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작품 세계관을 쌓기 위해 노력했죠.

⏳ Key point

1. 맹장염으로 입원했던 시기, 우연히 붓을 잡은 것이 마티스의 미술 여정의 초석이 되었어요.

2.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떠나 부단히 그림 실력을 닦아 나갑니다.

3. 마티스의 초기작들을 보면 다소 건조하고, 어두운 채색을 주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어요.





🌻 젊음은 트렌드지,

후기 인상주의에 매료된 마티스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The Starry Night> / 출처 : MoMA



당시 파리를 지배하고 있던 트렌드는 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에요. 고흐, 고갱, 세잔 등이 기존 인상주의(Impressionism)를 이어받아 더욱 더 과감한 색채를 활용하여 탄생시킨 화조였죠. 힙스터들은 또 유행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법이잖아요? 마티스 또한 후기 인상주의에 매료가 되었고, 그를 통해 자신의 작품성향을 발전시켜 나아가요.


* 인상주의 :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미술 사조

* 후기 인상주의 : 19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의 한 파. 인상파의 화풍을 개성적으로 발전시켜, 주관적 표현을 중시하고 극히 간략한 기교를 썼다. 



이전보다 밝고 과감한 색채를 사용한 <Still Life with Oranges> / 출처 : Art-Matisse



후기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훨씬 더 과감한 모양과 색채를 그려낸 마티스는 점점 자신만의 색을 찾아갑니다. 이때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자신감을 찾아가죠.



처음으로 야수의 본능을 보여준 <Luxe, Calme et Volupté> / 출처 : Musée d'Orsay



이후  빛을 더 세밀하게 연구하고, 환상적인 점묘법을 구현한 조지 쇠라(Georges Seurat)폴 시냐크(Paul Victor Jules Signac)의 영향을 받아 한층 더 발전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명작으로 불리는 <사치, 고요, 쾌락>이라는 작품이죠. 이 작품은 마티스의 야수적 본능이 처음으로 발현된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하죠. 참고로 이 작품을 구매한 건 그의 작품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폴 시냑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우상에게 팔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 Key point

1. 고흐, 고갱, 세잔 등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다채로운 색감 활용에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2. 특히 조지 쇠라와 폴 시냐크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아 색과 빛에 대한 연구가 한층 짙어지고, 점묘법을 활용해보기도 합니다.





🌈 그렇게 얻은 색채의 해방,

그리고 야수파.


마티스의 대표작 <Woman with a hat> / 출처 : Arthive



한번쯤은 보셨을 법한 작품, 마티스의 역작 <모자를 쓴 여인>입니다. 위 작품은 자신의 아내 아멜리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요. 자연의 색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을 따라 채색을 했다는 점에서 색채의 해방을 낳았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마치 야수의 형상을 그렸다는 비판이 잇따랐어요. 이 표현이 마음에 든 마티스는 이를 활용하여 야수파(Fauvism)를 탄생시킨 것이죠. 야수파의 가장 큰 특징은 색채란 자연 그대를 묘사해야한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점에 있습니다!



* 야수파 :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예술에서 잠시 나타났던 미술 사조. 강렬한 표현과 색을 선호하는 것이 특징.



<Big Ben> / 출처 : Artnews



이해를 돕기 위해 야수파의 또 다른 대표적인 화가 앙드레 드랭(Andre Drain)의 작품을 살펴볼게요. <Big Ben>이라는 작품은 말그대로 영국의 빅 벤을 그린 작품이에요. 분명 태양은 떠있는데 하늘을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오히려 물은 초록색으로 묘사됐고, 온 세상의 색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해냈죠. 반면 붓터치는 점묘법에 가까운 과감한 터치로 그려냈어요. 야수파의 특징, 대략적으로 이해가 되셨을까요?



⏳ Key point

1. <모자를 쓴 여인>은 마티스의 야수파적인 사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2. 야수파는 자연의 색을 초월하여 감정과 느낌으로 색을 표현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3. 마티스 외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안드레 드랭이 있습니다.





🎨 12살 터울을 넘어선

경쟁과 우정.


출처 : Artnews



마티스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죠. 두 화가는 서로에게 경쟁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고, 성장의 동력이 되어주기도 했어요. 단적인 예로 피카소가 마티스의 작품을 일부 모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 입체주의(Cubism)을 완성시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깐요. 물론 그런 모방만으로 입체주의를 완성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피카소가 완성형 화가로 발돋움하는데 마티스의 탐구적인 자세와 열성적인 작품활동이 혁혁한 공헌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 입체주의 : 사물을 한 방향에서 바라보던,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던 것이 이전까지의 정물화였다면, 입체주의는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한 화폭 안에 담아낸, 말하자면 혁신적인 화법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는 영원한 경쟁자이자 서로의 동력이 되어줬습니다. / 출처 : Connect with Art



두 거장의 경쟁은 마티스가 숨을 거둔 뒤에서야 막을 내립니다. 마티스는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이 피카소 작품 옆에 있으면 초라해보이기 때문에 함께 전시하지 말아달란 말은 남겼다고 잘 알려져 있죠. 이에 화답을 하듯 피카소 또한 자신의 그림 인생의 토대가 되어줬던 인물은 단연 마티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거장의 불꽃튀는 경쟁과 성장 스토리. 당대 그 모습을 봤던 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 Keypoint

1. 피카소는 마티스의 뛰어난 실력을 탐미했고, 이를 동력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2. 두 거장은 지속적인 교류와 경쟁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성장을 도모해가며 20세기 최고의 거장을 거듭납니다.





✂️ 병세에도 놓지 못했던 예술혼,

컷아웃(Cut-outs) 기법.


화려한 이국적 문양에 영감을 받은 <Harmony in Blue> / 출처 : Pavillon54



야수파로 주목받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태동하며 관심이 줄어든 마티스는 적잖이 낙심했어요. 하지만 특유의 넓은 마음으로 새로운 영감을 위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을 돌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 시작합니다. 그를 통해 더욱 다채로운 색감과 화려한 패턴 등을 그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한층 더 깊이있게 만들죠.



출처 : Getty Images



그러던 어느 날, 마티스는 암에 걸리게 됩니다. 치료 후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죠. 작품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긴 마티스는 낙심하다가도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때 탄생한 것이 종이 오리기, 즉 페이퍼 컷아웃(Paper Cut-Outs) 방식이죠.



종이를 오려 붙이는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간 마티스 / 출처 : The Collector



종이를 오려 붙이며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나아간 마티스. 그는 컷 아웃 기법을 실현하며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 기법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대중적으로는 마티스의 그림보다는 컷아웃 작품들이 더 잘 알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마티스의 대표작, <Blue Nude II> / 출처 : MoMA



<푸른 누드 II>는 마티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에요. 앞서 보여드린 작품들도 마티스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인생과 철학이 집약적으로 응축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단순한 색의 활용을 통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분명 그가 수십년 간 노력한 결과일 것입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마티스의 컷 아웃 기획전 / 출처 : The New York Times



예술이란 머리를 뉘일 수 있는 안락의자와 같이 편안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컷 아웃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마음까지 가닿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편안하고, 즐거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휠체어에 연명해야하는 그 고된 시절에 만든 작품치고는 너무 멋진 활기가 가득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 Keypoint

1. 마티스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사조를 한층 더 견고하게 강화시켰어요.

2. 노년에 맞은 질병으로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자 그는 가위를 꺼내들었어요. 가위로 그림을 오려 붙이는 컷 아웃 (Paper Cut-outs) 방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맞이하죠.





💫 끝까지 온화했던 거장의 죽음


출처 : The Monthly



1954년. 마티스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둬요. 앞서 말했듯이 영원한 라이벌은 마티스의 죽음 앞에서 더할나위 없는 찬사를 보냈고, 마티스의 영향을 많은 화가들의 애도가 이어지죠. 특히 그는 노년이 되었을 때도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마음 넓게 들여다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요. 더불어 미술계에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사색했고요. 그렇게 작품으로도, 인성적으로도 극찬을 받았던 그는 후대들의 일상에 적지 않은 윤기를 제공할 만한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저번 레터였던 폴 세잔부터 오늘 소개해드린 앙리 마티스까지 현대 미술의 태동에 대해서 대략적인 레터를 진행해봤습니다. 어떠셨나요? 특히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알진 못하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 및 세계관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 되셨을까요? 이번 레터 또한 여러분들의 작품 감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도 맥락을 이어 더욱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다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 마티스의 영향을 받은

또 한명의 거장


앙리 마티스의 <The Red Studio> / 출처 : The New York Times



마티스가 자신의 작업실을 묘사한 <The Red Studio>는 그의 화풍에 맞게 단순하면서도 에너제틱한 채색으로 그려진 작품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에 큰 영감을 받았던 한 명의 거장이 있었는데요. 그는 바로 아트아트의 단골 손님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에요.



마티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마크 로스코의 <No.21> / 출처 : Wikiart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고찰을 끊임없이 이어가던 그는 마티스의 <The Red Studio>를 보고선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죠. 당시 “그 그림을 봤을 때 당신은 그 컬러가 되고, 그에 완전히 스며들게 한다”며 자신의 인상을 남긴 바 있어요. 이를 토대로 로스코는 추상회화에 대한 확신을 갖고 색감 구름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러하듯 같은 시대를 나누지 않았어도 기록으로 남은 예술을 통해 또 다른 미술 세계를 확장해 나아가는 예술계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스러우면서도 신비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 정리해주러 잠시 돌아온 아팅이


1. 맹장염으로 입원했던 시기, 우연히 붓을 잡은 것이 마티스의 미술 여정의 초석이 되었어요.

2.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떠나 부단히 그림 실력을 닦아 나갑니다.

4. 마티스의 초기작들을 보면 다소 건조하고, 어두운 채색을 주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어요.

5. 고흐, 고갱, 세잔 등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다채로운 색감 활용에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6. 특히 조지 쇠라와 폴 시냐크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아 색과 빛에 대한 연구가 한층 짙어지고, 점묘법을 활용해보기도 합니다.

7. <모자를 쓴 여인>은 마티스의 야수파적인 사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8. 야수파는 자연의 색을 초월하여 감정과 느낌으로 색을 표현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9. 마티스 외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안드레 드랭이 있습니다.

10. 피카소는 마티스의 뛰어난 실력을 탐미했고, 이를 동력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11. 두 거장은 지속적인 교류와 경쟁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성장을 도모해가며 20세기 최고의 거장을 거듭납니다.

12. 마티스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사조를 한층 더 견고하게 강화시켰어요.

13. 노년에 맞은 질병으로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자 그는 가위를 꺼내들었어요. 가위로 그림을 오려 붙이는 컷 아웃 (Paper Cut-outs) 방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맞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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